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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의 맛

사라다빵

풀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몸은 나른하고 식욕도 떨어지는 봄의 문앞에 서면 비타민과 섬유질이 당긴다. 아삭한 식감과 푸르고 붉은 색감을 즐기고 싶다. 입속에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싶다. 그렇다고 생풀을 씹고 있노라면 소나 양이 된 느낌이다. 드레싱을 곁들여 샐러드로 먹어도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그래 봤자 생풀이다. 야채가 생각나는 봄, 육식성애자인 나의 타협은 사라다빵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매시트 포테이토 샐러드 샌드위치쯤 되겠지만 나는 사라다빵을 고수한다. 외할머니, 그리고 엄마의 손맛이 묻은 이름이다. 외갓집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그 전 동대문운동장, 또 그 전 서울운동장 앞에서 큰 빵집을 하셨다. 주력 메뉴는 두가지, ‘아이스케키’와 사라다빵이었다. 엄마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장안의 아베크족들이 꽤 모였던 곳이라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외할머니는 빵집 사업을 접으셨기에 아이스케키 맛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사라다빵의 맛은 선명하다. 

보통 엄마들이 여행을 떠날 때 남은 가족들을 위해 곰국을 끓여놓고 간다고 하지만, 우리 엄마는 사라다빵을 종종 해주곤 했다. (물론 여행용 아이템은 아니었다.) 아무도 ‘샐러드’라 하지 않고 ‘사라다’라고만 하던 그때에 우리집 사라다는 다른 집 사라다와는 달랐다. 사과 같은 과일과 마카로니를 마요네즈에 쓱쓱 무쳐서 내놓는 그 사라다 말이다. 그러나 우리 집의 사라다는 감자와 계란, 마요네즈를 어떻게 어떻게 해서 오이 같은 야채를 넣고 또 어떻게 어떻게 해서 먹는 거였다. 그냥도 안 먹었다. 늘 잼처럼 식빵에 발라서 먹었다. 지금보다 엄마와 대화가 훨씬 많았던 때, 엄마는 이 사라다빵에 얽힌 스토리를 종종 들려주셨고 나는 사라다를 입가에 묻히면서 엄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 사라다빵을 경무대에도 납품했다던가, 우리 엄마를 쫓아다니던 남자가 동대문운동장 앞 여인숙에 방을 잡고 마음을 받아달라며 시위를 했는데 외할머니가 “아무리 그래도 남의 집 귀한 아들 밥 굶기는 거 아니다”라며 사라다빵을 그 남자에게 갖다 줬다던가. (물론 ‘그 남자’는 지금의 우리 아버지가 됐다.) 엄마의 젊은 시절 이야기, 얼굴도 본 적 없는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난 그렇게 사라다빵을 먹으면서 듣곤 했던 것이다. 

야채가 먹고 싶던 어느 봄날, 갑자기 사라다빵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여자친구에게 먹여주고 싶었다. 엄마에게 레시피를 물었더니, 생각보다 단순했다. 1.감자와 계란을 1:1.5 비율로 삶는다. 2.오이와 양파, 당근을 잘게 썰어 소금에 살짝 절인 후 물기를 꼭 짜낸다. 3.으깬 감자와 계란, 야채와 적당량의 마요네즈를 마구 섞는다. ‘살짝’ ‘꼭’ ‘적당량’ 이런 단어들이 들어 있는 게 문제였다. 대부분의 집밥 레시피가 갖고 있는 바로 그 문제 말이다. 별수 있나. 소량으로 실험을 해봤다. 아하, 이런 거구나. 먹던 기억을 되살려 내가 만든 사라다의 약점을 보완해나갔다. 여자친구에게 먹였다. 역시, 좋은 반응이었다. 뿌듯했다. 장사가 서서히 궤도에 오르던 때의 외조부모의 마음이 그랬을까, 친구들을 데려와서 엄마가 만든 사라다빵 자랑을 하는 아들을 보던 엄마의 마음이 그랬을까. 엄마에게도, 할머니에게도 묻지는 않았다. 물었으면 두 분 다 기꺼이 대답을 해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 자체가 낯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그런 남자가 돼버렸다. 남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며 이 사라다빵의 스토리를 내심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 스토리의 주인공들에게는 정작 내색하지 못하는 그런 남자가 돼버렸다.


한겨레 '김작가의 해먹거나 사먹거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8&aid=0002310073&sid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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