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니 나에게 꼭 필요했던 이별 4

넌 나의 금요일 밤을 망쳤어!

by 그루비차차


뉴욕에 사는 동안 나의 22살은 늘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침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오후 3시부터 저녁 9시까지는 파트타임으로 웨이트리스 일을 했다.


뉴욕 지하철을 타면 ‘멜팅팟’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인종과 여러 개성이 뒤섞인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은 1년이 넘도록 지루해지지 않는 일 중 하나였다.


자신의 성기를 몰래 자랑하는 흑인도 만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지옥불에 빠진다는 무서운 목청 높은 아줌마도 만났다.

건전지를 1달러에 파는 중국인도 있었고, 아름다운 용모의 모델 같은 남자 커플 연인을 보며 넘볼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맨해튼에서 파트타임으로 웨이트리스 일을 마치고, 퀸즈지역에 오는 세븐 트레인 안은 늘 에너지가 넘쳤다.

대부분은 맨해튼에 직장을 두었으나 생활비 때문에 퀸즈 지역에 사는,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로 늘 북적거렸다


그날도 일을 마치고, 지하철에 앉아 이런저런 공상을 하면서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는데, 나를 빤히 쳐다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슬쩍 쳐다봤는데, 백인과 스페니쉬의 혼혈처럼 보였다.

하얀 얼굴, 약간 곱실거리는 갈색 머리에 소년 같은 주근깨, 깔끔한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대뜸 나의 외모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You’re so adorable.

내 귀를 의심했다. 어도러블?

사랑스럽다는 표현을 한국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큰 키와 큰 손 때문에 술자리에서 탁자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으면, 짓궂은 선배들은 버르장머리 없이 누가 발을 올려놨냐고 놀리기 일쑤였다.


여자들은 참 한 가지 단어에 기분이 좋아지나 보다.

‘어도러블’이란 표현에 꽂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 남자는 아시아 여성, 특히 한국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남자인 것 같았다. 한국의 문화가 잘 알려지지 않은 1998년이었는데, 한국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꼬시려고 하는 것이 느껴질 만큼 다분히 의도적이고, 목적이 보이는 대화가 오갔다.


20대의 어린 대학생이 외국에 나왔을 때, 쉽게 영어가 느는 방법으로 흔히 현지인을 사귀라는 얘기가 나돌던 때였다.


나는 겁이 많았다.

미국에 오기 전에 남자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첫 경험을 영어를 목적으로 외국인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고, 더 보수적으로 행동해 왔다.


‘한번 적극적으로 행동해 볼까?’

마음속에 이 남자의 칭찬으로 용기란 것이 생겨났다.

다음의 만남을 약속하고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집으로 전화가 오면 떨리는 목소리로 받았다.

‘그래 전화 영어라고 생각하자고!’

미리 연습장에 하고 싶은 말을 잔뜩 써놓고, 할 말이 끝나면 ‘오케이 바이’였다.

그렇게 며칠을 매일 통화하고 나니, 조금 친해졌다고 느껴졌다.


영화를 같이 보자고 했다.

나는 그러자고 했고, 첫 데이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의 주소를 불러줄 때, 왜 주소를 알려주지? 영화관에서 만나면 될 걸이라고 생각했지만, 집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의 룸메이트로 보이는 남자가 황급히 외출하는 것을 보았을 때도 그냥 볼일이 있는가 보다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는 집을 둘러보게 해 준 후 소파에 편안하게 앉았다.

여기서 보자는 것이다. 영화를.

단둘이. 빈집에서.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어.. 어.. 그러니까 나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싶다고 얘기했고, 그는 나를 설득하다가 급기야 화를 내기 시작했다.

화를 내는 그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씨발 너에게 내 첫 경험을 주고 싶지 않다고!’


등 뒤로 문을 열고,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You ruined my Friday night!”

넌 내 금요일 밤을 망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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