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 [수잔]
종종 잊곤 한다. 사람의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목소리로 들려주는 노래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노래를 잘한다는 건 단순히 천장을 뚫는 고음을 내는 게 아니다. 지축을 흔들듯 떨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문장이 얹힌 멜로디를 목소리에 잘 담아내는 것이다. 목소리를 수식할 형용사는 한 두어개면 충분하다.
김사월의 첫 앨범 <수잔>은 목소리의 음악이다. 좋은 목소리란 별다른 기교없이도 충분히 노래하는 이의 마음을 전하고 듣는 이와 공명한다는 사실을 새삼 알려준다.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홍대앞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하던 김사월의 목소리가 세상에 알려진 건 2014년 10월 발매된 김해원과의 듀엣 앨범 <비밀>이었다. 제인 버킨과 셀쥬 갱스부르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던 고혹적 에로티시즘을 재현한 이 앨범은 애호가들 사이에 조용하지만 깊은 잔향을 피웠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소개된 ‘비밀’과 ‘지옥으로 가버려’의 라이브도 당장 이들의 공연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 입소문과 평가가 쌓였다.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그들이 신인상을 탄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원숙한 음악이지만 현재 한국 음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신선함이 또렷했으니까.
<비밀>로부터 1년, 김사월이 첫 앨범으로 돌아왔다. 김사월X김해원에서 보여준 소리의 표정이 차분한 팜 파탈이였다면 <수잔>에서의 김사월은 사려깊은 소녀의 일기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뜨문 뜨문 써나간, 특별한 사건에 대한 담담한 소회가 빼곡하다. 그 소회들을 관통하는 문장은 김사월의 목소리다. 갸녀리지만 선명하고, 처연하지만 담백한 목소리로 그녀는 열 한 곡의 노래마다 그에 걸맞는 감정을 표현한다. 그 폭은 크지 않다. 대신 섬세하다. 스트라이크 존을 결코 벗어나지 않지만 1cm단위의 제구력으로 9회동안 스물일곱개의 삼진을 잡는 투수처럼 정교하다. <수잔>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만 지루하지 않은 이유다. 오히려 노래 하나 하나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다. 지금 한국 음악계에서 이런 목소리를 떠올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비밀>에서 그녀와 목소리를 맞췄던 김해원은 이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노래의 합을 맞춰봤기에 김사월의 목소리가 가진 특성을 더욱 잘 알 수 있었을 터, <수잔>의 중심축이 무엇이야 하는지를 명확히 했다. 역시 김사월이 연주하는 어쿠스틱 기타를 전면에 흘리고 그 곁에 현악기와 관악기, 그리고 약간의 리듬을 곁들인다. 요리로 치자면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누벨 퀴진과 같다. 무엇 하나 지나침이 없다. 무엇 하나 뺄 것도 없다. 왜 여기에 이 소리를 배치해야하는지를 담대하게 설득하는 것이다.
<수잔>의 장르는 포크지만 달달하지 않다. 생각해보면 포크는 원래 부드럽긴 해도 달지 않은 음악이었다. 월간지를 통해 펜팔 친구를 찾고 취미란에 음악감상과 독서를 적는 게 일상이던 시절, 일본 인디 영화가 아니라 세계 명시선을 읽으며 감성을 키우던 시절의 포크는 그랬다. <수잔>도 그렇다. 옛스럽지만 촌스럽지 않고, 퇴색했지만 낡지 않은 음악이다. 매년 낙엽은 떨어지고 가지는 앙상해진다. 하지만 매년 느끼는 감정은 새롭다. 스산한 가을의 변치 않는 그런 풍경이 <수잔>에 담겨 있다. 사람의 목소리는 아름답다. 김사월의 목소리야말로 이를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로 남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많은 이들과 이 목소리를, 이 풍경을 나누고 싶다.
젊은 여자
*<주간동아> '김작가의 음담악담' 원고를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