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

삼십대에 대한 단상

by 여노노

빨래 세제가 다 떨어져 새로운 세제로 바꾸었다. 새로운 세제는 이름하야 ‘퍼실(Persil)’.​ 원래 한국에서 자주 보이던 세제는 아닌데 언제부턴가 정식 수입이 되기 시작했는지 광고도 많이 나오고, 나름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세탁기 앞에 서서 빨래를 넣고 물을 받으며 세제 뚜껑을 열었는데 훅 풍겨오는 세제 향기는 마치 플루 가루인 것 마냥 나를 2014년 영국으로 데려다주었다.



영국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집안일은 빨래였다.

세탁기 앞에 서서 세제를 넣고,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드럼통을 보고 있노라면 상념들이 이내 씻겨져 내려갔다. 일 년 중 가장 날씨가 좋다는 5월에 영국에 갔지만 한국에 비하면 흐린 날이 많았고 그래서 해가 반짝 나기만 하면 여지없이 빨래를 했다. 한국에선 상상하기만 했던 마당에 놓인 빨랫줄에 이불보를 곱게 빨아 널어두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볕에 널어둔 빨래는 두세 시간이면 바싹 말라 밤이면 포근한 이불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유독 2023년이란 숫자는 생경하다. 퇴근길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에서 디제이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이제 20년 전을 이야기해도 2000년대라는 것이 정말 믿기지가 않네요"

그렇게 나는, 만 나이로도 30대인 찐 30대가 되었다.

어릴 적 서른이란 단어는 아주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삼십 대를 맞이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심코 맡은 세제 향기에 추억할 거리가 하나 둘 늘어나는 일인가 보다. 나는 어제보다 추억이 하루만큼 더 쌓인 오늘의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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