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너의 온도

열감기

by 그로브제이

감기 시즌이 찾아왔다.

꽤 오랫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했던 아이라 이번에도 그럴거라 믿었다.

어린이집 친구들이 다들 돌아가며 결석을 할 때도,

'면역력만큼은 괜찮잖아?' 하며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수족구에 걸려도, 독감에 걸려도,

4년차 인생에서 딱 한 번 지독한 열감기로 고생한 것을 빼면

매일 출석에 어린이집 선생님 눈치가 보일만큼 건강한 아이였다.


늘 시작은 남편이다.

아니, 남편의 회사가 원흉이다.

꼭 유행에 빠른 누군가가 스타팅 라인을 끊고 나면 남편이 그 다음 타자가 된다.

그러고 나면 대부분 내가 그 다음 타자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이가 다음 타자가 된 것이다.


일요일 아침 일어나 만져본 아이의 이마는 낯설게 뜨거웠다.

본능적으로는 목요일에 아프던지, 수요일에 아프던지,

왜 하필 일요일에 아파서 일주일을 꼬박 결석하려 하는지에 대한 원망이 들었다.

엄마들은 아이의 상태를 잘 알기 때문에,

일주일 쯤 걸려야 회복되리라는 걸 무의식 중에 눈치챘다.




그러니까 나는 좀, 많이 부족한 엄마다.

어떤 엄마가 아이가 아플 때 어린이집 출석을 걱정할까.

여태 아프지 않아 준 것만으로도 과분한데 왜 또 아프냐고 불평할까.

왜 하필 월요일에 아프냐고 원망부터 했을까.

오히려 이런 내가 원망스럽다.


늘 아이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요즘 나의 말과 행동을 복사한 것처럼 따라하는 아이에게

막돼먹은 정신과 생각까지 물려줄까봐 겁이 난다.

구김살이 있는 엄마를 닮아 없어야 할 구김살도 생길까봐 괜히 미안해진다.


다행히 아이는 하루 이틀만에 열이 내리고 남은 건 조금 심한 기침과 콧물이었다.

기침도 잦아들었을 일주일의 후반 무렵에는 어린이집에 등원해도 되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그럼에도 극구 사양했던 건 잠깐 못된 마음을 가졌던 나를 숨기고 싶어서였을까?




아이는 요즘 잠결에 조그마한 손끝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지금도 그 보드라운 손길에 깬 잠이 다시 들지 않아 쓰는 글이다.

그 손끝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곤 한다.


어쩌면 모자란 엄마가 주는 사랑보다

엄마니까 의심하지 않고 마음을 다한 믿음으로 주는 아이의 사랑이 더 클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아이가 나를 키우고 있다.

아이가 모자란 나의 사랑을 키워주고 있다.

어쩌면 내가 아이의 선생이 아니라,

내 아이가 모자란 이의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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