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은 작아졌지만 실패는 아닙니다.
빛이 잘 드니까, 앞날은 밝을 거야
23년 7월에 오픈을 했던 내 공방은 1년 뒤에 더 좋은 공간으로 옮겼다. 월 고정비가 40만 원쯤 더 들어가는 역세권에 빛도 잘 들고 관리도 잘 된 좋은 건물이었다. 원래도 손님이 많았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전을 하게 된 건 건물 2층에 같이 살던 집주인아저씨의 엄청난 간섭과 영업 방해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골목이라 가게가 잘 보이지도 않는데 집주인아저씨는 내 가게 문 앞에 앉아 철근을 자르고 폐지를 접어 모아 산더미만큼 쌓아놓았다. 감성 캘리그라피 공방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잦은 주차 시비가 있었고 수강생들이 딱지를 끊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무엇보다 육아와 외부 수업으로 자리를 자주 비우는 내게 1층 공방은 부담스러웠다. 출강을 나간다는 말을 써붙여 놓아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겐 그저 '불 꺼진 공방'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전부터 점찍어 둔 새로운 공간을 계약했다. 깔끔한 새 건물에 빛도 잘 들고 1층도 아니라 수강생이 올 때만 자리를 지켜도 공방 평판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주차 시비를 걱정할 일도 없었고 화장실 문이 잠겨 비상탈출을 할 일도 없었다. 월세가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을 빼면 나에겐 최적의 공간이었다.
슬픈 이야기지만 이 좋은 위치에서도 수강생이 그렇게 많이 모이지는 않았다. 캘리그라피 수강생은 가끔 있었고 글씨를 교정하는 학생들이 조금 더 자주 왔을 뿐이다. 딱 월세 정도를 벌며 근근이 공방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운영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남는 공방 공간을 셰어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그렇게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햇빛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이 멋진 공간이 내 앞날을 밝혀줄 줄 알았는데 그만 내가 몰고 온 어둠이 공방까지 드리워버린 것 같았다.
공방은 작아졌지만,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공방을 셰어 하던 선생님을 내보낸 후, 나 또한 건물에서 방을 빼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방을 보고 나는 '깜냥'이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나는 이 건물에서 일할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을 인정한 후, 더는 나의 철없음 때문에 가족을 희생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공방에 짐이 점점 비워질수록 자꾸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내가 처음 공방을 시작할 때, '웃고 떠들며 노는 듯 일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주로 30대 이상의 여성들이 모이는 따뜻한 공방을 꿈꾸며 한 말이었다. 누군가 이 말을 듣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말'이라고 아주 간곡하게 돌려서 말해주었다. 그때는 생각이 나와는 많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틀리고 그분이 맞았다. 감사하게도 그분은 나를 지켜주기 위하여 쓴소리를 해주신 것이다. 정말로 공방은 하나하나 나의 노력 없이는 절대 돌아가지 않았고, 그저 그렇게 쉬엄쉬엄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은 그냥 놀고먹고 돈 쓰며 이기적으로 살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음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패했다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내가 벌인 일이었으니 '망해서, 실패해서' 이런 단어는 쓰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그리고 정말로 나는 아직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일을 잘하는지, 어떤 방식을 선호하는지, 어떻게 사업을 꾸려나가야 지속 가능한지... 어디에 속하지 않고 혼자서 처음과 마지막까지 일 해내는 법을 근 2년간 몸으로 뛰며 배웠다. 아무리 강의를 들어도 실제로 해보지 않고서는 무슨 일이든 완벽히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나는, 여전히 나의 일을 이해해가고 있다. 여전히 어리숙하지만 점점 익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실패라는 말을 꺼내기에 아직은 너무 이르다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