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포천 고모호수 나들이
24. 09. 07. (금)
육아 휴직을 시작할 때부터 기대했던 당일 나들이를 처음 다녀왔다. 지난 7월에 휴직원을 제출할 때부터 내심 기대를 하긴 했다. 더위가 한풀 꺾일 즈음엔 둘째가 백 일을 넘겼을 테니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평일 낮 시간 동안 아내와 바람이라도 쐬러 다닐 수 있지 않을까. 그사이 어금니가 깨져서 치과에 다녀온다든가 어린이집 행사에 참여한다든가 하는 일들로 이래저래 미루다가 어젯밤 아내와 의기투합을 이루었다.
오늘 아침도 “엄마 엄마!”를 외치며 일어나는 첫째의 목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아내는 ‘나 오늘 아무것도 못해’를 표정으로 선언하고 있었다. 밤사이 둘째가 자주 깼단다. 아내가 눈을 좀 붙일 수 있게 첫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휴직을 하였어도 여전히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고 있다. 장소만 집 앞 놀이터가 되었을 뿐. 그네와 산책으로 기분이 좋아진 아이와 걷다 보니 어린이집 앞이다. 당장 등원하겠다는 의지가 가상하지만 조금 뒤에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산책 덕인지 유나가 아침밥을 골고루 잘 먹는다. 그동안 아내도 잠을 조금 이겨낸 모습이다. 괜찮은 카페를 검색해서 슬쩍 운을 띄웠다. 반응이 좋다. 피곤과 졸음을 커피와 디저트로 덜어 보자고 살살 꼬셨더니 금방 넘어온다. 첫째 등원을 챙기며 나들이도 같이 준비한다.
고속도로를 추천하는 내비게이션의 권고를 무시하였더니 대가를 치렀다. 광릉 부근 샛길로 드라이브를 하려고 우회로를 골랐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외곽으로 한참 돌았다. 설상가상으로 도로 공사도 발목을 잡는다. 50분을 예상했는데 70분을 넘기고야 도착했다. 카페 실내가 예쁘다. 이곳에서는 오히려 프랜차이즈인 여기가 숨겨진 보물이라는 후기를 믿어 보길 잘했다. 티라미수가 먹고 싶었는데 마침 막 준비 중이었다. 50km를 달려온 걸 생각하면서 평소보다 큰 사이즈로 커피를 주문했다. 창밖으로 호수 둘레길을 살피는데 아내가 웃으며 말한다. “늦게 온 덕분에 티라미수 먹네.” 빙긋 마주 웃는 미소에 일상의 고단함이 단맛과 함께 녹는 듯하다. 사진 몇 장을 더 찍으니 둘째 이나가 졸린지 칭얼거린다. 아이를 달래며 아내와 함께 통장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이런저런 방안들을 나누다 보니 무료 주차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천보산 휴양림 근처 식당에 가본 적이 있다. 근처 대학에서 근무하는 대학 선배 연구실에 놀러 갔을 때 밥을 얻어먹은 곳이다. 인상이 좋았던 곳이어서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제육볶음과 돌솥비빔밥에 곁들인 밑반찬이 참 맛있었다. 며칠 전부터 나물 듬뿍 넣은 비빔밥이 먹고 싶었는데 여기 오길 잘했다 싶다. 아내도 맛있다며 공기를 싹싹 비운다. 밥을 먹으며 그 선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김에 커피라도 한 잔 드리고 가자고 아내가 먼저 말을 꺼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사들고 불쑥 교수 연구실 문을 열었다. 깜짝 방문에도 불구하고 형님 얼굴이 반가움으로 가득하다.
이 형님도 50여 일 전부터 육아 동지가 된 사람이다. 본인은 인생이 늘 벼락치기여서 결혼도 취업도 육아까지 늦깎이로 시작했다고 너스레가 나온다. 아들 쌍둥이 아빠의 얼굴이 푸석푸석하다. 전업으로 애들을 돌보는 형수님의 노고만큼은 아닐지라도 형님 또한 전래 없이 지친 표정이다. 국어쟁이 셋이 만나니 육아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 전공 이야기가 나온다. 학계 동향이나 국어 교과 관련 활동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개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향상심이 자라는 일은 즐겁다. 교과 전문성을 기르고 싶어 하는 아내에게도 오늘의 수다가 즐거웠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