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 삼베 자루 속에 죽은 흙이며 시든 꽃줄기며 썩은 꽃 이파리며 인간의 죽음과 탄생이기도 한 냄새. 모든 것의 정수가 들어있지. 이 삼베 자루를 머리에 휘감아 코에 대고는 그 사이로 한 번 냄새를 맡아보란 말이야"
난 우리가 싸워서 지켜 온 모든 것을 사랑하듯
당신을 사랑해.
자유와 존엄,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일할 권리,
굶지 않을 권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해.
우리가 방어한 마드리드를 사랑하듯,
죽어 간 내 동지들을 사랑하듯
당신을 사랑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헤밍웨이는 ‘전쟁이야말로 작가가 작품을 쓰는 데 가장 좋은 소재’라고 말했다.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공화파를 지원하기 위해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1937년에는 특파원 자격으로 직접 스페인을 찾아 내전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나라가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처참하게 변해 가는 것을 목격하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년 출간)는 순식간에 5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등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주인공 로버트 조던은 사회의식과 공동선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 개인을 희생하여 공동선을 지키려 하는 헤밍웨이의 주제를 대변한다.
어떤 사람도 그 혼자서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니,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 땅은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 한 곶이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고
그대의 친구나, 그대의 영토가 씻겨나가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그만큼 나를 줄어들게 한다.,
나는 인류 속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울리고 있는 이 조종은 이제 그대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에게 말하고 있다.
죽음은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다.
헤밍웨이는 이 책에서 죽음의 냄새에 대해 적나라하게 언급한다
” 그 냄새는 말이야. 배에서 폭풍우를 만나 선창을 꼭꼭 닫아 놨을 때 맡게 되는 냄새, 흔들리는 배 안에서 구리 손잡이에 배를 갖다 대 봐.... 배의 냄새를 맡은 뒤에는 말이지. 마드리드 언덕을 내려가 마타데로로 빠지는 톨레도 푸엔테 다리로 가는 거야.
해뜨기 전에 일어나 도살한 소의 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노파들을 기다리는 거야. 어깨에 숄을 걸치고 창백한 얼굴에 눈이 움푹 파인 노파들이 도살장에서 나오지. 죽음의 얼굴에 나는 희끄무레한 솜털이 가득한 노파를 두 팔로 꼭 안고 끌어당겨 키스를 해 봐. 그때 나는 냄새가 바로 그 나머지 냄새야. 키스를 하고 그 냄새를 코에 담은 채 시든 꽃을 버린 쓰레기통이 보이거든 그 속에 코를 박고 그 냄새와 쓰레기통 냄새가 깊게 섞이도록 숨을 들이마셔 봐.
카사스 데 푸타스(갈보집) 앞, 색시들이 공원 철문이나 쇠 울타리에 기대 사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 다해주지. 10 센티모에서 1페세타의 적은 돈을 주면 그 중대한 행위를 해주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어쩌면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인지도 몰라.
시들어진 꽃이 수북이 쌓여있어 길바닥보다 훨씬 푹신하지. 축축한 흙 하고 시든 꽃 하고 전날 밤에 벌인 짓거리 냄새가 나는 버려진 삼베 자루가 눈에 띌 거야. 이 삼베 자루 속에 죽은 흙이며 시든 꽃줄기며 썩은 꽃 이파리며 인간의 죽음과 탄생이기도 한 냄새. 모든 것의 정수가 들어있지. 이 삼배 자루를 머리에 휘감아 코에 대고는 그 사이로 한 번 냄새를 맡아보란 말이야. 깊이 들이마셨을 때 아까 말한 그 냄새들을 잊지 않았다면 당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거야.”
죽음의 냄새가 이러하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기억해야 할 삶의 냄새는 무엇일까.
3박 4일, 침낭 안에서 마리아와 나누는 사랑의 냄새가 삶의 냄새인가?
그 사랑의 냄새는 카사스 데 포타스 앞 색시들이 돈을 받고 사랑을 파는 냄새와 다를까?
밤새 배설된 것들의 냄새가 시든 꽃 냄새와 뒤섞인다.
삶이란 결국 그 모든 죽음의 냄새를 딛고 존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죽었음을 알리기 위해 울려 퍼지는 ‘조종’과 같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공동선을 실천하려는 조던의 태도는 “너라는 존재는 없어. 절대 아무 일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 나도 이 노인도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다만 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거든.”이라는 독백에서도 나타난다.
”난 우리가 싸워서 지켜 온 모든 것을 사랑하듯 당신을 사랑해. 자유와 존엄,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일할 권리, 굶지 않을 권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해. 우리가 방어한 마드리드를 사랑하듯, 죽어 간 내 동지들을 사랑하듯 당신을 사랑해. 정말 많은 동지가 죽었지. 정말, 정말로 많은 동지들이. 당신은 얼마나 많은 동지가 죽었는지 아마 상상도 못 할 거야. 하지만 난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듯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이듬해인 1937년 여름, 5월 마지막주 3박 4일 동안의 일이다. 토요일 오후에서 그다음 주 화요일 정오까지, 중심 사건은 70여 시간밖에는 되지 않는다. 스페인 내전은 독일 나치주의, 소련 공산주의, 이탈리아 파시즘 등 유럽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뒤섞여 있다.
로버트 조던은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여 파시스트에 맞서 공화파의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는데 공화파 사령부로부터 세고비아 공격의 사전 단계로 마드리드와 세고비아 사이 과다라마 산맥의 어느 계곡 철교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과다라마 산맥 산중에 은거한 파블로 부대와 합류하는데 파블로의 아내 필라르는 그의 손금을 보고 죽음을 예감한다. 게릴라 대장 파블로는 한때 게릴라들을 이끌며 파시스트들과 싸우는 데 이름을 떨쳤던 용맹한 남자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손에 죽어 간 사람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현재의 것에 집착한다. 몇 마리의 말은 그에게 사유 재산이 되었기에 다리 폭파라는 위험한 행동을 돕고 싶지 않아 비협조적이다. 심지어 조던의 폭파 도구 일부를 훔쳐 계곡에 버려버린다.
필라르는 적극적으로 조던의 작전 준비를 돕고 조던과 마리아를 이어 준다. 마리아는 파시스트들에게 마을 시장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포로로 잡혀있다가 파블로 부대의 기차 폭파 작전 중 극적으로 구조되었지만 성적 학대, 부모의 총살형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조던을 사랑하고 조던은 마리아를 알게 됨으로써 처음으로 살아남고 싶은 희망을 품는다. 다리 폭파 후 허벅지에 부상을 입고 고통을 느끼면서 자살 충동도 느끼지만 적군을 한 명이라도 사살하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의무라 생각한다.
조던을 두고 절대 떠나려 하지 않는 마리아에게
”당신은 이제 무사히, 빨리, 멀리 가는 거야. 당신 속에 우리 둘은 함께 가는 거지. 우리 둘을 위해 어서 가. 이제 우린 당신 안에서 함께 가는 거야. “
아우구스틴이 그 곁에 서서
”잉글레스 양반 총으로 쏴줄까? “
”그럴 필요 없어요. 어서 가요. 전쟁에선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니꺄. “
동지들이 모두 떠나버렸다는 사실에 공허하고 피로한 느낌이 몰려왔다. 이제 드디어 아무런 문제도 없게 되었다.
사흘낮과 사흘밤도 채 되지 않았지만 마리아를 만나 행복했어. 이 세상을 떠나기가 정말 싫어. 내가 믿고 있던 것을 위해 지난 일 년을 바쳤지. 이 세계는 아름다운 곳이고 그것을 위해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지. 그래서 이 세계를 떠나기가 싫은 거지.... 이렇게 훌륭한 삶을 보낼 수 있었으니 넌 행운아였어.... 이 마지막 며칠 때문에 넌 누구 못지않게 훌륭한 삶을 보낼 수 있었지.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정신없이 배우고 있군. 골츠가 명령을 내렸을 때 넌 이미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야.
로버트 조던은 자살은 비겁한 행위이고 삶에 대한 배반이라 생각한다.
파블로 부대의 안전한 도피를 돕기 위해 부서지는 다리를 향해 밀려오는 파시스트를 향해 기관총을 장전한다.
로버트 조던은 나무 뒤에 엎드려 아주 주의 깊고도 능란하게 두 손이 떨리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장교가 솔밭의 첫 번째 나무들과 초원의 초록빛 경사면이 합쳐지는 양지바른 곳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심장이 숲에 깔려있는 솔잎에 부딪혀 고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행동에 대한 안셀모와 파블로, 로버트 조던의 생각은 다르다.
“하지만 하느님이 계시든 계시지 않든 사람을 죽이는 건 죄악이라 생각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건 내게는 굉장히 중대한 일이거든. 피할 길이 없을 때엔 할 수 없이 사람을 죽이지만.”
“ 전쟁에 승리하려면 사람을 죽여야만 합니다. 그건 태곳적부터 변치 않는 진리죠.”
폭파할 다리를 살핀 뒤 유격대원이 살고 있는 동굴로 돌아가면서 로버트 조던과 안셀모가 나누는 대화다.
파블로는 살인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다리를 폭파하고 난 뒤 말들을 빼앗기 위하여 자신이 데려온 부하들을 총살한다. 그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뺏는 것은 전시 상황에서는 당연히 용납될 수 있다는 논리다.
로버트는 안젤모와 파블로 사이에 있다. 안젤모처럼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전쟁에서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당연히 죽일 수 있다는 논리다.
살인 행위를 어느 정도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가?
로버트는 개인의 이익이나 안녕보다는 공동선에 집중한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강의했고,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스페인 공화파를 돕기 위해 내전에 참가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사회관을 갖게 되었지? 하고 내면의 그가 물었다.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었지. 또 가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어. 넌 자유, 평등, 박애를 믿지. 생명, 지유, 행복이 추구를 신봉하고 그러니 필요 이상의 변증법으로 자신을 속이지 마.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골츠 장군의 다리 폭파 명령을 수행하려 한다
”내일 그들이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다리만 잘 폭파하고 죽는다면 죽는 것쯤은 문제 될 것도 없잖은가? “
공동선을 위해 개인은 기꺼이 희생해야 한다는 로버트의 논리가 오늘날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 같다.
너라는 존재는 없어, 절대 아무 일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 나도 이 노인도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다만 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거든. 세상에는 꼭 필요한 명령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건 네 탓이 아니야. 지금 그 다리가 하나 있고, 그 다리가 인류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도 있는 거야. 이 전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것에 달려있는 것처럼. 그러니 내가 할 일이라곤 오직 한 가지밖에 없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완수해야 해. "
한 계곡에 걸려있는 조그마한 다리는 물 위에 퍼지는 파문처럼 과다라마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퍼지고 스페인을 넘어 다시 유럽으로, 그리고 온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죽음을 맞이한다.
2024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도 진행 중이다. 인질들이 총살되기 전 “사랑한다. 살고 싶다.”는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팔을 머리로 올리고 항복을 선언한 우크라이나 병사 3명의 머리를 향해 바로 그 자리에서 무자비한 사형이 집행된다.
이쯤 되면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며 조던이 목숨을 바쳐야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라 할 수 있을까.
무려 84년 전에 출간된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 것은 세상은 여전히 참혹하고 세상은 여전히 슬프기 때문일 것이다.
도살장 소 피를 마신 노파의 입 냄새와 삶과 죽음이 뒤엉킨 삼베자루 속에 든 냄새를 기억하는 것..... 전쟁의 냄새란 아마도 거기에 무기의 냄새, 살인과 광기, 야만의 냄새가 뒤섞이는 것이리라.
로버트 조던이 끝까지 공동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세상을 위해 부품처럼 소모된 그의 죽음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차라리 말을 타고 마리아와 도망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어떠했을까...
비겁한 결말이라 하더라도... / 려원
202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 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