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과 눈물의 상관관계

나의 prime time을 위하여

by 여노노

원래도 눈물이 많은 편이지만 나의 눈물에는 자신조차 이유를 형용하기 힘든 특이점이 있는데, 소위 ‘국뽕’이라 일컫는 콘텐츠를 소비할 때 하염없는 눈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국뽕’은 국가+히로뽕을 합친 신조어로, 정확한 의미는 국수주의, 민족주의를 내포한다고 되어 있으나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뿌듯해!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겠다.)

우리에게 큰 애틋함과 자랑스러움을 안겨주었던 김연아, 장미란 선수의 올림픽 경기 영상을 보면 운다. 거진 십 년도 넘은 경기 영상을 보고 또 보는 건데도 볼 때마다 계속 눈물을 흘린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은 말해 뭐해. 16강 진출하는 그 순간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 백 번은 돌려봤더랬다. 이만큼 나이를 먹어서야 그들의 인고의 시간이 가늠되어 뭉클한 걸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했던 경기 영상을 보면서 운다면 나도 그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치만 인터뷰를 보면서도 운다. 유퀴즈에 국가대표 누가 나온다면 필수 시청이다. 분명 눈물 날 걸 알면서도 굳이 찾아본다. 주로 울컥하는 포인트는,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과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매일을 지리하고 고된 훈련으로 꽉 채워 본인을 담금질하는 동안 가족과 코치가 곁에 항상 있어주었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무의식 속에 이루지 못한 체육인의 꿈 같은 게 있나 싶지만 급기야 영화 <한산>을 보던 중 가슴께가 뜨거워지다가, 뮤지컬의 주연과 앙상블이 모두 모여 노래하는 씬에서 눈시울이 시큰해지고, 유명 뮤지션의 내한 공연 속 관객의 떼창 영상을 틀어두고도 눈물을 퐁퐁 쏟는다. 주책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나도 당황스럽다. 대체 왜 눈물이 나는 걸까? 국가대표, 영웅 스토리, 뮤지컬, 떼창.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데 말야. 눈물과 함께 흐르는 마음의 근본을 좇아본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이순신을, 뮤지컬 배우들을, 뮤지션을 응원하는 뿌리와 맞닿는다. 눈물은 아주 단순하고 선명하고 명료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성원하는 순간을 정곡하여 흐른다.

그 어떤 자격 없이도 같은 편이 되어주는 것을 사랑이라 정의하는 관념을 알아챈다. 살면서 넘치는 격려와 지지를 받아본 적이 있나 곱씹는다. 여러 날을 되새겨보지만 기억 저편에도 무조건적인 진심의 응원은 잔류해있지 않다. 아, 나의 눈물과 국뽕의 상관관계는 사랑이다. 그토록 갈구했던 사랑의 순간을 마주하면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구나. 받아 본 놈이 주는 법도 안다더니, 의구심을 받아본 아이는 스스로에게조차 의심의 바늘을 겨누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프다.

자신을 향한 낯선 시선이 닿으면 초라해진다. 그래도 무감해지지 말아야지. 혼신의 힘을 다해 감정의 심연을 돌보아야지. 국뽕의 눈물처럼 얼떨떨한 모습에도 침착할 수 있게. 이런 낯설고 조용한 사색을 끈질기게 짝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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