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ir de Lune

피아노가 제일 좋아

by 여노노

유년시절 가장 처음으로 경험했던 사교육은 피아노 학원이었다. 조그만 동네 학원에서 나는 퍽 성실한 편에 속했다. 일주일에 세 번, 학원에 가는 날은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상상으로 가득한 시간들이었다. 내가 피아니스트의 꿈을 어찌나 이야기하고 다녔던지, 엄마는 여섯 살짜리를 식탁에 앉혀놓고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집은 피아니스트를 시켜줄 만큼 돈이 많지 않아. 미안하지만 피아니스트는 안 될 것 같아.”

나의 첫 장래희망이 사라짐과 동시에 우리 집이 유복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날이었다.


그럼에도 피아노가 좋았다. 피아노 실력이 체르니 100, 30, 40번을 향해 가면서, 그 시절 피아노 학원 혹은 시, 도 주최 콩쿠르ㅡ엄마는 이걸 ‘가짜 콩쿠르’라고 지칭했다ㅡ에 지원해보지 않겠냐는 선생님의 권유를 이따금씩 받았다. 하지만 내가 ‘가짜 콩쿠르’에 나가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가짜 콩쿠르’ 였기 때문이다(!!)


어느 해부턴가 피아노 학원에선 매 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근처 웨딩홀을 빌려 작은 연주회를 열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레 참가했고, 우리는 장장 두 달 동안 각자의 연주회 곡으로 선정된 곡만 연습하고 연주회에서 실력을 뽐냈다.


‘가짜 콩쿠르’를 극히 반대했던 엄마는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연주회’를 무척 좋아했다. 내가 연주회에서 입게 될 드레스를 고르느라 신이 났고, 필름을 두 통씩 사서 연주회에 왔다. 마지막 연주회 때는 급기야 비디오카메라를 구입했다. 엄마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연주회에 왔던 2003년, 나는 곧 졸업을 앞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선생님께서 피아노 학원의 최연장자에게 하사한 곡이 바로 드뷔시의 <달빛 Clair de lune>이다. 두 달 동안의 특훈으로 나는 페달도 그럴듯하게 밟고, 건반의 강약조절로 감정표현 비스무리한 것을 할 수 있었다. 엄마는 내 연주를 듣고 우리 딸이 연주회에서 가장 클래식 다운 ‘진짜 클래식’을 연주했다며 한참을 환호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로부터 3년 뒤, 세상과 이별하며 나의 연주를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었다.


조성진의 Clair de lune 을 들으면 초등학교 6학년으로 돌아간다. 백스테이지에서 떨던 나, 그랜드피아노 한켠을 잡고 무대에서 객석을 향해 인사하던 나, 모든 곡을 암기한 대로 연주를 끝내고 후련했던 나,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연주를 들으며 환호하던 엄마 생각으로 몽글몽글하다. 그땐 어떻게 연주했지? 싶게, 지금은 Clair de lune 악보를 보아도 초등학교 6학년의 나처럼 연주할 수가 없다. 손이 굳고 다 잊은 탓이겠지.


갑자기 발견한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한 추억여행은 놓았던 피아노를 다시 연습하고 싶게 한다. Clair de lune 만큼은 외워서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연습해 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