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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글레 May 29. 2020

골짜기를 바라보며

혐오에서 연민으로

마음을 나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던 그 시절엔 모든 게 엉망이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강렬하게 하면서도 죽는 게 너무 두려웠고, 치밀어 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감당할 수 없어서 항상 일로 도망치곤 했다. 일과에서 일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일만 했다. 막차 퇴근이 일상이었고, 주말 근무가 당연했으며, 새벽 두세시에 택시 타고 퇴근하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초과근무수당이라는 게 따박따박 나오던 좋은 시절이었지. 그래서 월급보다 야근 수당을 더 많이 받기도 했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로 출장도 많이 다녔는데, 덕분에 팔자에 없는 비즈니스 클래스, 퍼스트 클래스도 타봤다. 라운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팅을 하다가 비행기를 놓칠 뻔한 적도 있었지. 


하지만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나는 늘 연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지내고 나면 정작 혼자 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울고 싶은 기분이 되곤 했다. 울고 싶은 기분이 쌓이면 실제로 눈물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이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거지. 그냥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줄줄 나왔고 지하철 타고 퇴근하는 길에도 눈물이 줄줄 나왔다. 그게 계속 반복되다 보니 나중엔 눈물이 나도 놀랍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우는데도 놀라지 않는 나, 내가 갑자기 우는데도 놀라지 않는 나에 놀란 나, 내가 갑자기 우는데도 놀라지 않는 나에 놀란 나에 놀라지 않는 나, ... 


무수히 많은 내가 있었지만 결국엔 딱 두 명의 내가 있었다. 어딘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갑작스런 눈물을 터뜨리는 나, 그런 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팔장을 끼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나. 가끔은 둘 사이에 깊게 패인 골짜기를 조심스레 내려다보기도 했다. 저 아래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서 괜히 돌멩이를 던지고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지. 하지만 들려오는 건 끝없는 고요뿐이었다. 


'우울이란 어쩌면 마음에 생긴 이런 골짜기를 일컫는 말일지도 몰라.' 들리지 않는 메아리에 귀 기울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마음에 생긴 골짜기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강렬한 자기혐오가 조금씩 누그러진다.


그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었던 나의 나약함,

그런 방식으로 인생을 낭비한 나의 어리석음,

망가져가던 나를 구원하지 못한 나의 무능함, 

망가져가던 나를 그냥 내버려둔 나의 비정함, .. 


그것들을 혐오하기보다는 안쓰럽게 생각해 달라고, 

지금보다 어렸던 과거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거라고,

비열한 합리화에 지나지 않을 지라도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당시의 나를 변호하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 본다. 거기에는 팔짱을 낀 냉소적인 내가 서 있다. 냉소적인 나는 한숨을 쉰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씹어뱉듯 이런 말을 한다. [ 내가 다 봐서 알아. 좀 한심하긴 하지만, 그 때의 쟤로서는 저게 최선이었어. ]  


냉소적인 내가 울고 있는 나를 한 마디 두 마디 변호해 줄 때마다 우리 사이 골짜기가 조금씩 메워진다. 나와 나 사이 골짜기가 메워질수록 혐오는 연민으로 조금씩 바뀌어 간다. 나는 그 연민의 힘을 빌어 나를 끌어 안는다. 그렇게 한 번의 화해를 하고 나면 검푸른 멍이 조금은 연해진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혐오의 낙인처럼 느껴졌던 그 검푸른 멍에도 희미하게나마 연민의 기억이 새겨진다. 


그 연민의 기억은 내가 다시 내 편이 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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