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와 짜장면과 사골곰탕

이다지도 다른 우리 셋

by 그로브제이

주중 먹다 남은 반찬은 김치찌개와 짜장이었다. 마침 마트에서 좋은 뼈가 나왔길래 두 팩을 사서 사골을 우려내는 중이었다. 입덧 중인 나는 얼큰한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고 딸은 짜장면을 먹겠다고 했다. 그러면 애매하게 남지 않도록 김치찌개나 짜장을 같이 먹어주면 좋으련만 우리 남편은 금방 끓인 따끈한 사골곰탕을 먹겠다고 했다. 그러면 준비해야 하는 게 짜장면이 될 생면과 곰탕에 들어갈 당면, 야채 등등... 늘 음식 메뉴를 준비하다 보면 '대충 좀 먹지' 하는 말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그런데도 늘 한 끼를 제대로 차려먹기를 원하는 남편과 그걸 닮아버린 딸이다. 배달 음식조차도 예쁜 그릇에 보기 좋게 세팅해야 직성이 풀린다니 말 다했다.

그나마 요리를 새로 하는 게 아니라 남은 음식을 데워먹으면 되는 일이라 수월하다. 당면을 불리는 동안 생면을 삶고 짜장과 김치찌개를 데웠다. 갓 끓인 뜨끈한 국을 퍼서 남편 먼저, 그리고 생면에 짜장을 부어 어린이 젓가락과 함께 딸에게 주었다. 나는 김치찌개에 남은 면 조금을 넣고 밥을 펐다. 각자의 개성이 나타나는 삼인삼색 밥상이 되었다.


너 닮은 딸 하나, 나 닮은 아들 하나를 꿈꿨던 우리는 50%의 꿈을 이루었고 정말 딸은 남편을 많이 닮았다. 하지만 어느 때 보면 아빠랑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야말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태어난 것이다. 마치 사골국과 짜장면처럼. 이 새로운 사람이 이제 5살이 되어가면서 '교육'에 대한 나의 고민도 점점 깊어진다. 미운 네 살이 되면서 그저 달래거나 혼내는 두 가지의 방법으로 훈육해 왔다. 입으로 만들어 내는 문장이 점차 다양해지고 꽤 복잡한 생각도 자연스레 표현한다. 어제저녁에는 문득 늦게까지 자지 않는 아이를 다그치며 혼내다 문득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아이는 이제 김치찌개를 먹는 엄마와 사골국을 먹는 아빠 사이에서도 당당하게 짜장면을 외칠 줄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가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배움은 20대 때 다 끝나는 줄 알았던 나는 어리석었다. 세상을 살면서 배울 일이 넘치게 많고 부모가 되면 배울 일이 두 배가 된다. 책도 읽어야 하고 영상도 찾아봐야 하고 어떻게 하면 멋진 한 사람의 인격체로 키워낼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그런데도 답은 선택의 연속일 뿐 정해져 있지 않아 혼란스럽다. 결국은 장난감을 더 사야 해, 더 재미있는 활동을 해야 해 하는 시답잖은 결론으로 끝나곤 한다.


내년이 되면 넷이 된다. 이 아이는 또 엄마, 아빠 그리고 첫째와 달리 어떤 메뉴를 외치는 아이일까 궁금하면서도 걱정이 몰려온다. 비단 또 다른 생명을 키워야 된다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이 아이가 온전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끝없는 고민 때문이다. 정답은 이미 말했듯, 선택의 연속일 뿐이다. 그저 서로 다른 세 개의 메뉴와 또 다른 메뉴 하나가 각각의 개성을 담은 채 하나의 식탁에서 오순도순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