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프를 하다가 읽은 어린 왕자는 너무 아름다웠지만..
우프코리아, 우프, GW_111
나는 왜 살아있는 걸까? 어떤 쓸모, 무슨 의미가 있어서 살아있는 걸까?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주어져 버린 이 삶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할 타당성은 어디에 있는 걸까?
분명 농사일을 배우고자 시작한 우프였으나 우프 생활에는 기대치 않은 소득이 있었다. 내가 한 일의 성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농사일의 성격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데에 꽤나 좋은 영향을 주었다. 이에 더해 좋은 분들과 함께 지내며 생활 속에서 인간적인 존중을 받는 것은 참 좋은 경험이었다. 오랫동안 질척거린 삶의 고민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웠으나, 이러한 경험은 스스로의 고민을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게 하였다.
나를 포함한 우퍼를 대하는 호스트님들의 모습은, 뭐랄까.. 참 인간적이었다. 인간적이란 단어의 의미는 너무 모호하지만 경험으로부터 나름대로 정의해보자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기분 좋게 존중해주는 태도였다. 이런 태도를 경험하다가 문득 깨닫게 된 것이 내가 나를 볼 때의 사고방식이 굉장히 시장적이란 것이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에 이득과 손해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을 따져보고 있었다. 내가 살아있으면 어디에 무슨 이득이 있고 무슨 손해가 있는 걸까? 하며..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딱히 문제 삼지 않은 내용이었다. 지금도 이러한 태도는 먹고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하나의 상품으로서 잘 팔아야 하는 현대인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때에 확실히 깨달은 것은 나는 시장적인 사고방식을 잘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에 매몰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결국은 스스로를 어디에도 써먹을 수 없는 폐기품으로 결론지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를 바라보는 다른 사고방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 사람을 잘 대해 주시는 호스트님들의 사고 방식, 마음가짐은 어떤 것일까? 쓸모, 이득, 효용이 아닌 무엇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걸까?
이러한 고민을 안고 있던 이 시기에 읽게 된 책이 ‘어린 왕자 – 내 안의 구도자’였다. 책 소개를 읽으며 어느 정도 기대를 했었는데, 기대보다도 훨씬 좋은 책이었다. 아름다운 내용이었다.
(http://aladin.kr/p/e6SqG)
이 책은 겉으로는 동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겪는 내면적 갈등 발생 과정과 전개, 해결에 이르는 전 과정을 담고 있는(출판사 책 소개) 어린 왕자를 해석해주는 책이었는데, 이 중 가장 중심적이고 인상 깊었던 내용이 관계 맺음을 통한 자아 확립, 정체성 발견이었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네 장미를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바로 네가 장미를 위해 정성 들여 쏟은 시간이야”
그냥 읽어도 참 아름다운 내용이었지만 책은 이 내용을 아주 구체적으로 해석해주었다.
"바로 앞 장에서 우리는 한 개인의 고유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고민하는 장면을 보았다. (장미꽃들이 가득 차 있는 정원을 보고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있던 장미가 특별한 장미가 아니라고, 그렇기에 특별하지 않은 장미를 가꾼 자신 또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에 대해 여우가 내놓은 답은 ‘관계 맺음'이다. 물론 그 관계의 전제는 도구적인지 않고 인격적, 실존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그런 관계의 경험은 고유할 수밖에 없다. 일견 관계의 형태가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내용은 상호 간의 의미부여와 해석의 개입에 의해 완전히 고유한 것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연인이 있다 해도 모든 연인은 고유한 관계다."
한 사람의 고유함, 한 사람의 의미는 거래에서의 쓸모, 효용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실존적 관계 맺음으로부터 온다니! 참 멋진 말이었다. 그렇지만 인격적, 실존적 관계 맺음이란 무엇일까?
“저길 봐,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그래서 밀은 나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존재야. 밀밭을 보아도 난 어떤 감흥도 생기지 않지. 그건 나에게 정말 슬픈 일이란다. 그러나 너의 머리카락이 금빛이니, 네가 나를 길들여 놓게 되면 얼마나 멋지겠니? 난 금빛으로 빛나는 곡식을 볼 때마다 널 생각할 테니 말이야. 그리고 밀밭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에도 귀 기울일 테지…”
"여우는 금빛 머리칼-밀밭-바람 소리로 이어지는 관계망의 확장을 말하고 있다. 너를 사랑해서 너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들과 너를 존재케 하는 모든 것들마저 사랑하게 된다는 여우의 말이야 말로 인간 정신의 성장 방향을 단적으로 압축한다. 인간의 정신적 성숙은 한 마디로 끝없는 집착적 동일시로부터의 탈피 과정이다. 이 과정은 한 개인이 완전히 자기중심적인 유아 시절을 지나 타인의 입장을 내면화해보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그러고 나서야 연인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소속 사회로, 국가로, 민족으로, 인류로, 온 생명권으로 관심이 확장되어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말 좋은 책이었다. 읽으면서 몇 번을 가슴 울리게 하는 책이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때의 내 상황은 좀 우스웠다.
밤에는 이 책을 읽으며 깊이 감동하고
‘그래!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야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농장일을 시작하면 여지없이 내 눈 앞의 사람을 미워했다. 그러다가 그날 밤이 되면 다시 책을 읽으며 감동하고 오전의 내 모습을 반성했다. 그러다가 그 다음날 일을 시작하면 또다시 눈 앞의 사람을 미워하고...
책 내용이 너무 좋았는데 내 생활은 너무도 동떨어져있었고 그러면서도 책 내용에 집착해 아주 이상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