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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알랭드 보통     


결혼에 대한 알랭드 보통의 정의 :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한다     


알랭드 보통은 The course of love에서     

1부 : 낭만주의 (매혹/신성한 시작/사랑에 빠지다/섹스와 사랑/청혼_

2부 : 그 후로 오래오래 (별 것 아닌 일들/ 토라짐에 대하여 / 섹스와 검열 / 감정전이/

       모든 게 네 탓/ 가르치기와 배우기)

3부 : 아이들 (사랑의 가르침/ 사랑스러움/ 사랑의 한계/ 섹스와 양육/ 빨래의 위신)

4부 : 외도 (바람피우는 남자/ 찬성론/ 반대론 / 양립할 수 없는 욕망들 / 비밀)

5부 : 낭만주의를 넘어서( 애착이론/ 성숙함을 향해 / 결혼할 준비가 되다/ 미래)

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걸어온 과정과 거의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결혼의 시작은 청혼이 아니고 심지어 첫 만남도 아니다, 훨씬 전에 사랑에 대한 생각이 움틀 때마다 더 구체적으로는 맨 처음 영혼의 짝을 꿈꿀 때다. (자연발생적 감정)     


그는 커스틴이 함께 오전 시간을 보내기에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제할 수도 있었다. 창백한 안색과 비스듬한 목의 기울기로는 그녀의 영혼을 쉽게 간파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할 수도 있었다. …… 대신에 라비는 내면과 외면의 특질들이 가장 특이하게 조합된 사람을 발견했다고 확신한다. 두 시간 전만 해도 생면부지였건만 이 식당을 떠나면 보고 싶어질 것만 같은 사람, 저 손가락을 어루만지고 자신의 손가락을 끼어 꼭 쥐어보고 싶게 하는 사람, 함께 남은 생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다     


여러 해가 지나고 또 여러 편의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접한 후에야 라비는 몇몇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한때 그가 낭만이라 보았던 거스무언의 직관, 순간적인 갈망, 영혼의 짝에 대한 믿음ㅡ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워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그는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했다. 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다     

영원한 사랑처럼 완전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한 순간은 있어도 완전한 인생은 없다. 서로를 영혼의 짝이라 믿고 혼인 서약을 한 라비와 커스틴, 유년의 상처 때문에 한 사람은 불안 애착으로 치닫고, 한 사람은 회피 애착으로 도피한다.

사랑은 약점,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랑을 불러들였던 그 단점과 결핍들이 이후의 일상에서는 도리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요인이 된다.     


p 222_223

지루해, 내가 지루해졌어 그리고 당신도 지루해졌고,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커스틴이 고개를 들고 평소보다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빤히 쳐다본다

그러더니 읽고 있던 책에 손가락을 낀 채 조용히 품위 있게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간다.

“꼭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죄책감이 들게 만드는 재능을 갖고 있어야 하겠어?”그가 소리친다

“성녀 커스틴 나셨군...”

20분 동안 곰곰이 생각한 후에 그는 커스틴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그녀는 어깨에 담요를 두른 채 램프 옆 안락의자에 앉아 있다.

“당신은 내가 재밌는 줄 알지, 이 모든 게 그렇지?”

그녀는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입을 연다

“끊임없이 날 지치게 하고, 화나게 하는 두 아이와 신경쇠약 문턱까지 간 아주 흥미로운 남편을 건사하기 위해 내 경력의 황금기를 날려버리고 있는 게? 일주일 내내 이 집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려고 내 머리가 하잘 것 없는 생각들로 얼마나 복잡해지는지 알아?.. 내 탓으로 돌리면 언제나 쉬워지니까. 내가 원하는 건 하나야, 당신에게 원하는 건 오로지 나를 존중해 달라는 거야, 당신이 무슨 공상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난 상관 안 해, 하지만 나를 무례하게 대하는 건 더 이상 봐줄  수 없어. 이 모든 게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당신뿐인 줄 알아?”

.... 조리대 옆에 서 있고 그 위에는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 케이크를 만들려고 저장실에서 꺼내 놓은 큰 밀가루 봉지가 있다. 그녀는 봉지를 응시한다 

“그리고 내가 절대로 미친 짓을 하지 않는다는 불평에 대해서는..... ”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밀가루 봉지는 거실 맞은편으로 날아간 뒤 벽에 퍽 부딪쳐 하얀 구름을 일으키고 식탁과 의자들 위로 가라앉을 때까지 놀랄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걸 치우는 동안 집안일이 얼마나 재밌는지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질 수 있겠지, 그리고 앞으로 제발, 절대 다시는 나한테 지루하다고 하지 말아 줘.”

그녀가 2층으로 돌아간 뒤 라비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무릎을 꿇는다. 

사방이 밀가루 천지다. 키친타월에 조심스럽게 물을 묻혀 탁자 위와 의자들과  타일 틈새에서 그 많은 양을 훔쳐 내다 보니 거의 한 롤이 다 들어간다. 그런 뒤에도 남아있는 밀가루는 앞으로 몇 주 동안 눈에 띄면서 이 사건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그는 밀가루를 치우면서 한동안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기억을 불러낸다. 바로 이 여자와 결혼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내가 베를린회의에서 로런을 만난 것... 커스틴이 업무상 동료 벤 맥과이어를 만난 것... 그녀를 용서하듯 나의 충동도... 용서되어야 한다고... 그런 충동은 우라의 결혼과 사랑의 적이 아님을 라비를 깨닫는다.       

    


 p276  결혼할 준비가 되다     

결혼한 지 16년이 되었지만 이제야 라비는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결혼이 단지 그 이수과정에 등록한 사람에게만 중요한 수업을 해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준비는 예식에 선행하기보다 대개 10~20년 후에야 갖춰지는 것이 정상이다.     

라비는 자신이 단 한 번 결혼했다는 입장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언어의 교묘함 덕분이라는 점을 알아본다. 겉으로는 편리하게도 단일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 수많은 진전, 단절, 재협상, 소원한 기간, 감정적 회귀가 깔려 있어 사실상 그는 열두 번은 이혼과 재혼을 겪어온 셈이다. 오직 한 사람과 말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무엇보다 완벽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자신이 미쳤음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커스틴이 까다로운 게 아님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사랑을 받기보다 베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혼할 준비라는 것은 두 사람이 살만한 집, 좋은 차,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을 채워놓을 혼수가 아니었다.

의식주와 관련된 것을 결혼 준비라고 확신하던 시절.... 

대부분은 갖춰진 조건이 결혼 준비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왜곡된 관념을 갖고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결혼할 준비를 결코 외적인 것이 아니었다.     


커스틴의 생일에 맞춰 19세기 성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성꼭대기에 있는 작은 탑이 그들이 함께 보낼 방이다. 한가운데 커다란 욕조가 있고 창밖으로 봉우리들이 줄지어 솟아 있다. 그 너머 벤네비스 산에는 6월인데도 흰 눈이 살짝 덮여 있다. 아이들을 사촌집에 맡기고 단 둘이 있는 것이 도리어 어색하다. 마치 정부를 만난 느낌이 들고 이 새로운 환경에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다. 널찍하고 천장이 높은 그 방의 위엄과 고요함에 고양되어 두 사람은 더 격식을 갖추고 정중해진다.

... 이튿날 오후 커스틴의 사촌이 에스터와 윌리엄을 데려다준다. 네 식구는 산책을 나가 벤네비스 기슭의 구릉을 오른다. 라비는 사진을 찍기 위해 바위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사진 석으로 달려간다. 완벽한 행복은 아마 한 번에 5분을 채 넘지 않을, 작고 점진적인 단위들로만 찾아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은 두 손으로 붙잡아 소중히 간직해야 할 행복이다.

싸움과 갈등은 금세 고개를 들 것이지만...     

그는 이 사진의 최종 운명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미래에 이 사진이 어떻게 읽힐지, 보는 사람이 그들의 눈에서 무엇을 찾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사진은 몇 시간 뒤 집으로 가는 길에 사고가 나기 전에 온 가족이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일까? 또는 커스틴이 집을 나가기 한 달 전에? 또는 이 사진이 거실의 선반에 수십 년 동안 꼼짝 않고 먼지 낀 액자에 담겨 있으면서, 부모에게 약혼녀를 인사시키기 위해 돌아온 윌리엄이 무심코 집어 들기를 기다리게 될까? 불확실성을 의식하는 만큼 라비는 더욱 열렬히 이 햇살을 붙잡아 두고 싶다... 사랑과 신뢰, 인내.. 이 모든 것은 절망스러울 정도로 허약하다..     


 P 293

그는 이제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거의 정상인이라는 지위를 계속 확보하고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이 계획들이 어느 영웅담 못지않게 영웅적인 면모를 보일 기회를 제공한다. 조국에 봉사하거나 적과 싸우라는 부름을 받을 리 없지만, 그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에 극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지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용기, 이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이 늦은 오후 여름 햇살 아래 스코틀랜드의 산비탈에서 경험한 짧은 순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때때로 –라비 칸은 커스틴이 곁에 있으며 인생이 무엇을 요구하든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겠다고 느낀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이 된다는 것이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라비와 커스틴처럼 비슷비슷한 맥락의 감정과 상황들을 거치면서

사랑이든 동지애든 전우애든 연민이든 각별한 연대의식을 품게 된다.    

이은봉 시인은 아내를 가리켜 ’ 기왓장 같은 여자‘라고 표현하였다. 집안의 지붕을 이루는 필수 요소 같은 아내...  기둥을 생각한다. 각자 저마다의 몫으로 버티고 서서 집안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힘.... 어느 한순간 균열이 일어도 각자의 위치에서 제 몫을 하는 일.     


영웅이 저마다 집안에 있다.

가족을 위해 끝없이 무언가를 하는 영웅들...

등은 굽고 손가락에 옹이가 생기고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도...

오래전 서약을 지키기 위해 서로에게 끝까지 영웅으로 남을 용기...   

   

. 조국에 봉사하거나 적과 싸우라는 부름을 받을 리 없지만, 그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에 극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지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용기, 이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삶이라는 무대에서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구원해 가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슈퍼맨 혹은 슈퍼우먼이 되어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지만

아주 오래전, 함께하기로 다짐했던 그 혹은 그녀에게는 기꺼이 영웅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식탁 위의 케이크가 될 밀가루가 온 거실에 눈처럼 내려앉았고 라비는 그것을 치우면서 비로소 존중이라는 감정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들은 사실 영웅담인 것이다. 우리의 생물학적, 정신적, 심리적 노화는  서로에게 영웅이 되어준 세월의 흔적이 분명하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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