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음모론, 가짜 기사가 아닌 순전히 개인 생각임을 밝힙니다
역사의 한 순간을 살고 있는 지금 전 세계 사람들. 나 역시 그 중간에 서서 기가 막힌 일들을 겪었다. 지난 1월 중순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재택근무로 할 수 있는 통번역이 있어 면접을 보러 갔었고, 내가 사는 소도시에 이렇게 좋은 마스크 회사가 있다니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처음 가본 마스크 공장이었으니 그랬을 수도). 소도시가 아닌 대도시에서 열리는 수출 상담회 등에 참가해보면 어떨까 싶어 입사 여부를 막론하고 사장님에게 경제진흥원 등 기관을 통하여 신청해볼 것을 권유했다. 미세먼지가 많은 계절에는 내수로도 바쁘다고 하셨지만 차후에 중국 진출도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기에.
페이를 얘기하면서 조건이 안 맞아 거절을 하고, 설 연휴를 맞았다. 설 연휴 이틀 전부터 남편이 '이상하다, 크게 벌어질 거 같다'면서 안주삼아 중국 인터넷 뉴스만 저녁 내내 들여다봤다. 풉! 내가 메르스 때도 한국에 있었지만 당시 집 앞의 대학병원이 봉쇄되었을 때도 금방 지나갔기에, 이 코로나는 한국에게 있어 역시 우스운 존재일 뿐이라며 설을 맞이했다. 설까지도 괜찮았다. 친척들이 중국인인 남편(남편은 한국에 있으니 패스)의 친척을 걱정해주었다. 친척들이 있는 곳은 진원지에서 먼 곳이라 괜찮다고 웃어넘기며 설 연휴를 마쳤다.
설 연휴 마지막 날, 남편이 '마스크 우리도 사야 하나?'라고 물었고, 난 '괜찮겠지'.
연휴 후 출근 한 남편에게서 낮에 전화가 왔다. 바빠서 좀처럼 전화가 힘든 직장이지만 전화를 했다는 건 급한 일이라는 것. 아마도 위챗에서 마스크 판매가 활개를 친 시점이지 싶다. 연락 끊긴 지 10년 된 친구에게도 다짜고짜 '형, 마스크 구할 수 있어'라며 메시지가 왔단다. 한국에 있다는 건 다른 사람 통해 알고 있었고, 우선 먼저 구하는 사람이 임자니까 바로 남편을 찾았나 보다.
우리도 뛰어들어야겠다 싶어 남편은 인터넷으로 마스크를 구입하라고 했다. 그냥 다음날 배송되는 사이트를 찾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잠시 일을 하고 2시간 여 지나고 보니 3000원이 고스란히 올라 있었다. '요것 봐라?'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내가 할인 쿠폰 같은 걸 잘못 건드려 뭐가 복잡하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건 있어도 분명히 하루가 지난 것도 아닌 사이트에서 당당히 가격을 올리다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고, 그다음으로는 무서웠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했다(참, 웃기고 유치한 표현이지만... 지금 우리는 그 폭풍우 속에 마스크 끈을 절실히 잡고 있지 않은가).
그날부터 처음 1주일은 무조건 사는 것. 단가 500원부터 매일 300-500원까지 구매 기준이 올라갔다. 처음 단가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나지만 남편이 중국에서 친구들에게 주문받는 가격은 2배 이상이었다.
그다음 1주는 목을 빼고 물건 기다리기. 이미 봉쇄된 우한과 전국적으로 자가 격리가 들어간 중국이라, 아이들 고모와 남편 친구들은 오히려 길길이 날뛰면서 '빨리, 빨리'를 외치는 우리와 달리 깊은 이해심(?)으로 이해해주었다. 자기들은 집 밖을 못 나오고 전쟁통이니 기다리는 수밖에 더 있겠나.
또 그다음 1주부터는 판매자의 취소가 시작되고, 혹은 재고가 없어 2월 말에 순차적으로 배송된다는 답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다음날 배송되는 사이트에서 구한 친척들이 급한 마스크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고, 한 다리 건너 친구들의 물건들이 남았었다. 그리 자주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래, 기다려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2월 3일에 아이들 고모 친구에게 부친 마스크는 3월 초에 도착했다. 한 달이 걸리는 EMS, 분명 전쟁과 유사한 상황이 아니고 이런 결과가 나오겠는가.
처음에 말한 마스크 공장을 아직 기억하는지? 만약 그 회사에 내가 조건 불문하고 일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제안을 거절하면서, 아주 공손하게 '귀사의 번창을 기원'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고 문자를 보냈었는데...
마스크를 몇 억대로 쓸어 담는 중국인 브로커들이 판을 치고 있기 전부터, 그러니까 설 연휴 끝나고 나서부터 면접 본 회사의 사장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 너무 바쁘시죠? 혹시 마스크 구입 가능할까요? 제가 가지러 갈게요.' 이렇게 보내는 것조차 너무 죄송했다. 다행히 바로 답이 왔다. 어떤 게 필요한지 정확히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KF94로 500장 정도를 부탁드렸다. 몇 번의 전화와 문자 독촉 후 800개를 받았다. 이체할까 하다가 현금으로 드렸다. 그날 뉴스에 보니 브로커들은 몇 십억씩 현금을 가져온다고 했던가. 바쁜데 그 자리에서 은행 이체 운운했으면 얼마나 화가 나셨을까. 받기 전까지 전화를 두 번 정도 해봤는데 통화 중 아니면 받지 않으셨다. 오죽하시겠나 싶으면서 나까지 한숨이 나왔다. 나도 이렇게 콩닥콩닥하는데 사장님은 어떠실까? 약 3일 만에 물건을 받은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큰 상자의 마스크를 보며 입꼬리가 춤을 추었다. 몇만 원 번 게 아니라 몇 억은 번 거 같은 느낌? 이제 시작이야. 하지만 그 후로 사장님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물량도 높이고 가격도 높여서 제시해봤으나 묵묵부답이었다.
그럼 2월 말에 온다는 몇 백개만 기다려보자. 근데 2월 중순부터 중국의 확진자가 안정세 혹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남편은 고민 후 도착하지 않은 800개 정도를 취소하라고 하였다. 나는 이틀 정도 고민 후 주문 취소를 눌렀고, 그로부터 이틀 후 대구에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아이들은 휴교를 하고, 너도 나도 자의 반 타의 반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렇게 비껴가는 운명(?)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역시... 남편과 나는 도박이나, 로또 등 요행과 운이 필요한 것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깊이 깨달았다. 집에는 KF94 마스크가 3개 남았고, 사장님에게 받은 마스크는 마지막으로 시어머니와 이모 식구들에게 준다고 따이공을 통해 보내고 3일 후에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말 웃기는 상황이라고 밖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까 말한 대로 그 회사에서 일을 했다면? 2월 말에 도착하기로 한 마스크를 취소하지 않고 계속 기다렸다면? 생각만 해도 마스크 회사에서 참 버라이어티 한 매일이 됐을 그 기회를 2, 3일 상간으로 놓치고 나서, 난 지금 집에서 재택근무로 밤을 새 가며 일을 하고 있다. 낮에는 아이들이 있으므로.
내가 오늘 말하려는 요점은 이게 아니었는데, 너무 흥분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요점은 아래에 있는 사진이다. 통번역 건으로 한국의 기관장과 만나러 왔던 중국 모 도시 창업 인큐베이터 회사의 회장인데, 3년 전쯤 위챗을 교환하고 단 한 번도 연락한 적 없다가,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중국 거는 사고 싶지도 않아!'라는 반응은 그냥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을 거듭해봤다. 창업 인큐베이터 회사 회장 아닌가? 그렇단 말은 내용에 나와 있듯이 최근 아이템을 잡고 창업을 한 것이다. 전국이 봉쇄 어쩌고 해도 이 사람들은 그 사이에 공장 생산자를 연락하고 브랜드를 론칭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마음의 소리는 '너 일부러 그런 거지?' 물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지. 하지만 한국이 심각해진 후 단 한 마디 위로나 걱정의 메시지도 없던 3년 전 통역 클라이언트가 ‘위생 보건 제품으로 브랜드 론칭하니까 필요하면 거 있으면 리스트 보고 얘기하시오’라니.
나라 상황이 뒤숭숭하고, 수중에 마스크는 없고, 아이들은 집을 운동장 삼아 놀고, 그 와중에 난 노트북 앞에 앉아 새벽까지 번역일을 해야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 삼시 세 끼를 차려주며 사람 없는 시간대를 잡아 아이들과 바깥 놀이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외부의 모든 접촉이 가시처럼 느껴진 거라고 나를 자책해본다.
그래 세상은 준비한 사람의 것이고, 정치, 경제, 사회를 관통하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기회와 복이 넘치는 곳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모르겠다. 그냥 울화통이 치밀고, '이건 분명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는 거야'라는 괴상한 논리로 밖에 생각을 못하겠다. 약 한 달은 집에만 있다 보니 내가 미쳐가는 건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자는 틈을 타 진도를 팍팍 나가야 하는데 내 작지만 기막힌 사연을 어디서 풀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서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본다. 그럼 이제 자발적 자가격리 및 재택근무를 향하여 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