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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추도사 Jan 12. 2023

글 잘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4가지 루틴

글쓰기 강의 B만 받던 학생이 글 밥벌이 하는 사람이 되게 만든 습관

나는 쓰는 사람이다. 밥벌이로 콘텐츠 마케터와 기자를 했고, 일상에서도 꾸준히 운동일기나 에세이를 썼다. 일 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평균 이상의 수준의 읽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뒷단에서 부릉부릉 시동을 거는 작업이 있다.


글쓰기는 마치 칼국수집의 밀가루 반죽을 치대는 것과 같다. 흩어진 가루들, 뻑뻑한 밀가루 뭉치도 반복해서 치대면 보들보들하게 되는 것처럼 흩어진 단어를 모으고, 어긋나는 문장들을 조물거리다 보면 하나의 글이 완성된다. 맛있는 칼국수 요리는 수천번의 밀가루 치대기가 필요한 것처럼 나도 글한 편을 위해 12년째 이어오는 4가지 루틴이 있다.


이 루틴 덕분에
1) '머릿속 엉킨 생각을 명확한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 할 줄 알게 됐고,

2) '나의 문체가 있다'는 말을 듣게 했고,

3) '새로운 관점이 담긴 글이네'라는 평가를 듣게 했다.


새해를 맞아 꾸준히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많을 테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일기 한 줄도 어려울  거다. 나도 12년 전엔 그랬다. 리포트 첫 문장을 못써서 힘들었고 사실 요즘도 한 줄을 명쾌하게 못써서 쌓인 원고가 한가득이다. 그래도 이 4가지를 하면 금세 리듬을 타고 단어를 골라 문장을 쓴다. 이 4가지 중 한 가지만이라도 한 달만 하면 ‘나도 써볼래’라는 자신감이 생길 거다.


(여기서 '글'은 블로그 제품 리뷰나 후기가 아닌 에세이 글을 말한다. 표면적인 감상을 넘어 나만의 생각을 담기고 성찰로 만든 800~1200자 정도의 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매일 해오는 필사 습관, 꼭 무지 오방지 노트에만 쓴다


1. 필사하기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가 맞다. 대학교 1학년때, 어디선가 필사가 글쓰기 능력 향상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침 경향신문에 빠져 있었고, 당시 칼럼진들이 우수했다. 자신의 생각을 우아하고 명료하게 쓴 글들에 매료돼며 손바닥 길이 정도의 '여적'칼럼을 그냥 따라써 본 게 필사의 시작이다.


필사가 글실력을 직접적으로 향상해주진 못한다. 하지만 글을 쓰기 전, 리듬을 탈 수 있게 하는 윤활유는 된다. 반복적으로 좋아하는 문장을 계속 쓰다 보면, 마치 내가 그 문장을 써내려 간 착각이 들고 한 문장정도는 쓸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출근 전에 좋은 글을 읽고 노트에 열 문장 정도 필사했다. 확실히 그날 글이 잘 써진다.


전업작가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첫 문장부터 와르르 쓰지 못해 필사의 도움을 받는다. 여러 강연을 다니면서 질문 했는데 꽤 많은 작가들도 예열작업으로 필사한다고 알려줬다. 필사 글은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칼럼이면 된다. 나는 조선일보 백영옥의 말과 글, 경향신문의 여적을 쓰는 편이다. 그리고 하나의 글로 서른 번 이상 필사한 적도 있다.

 

매일아침 신문을 읽으면서 뇌를 깨우는 루틴을 12년째 하고 있어요.

2. 종이 신문 읽기

잘 읽히는 글은 열린 글이다. 혼자 재밌다고 생각해, 혼자 만의 생각에 갇혀서 쓴 글은 혼자만 재밌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은 항상 세상 돌아가는 일에 더듬이를 세워야 한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그 어떤 것도 종이신문을 대신할 수 없다. 활자 덕후로서 폴인, 롱블랙 등 유료/무료 새로운 콘텐츠를 구독했다. 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를 고르게 선별해, 육하원칙에 따라 정돈된 정보를 전달하는 유일한 매체는 신문뿐이다. 신문을 아침에 읽고 시작하면 어떤 소재든 갑자기 써야 해도 뚝딱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는 에너지를 채워준다.


'어떻게 넌 그런 거 까지 알아?'라는 말도 많이 듣고, 80대 할아버지부터 어린아이까지 그리고 나랑 상관없는 변호사, 회계사, 청년정치활동가까지 아무나 어떤 말을 해도 대충 흐름은 알고 있어서 대화할 수 있다. 이는 신문의 덕이다.


반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은 알고리즘 때문에 비슷한 사람이나 주제만 얻게 된다. 뻔한 정보는 뻔한 글만 쓰게 한다. 롱블랙이나, 폴인의 콘텐츠도 퀄리티가 좋지만 1개월 이상 읽다 보면 그 콘텐츠가 거기서 거기고,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정보와 인사이트를 주기적으로 전달하는 데는 신문만 한 게 없다. 그리고 이미 롱블랙이나 폴인의 콘텐츠류가 신문의 인터뷰나, 토요판에 나온다. 그런데 신문는 한 달에 1만원 정도로 정말 싸다.(그리고 분리수거장이나 은행, 공공장소에서 쉽게 구할수 있다)


신문은 종합일간지를 추천하며(경제신문은 어려워서 가독성이 떨어지고, 종합일간지가 더 다양한 산업을 고루 다루고 있기 때문) 종이신문과 형광펜만 책상 위에 두고 40분 정도 읽는다. 기사마다 지면을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데, 이 크기를 보면서 사건의 중요성을 가늠하기도 하고, 다양한 업계의 이야기를 고르게 봐 세상에 대한 균형감각을 세운다. 특히 신문의 문장은 짧고, 논리적인 지라 대중적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된다.

요즘 도서관은 신간도 빠르게 입고된다. 또 카페처럼 인테리어 한 곳도 많다

3.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기

지식과 취향을 쌓으려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어야 한다. 한때 대형/인터넷 서점에서 책쇼핑을 잠시 했다. 당시 회사에서 책 지원비가 나왔기 때문에 비용 부담은 없었는데 서점은 '광고/마케팅비'와 '매출부수‘, ’작가 인지도‘에 따라서 진열되는게 큰 문제였다. 그때 산 책들은 다 실패했다.


반면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면 80년대부터 지금까지 각 분야의 서적이 이용자 중심으로 진열이 돼 있다. 그래서 여러 책을 마음껏 빌려보면서 나만의 지식 취향을 만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술 에세이에 관심이 많아서 A라는 책을 찾으러 갔다가 그 옆칸에 있는 그 작가의 다른 책을 볼 수도 있고, 그 출판사의 다른 아트에세이를 접하게 되고, 또 모르는 책인데 사람들의 손때가 많이 묻어 있어서 그냥 빌려봤다가 인생 책이 된 경우도 더러 있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면 실패 확률이 높다. 서점이나 출판사도 유행에 따라 출간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즘은 작가는 인플루언서, 분야는 주식이 인기고, 짧고 단편적인 글이 잘 팔린다고 한다. 반면 도서관에서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지식과 취향을 쌓고 관심사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반납한 책 사이에서 의외로 재밌는 책을 발견하거나 10년 전 책인데도 여전히 울림을 주는 책들을 여러 권 발견했다. 서점은 너무 옛날  책이나, 무명작가의 책을 가판대에 올려두지 않아 접할 수가 없다. 서점도 하나의 소비의 공간이다. 그런데 도서관은 사용자가 다양한 분야와 축적된 정보를 쉽게 습득할 수 있도록 책을 정렬하고, 내용을 음미할 수 있도록 열람실이 있다.


좋은 글, 잘 읽히는 글은 정보가 균형 잡혀 있고, 깊이 있는 글인데 책을 읽어야지 쓸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잘 쓰려면 숨 쉬듯 책을 읽어야 하는데, 도서관에서 책 대출을 하면 관심 있는 분야의 지식을 시대 넘나들고 다양한 작가의 관점에서 폭넓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도서관 시설이나 보유책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다. 집이나 직장 주변의 작은 도서관을 꼭 들려보는 것을 추천)

요즘 조선일보 김영민의 칼럼은 스크랩 해서 여러번 읽는다

4. 같은 책 여러 번 읽기

글 쓰는 사람에게 단어는 총알이다. 다채로운 표현은 얼마나 많은 단어를 알고 써봤느냐에 따라 결정되는데 책 한 권을 여러 번 읽으면 한 작가의 표현법이나, 단어를 뇌에 새기게 된다. 정독하거나 소리 내서 읽고 필사를 하면 작가의 문장력을 닮을 수 있다. 또 그가 쓰는 단어를 익히기 위해 국어사전에서 찾아, 적확한 뜻을 인지한다.(별거 아닌 단어일지라도 내가 쓰지 않는 단어는 찾아본다. 예를 들어 머리맡, 물비늘, 모꼬지 등등) 이 단어가 쌓이면 경험과 감성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즉, 다독보다는 정독이다. 수십 번 읽은 책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단어나 문장이 발견되기도 하고, 나의 상태에 따라서 다른 울림을 준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은 필사를 여러 번 했다. '이어령'의 신한국인과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가장 많이 정독했는데 어떤 사안이나 단어를 다르게 보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직장인/ 취준생 에세이를 쓸 때는 제현주의 '일하는 마음'을 여러 번 필사했는데 쉬운 말로 일에 대한 생각을 쓰는데 큰 도움을 줬다. 근데 읽을 때 마다 새롭게 다가온 책들이다.


좋은 사람의 책 한 권이 그저 그런 책 여러 권 보다 훨씬 낫다. 요즘은 하루에 책이 평균 190권이 발행된다고 하는데 쉽게 발간이 되는 만큼 독자로서 좋은 책을 선별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맘에 맞는 작가의 책을 발견하면 정독하면서 그 사람이 쓰는 단어, 사고, 관점을 온전히 흡수해서 나만의 것을 재창조하려고 한다. 반복하다 보면 나만의 문체와 생각이 만들어진다.


슬그머니 아무도 모르게 글실력을 높일 수 있는 습관이에요! @요시다케 신스케


대학교 4년, 매학기 마다 글쓰기 강의를 꼭 하나씩 들었는데, 단 한 번도 A를 받은 적이 없다. 항상 B였고,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기자가 되고 싶었고, 나만의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근데 알맞은 단어 하나 떠오르지 않아 문장 하나 못쓰고, 겨우 쓴 문장은 주술도 맞지 않아 아무도 나랑 글모임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돈도 없어서 학원 강의도 못듣고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했는데 그것들이 위의 4가지 루틴이었다.


처음에는 신문을 매일 읽었고, 그 신문을 읽다 보니 좋은 칼럼을 알게 돼서 필사를 하게 됐고, 그 칼럼을 쓴 작가의 책을 읽고 싶어 도서관에 갔다. 학교 도서관에는 이 모든 것들을 공짜로 즐길 수있으니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세월은 지나고 나는 변해도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으며 뇌를 깨우고, 필사를 하며 손을 꼼지락 거리는 건 그대로다. 주말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는 루틴은 12년째 똑같다. 그리고 이렇게 브런치에 꾸준히 내 글을 올리는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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