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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May 12. 2020

도시 봉쇄의 시간

내가 사는 도시는 5주째 락다운(도시 봉쇄) 중이다. 시기상으로는 지난주에 행정명령이 끝났어야 하는데, 코로나 확진자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6월까지 유효기간이 연장되었다. 학교, 회사, 쇼핑몰, 음식점, 카페가 모두 문을 닫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회사 모니터와 의자를 가져와서 재택근무를 한다. 마지막으로 친구와 회사 동료들을 본지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시는 유령처럼 부유하고, 사람들은 현관문을 열지 못한 채로 살이 찐다.


식료품을 사거나 야외에서 격렬한 운동을 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외출은 금지되었다. 많이 답답할 줄 알았는데, 나는 바이러스를 통해 스스로가 하드코어 집순이라는 것을 증명해 내었다. 격리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고통스럽지 않다. 집에서 일을 하고 밥을 해 먹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그림을 그린다. 이 순서를 한 번만 진행해도 하루가 금방 간다. 일주일에 한 번, 운동을 하러 밖으로 나가서 햇볕을 쬐고 비타민D를 섭취하는 정도다.  

 

지난 주말에는 저수지가 딸려 있는 공원에 운동을 하러 갔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일곱 시쯤 출발했다. 이 저수지에 한 번도 혼자 온 적은 없었다. 늘 친구들과 숲길을 걷고 카약을 탔었다. 무척 오래된 기억이 아닌데, 왜 이렇게 뿌옇게 느껴지는 것일까.

 

공원의 언덕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중국 악기인 얼후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는 다 늘어난 티셔츠와 그보다 더 낡은 슬리퍼 차림에, N95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마스크와 얼후라니, 코로나가 불러 온 '뉴 노멀' 시대 음악가의 옷차림인 것일까. 비현실적인 그의 모습에 더해 이른 아침의 얼후 선율이 너무 처연해서, 순간 사후세계에 들어선 것인가 싶었다. 나는 영혼이 되어 삼도천처럼 보이는 저수지를 건너고 있는 것일까, 나를 데려가려 하는 저승사자는 N95를 끼고 세이렌처럼 얼후로 나를 불러들이는 것일까.


멀리 떨어져 얼후 연주를 듣고 있자니 할아버지가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그와 눈을 맞추고 서로 인사했으나, 마스크에 가려 입모양은 알 수 없었다. 이 도시에서 우리는 언제쯤 얼굴을 보며 인사를 나눌 있게 될까. 나는 언제쯤 다시 친구들과 이곳을 걷고 카약을 있게 될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아 진 시간에 도달해 버렸다. 2020년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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