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해

by 여노노

첫 작품을 할 때였다. 호랑이 선생님 같았던 총괄 피디님의 야단을 한참 들었을까. 나를 혼내는 그의 말이 끝나고, 한참을 눈치 보다 그의 이야기 중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피디님, 말씀하신 것 중 이 부분은 알고 계신 것과는 달리 이게 이랬고요. 저게 그래서 저렇게 되었습니다." 하고 공손히 말했다. 내 얘기를 듣던 사수는, "넌 뭐가 그렇게 맨날 억울하냐?"라고 반문했다. 당시에는 억울하냐는 핀잔을 들은 것도 억울해서 있는 힘껏 입을 앙다물고 울음을 삼켜야 했다. 사수의 꾸지람은 나름 큰 울림이었는지 꽤 오랜 시간 머릿속을 선회했다. 그때 처음 자각했던 것 같다. 내 안에 억울이가 있다는 사실을.

어떤 일이든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대립할 때 자신을 쉽게 피해자의 위치에 두곤 한다. 부모님은 훈육에 매우 엄격한 편이었는데, 엄마의 화가 촉발되면 그 이후로는 어떠한 말도 듣지 않았다. 엄마의 시선에선 나의 입장이 무엇이든 변명이었다. 나도 나름대로의 생각과 이유가 있는 행동이었는데 내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혼나야 했던 게 매우 원통하였다. 분한 마음으로 비롯된 자아가 '억울한 나'인 셈. 억울한 감정은 자신을 유아로 퇴행시키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수용을 갈망하였기에 쉽게 억울해했었다손 치더라도 이만큼 나이를 먹어서도 억울하냐는 꾸지람을 듣다니, 아기가 되어버린 것 같다. 야무지고 똑 부러진 페르소나를 온몸에 덕지덕지 걸치고, 있는 힘껏 어른의 모습으로 무장했지만 그 속에는 아주 조그만 아이가 실재하는 꼴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을 주지 않는 법을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친구든 동료든 연인이든 너무 쉽게, 많이,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어 그로 인한 상처를 크게 받는다고. 사람은 모름지기 학습의 동물일진대 그렇게 생채기가 났음에도 배움은커녕 나도 모르는 새 또! 마음을 퍼주고 있다고. 어쩌면 당신의 시속을 고려하지 않고 나의 속도로 상대를 밀어붙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푸념 섞인 근심을 한참 듣더니, 내가 주는 마음 안에 나의 지분은 얼마나 있는지 상기해 보라는 현답에 반향이 인다.

맞다. 내가 주는 마음 속에는 '나의 마음을 받고 기뻐할 당신'의 몫이 가장 크다. 내 마음이지만 나의 몫은 아주 일부다. 온몸이 상대만을 쳐다보며 기대하고 있으니 그만큼 실망이 큰 건 당연한 일이지. 내가 이만큼이나 너를 생각했다고, 나보다도 널 우선순위에 두었다고, 그 애씀을 왜 몰라주냐고. 그 실망에서 억울함이 기인한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지분을 늘려가겠다는 다짐이다. 나에게 상대의 마음까지 좌지우지할 권리는 없으니, 나의 마음을 받고 행복할 당신을 기대하기보다 너에게 닿기 전 당신에게 줄 마음을 포장하는 기쁨을 온연히 누리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시나브로 억울한 감정이 낯설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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