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간담(肝膽)이 녹아드는 응급실행, 아탈구
24. 09. 09. (월)
외삼촌은 아들만 셋이다. 3살 터울씩 이어진 삼 형제는 전직 승무원이었던 외숙모를 철의 여인으로 담금질하였고 외삼촌의 머리에서 검은빛을 거두어 갔다. 외삼촌은 우리 첫 아이의 잉태와 출산 과정에 많은 관심을 보내주시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새벽에 응급실에도 자주 가게 될 텐데 처음엔 날벼락같지만 점차 익숙해진다’고 격려인지 겁박인지 모를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런 경우 보통은 아이 열이 오르는 경우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나도 그랬다.
지난 6월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슈퍼에 갔다. 뽀로로에 마음을 뺏긴 1살 소녀는 캐릭터 간식을 가지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을 굳게 드러내 보이고 싶었는지 눈물과 함께 바닥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아빠 또한 초반의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마음에 강대강으로 대응했다. 눕는 아이의 한쪽 손을 잡고 강제로 일으켜 세웠는데 울음이 좀처럼 그치질 않는다. 슈퍼를 나와서도 유나의 울음은 계속된다. 고집을 꺾어야지 하는 마음에 “엄마 아빠는 갈 거야”를 외치며 아이를 두고 가는 척하며 기둥 뒤에 숨었다. 유나가 이상하다. 가만히 보니 손가락을 부여잡고 울고 있다. 황급히 돌아가서 손을 부여잡고 살피니 손가락을 만질 때마다 자지러진다. 아뿔싸. 아까 손을 잡으며 손가락이 삐었거나 부러졌구나. 눈앞이 캄캄해지며 등골에 땀이 쭈뼛 솟는다. 일요일 오후 3시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디지?
성북 우리아이들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아이는 눈물범벅이다. 뽀로로도 무용하다. 소아 종합병원에 도착했건만 X-Ray 촬영이 마감되었다고 한다. 골절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사진을 찍어 보지 않으면 진료가 무슨 소용일까. 다시 택시를 불러 고려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간다. 고대 병원에서는 곧장 접수를 할 수 없었다. 의료 파업으로 인해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를 선별하여 접수를 진행하고 있었다. 유나의 접수 여부를 결정받기까지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입구에 방치되어 있었다. 실시간으로 실려가는 중증 환자들에 비해 아이의 손가락 골절이 우선된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너무 울어서 더 이상 울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참담하였다. 인고의 시간 끝에 마주한 젊은 의사는 접수를 거부하였다. 까닭은 소아과 전문의가 응급실에 없다는 것. 이 한 마디를 듣기까지 아이는 기진하였다. 어디에 화를 내야 할까. 축 처진 아이의 몸을 안고 고대 정문 앞을 걸어 내려왔다. 손가락 부목이라도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살폈지만 대학 병원 앞 수많은 약국 중 문을 연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걸어가자. 집까지 거리는 3km 남짓. 가다 보면 문 연 약국 하나는 있겠지. 6월 오후 햇살은 송곳처럼 목덜미를 찔렀고 무력한 마음에 숨이 막힐 무렵 둘째를 돌보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신내역 근처에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병원이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기까지 아내 또한 마음 졸이며 인터넷을 헤매었으리라. 급히 택시를 잡고 중랑구로 향했다. 연방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보고 기사님 마음도 다급해진다. 챙겨 온 식빵 조각을 입에 넣어주며 아이를 달래다 보니 울음이 점차 멎는다. 애초보다 통증이 한결 덜해진 모습이다. 차에서 내려 급히 병원까지 뛰어 올라갔다. 세 시간이 지나 세 번째 병원에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증상을 듣고 조심스레 아이의 팔을 이리저리 만져본 의사의 첫마디. “이미 나았습니다”
골절이라면 손을 대기만 해도 자지러지게 아파한다. 소아들은 관절 사이가 벌어져 있어 그 사이에 힘줄 등이 끼는 아탈구 증상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 검진 동작을 다 수행하는 것을 보니 현재 골절도 탈구도 아니다. 아이들은 통증 표현이 서툴러서 팔이 아프더라도 손을 잡고 아파할 수 있다. 짐작건대 탈구가 일어났으나 병원에 오는 과정에서 원래대로 돌아간 듯하다. 진단을 듣고 나니 기가 막혔다. 세 번째 병원을 오는 택시 안에서 식빵을 먹으며 진정되었던 게 팔이 맞춰져서였나? 내 품에 안겨 이리저리 팔을 움직이긴 했는데. 허탈함과 안도감을 안고 맥이 빠져 집으로 돌아온 게 불과 석 달 전이었다.
그날의 허탈함을 위로하기 위함인지, 오늘 일이 터졌다. 재우기 전 양치를 마치고 누운 첫째를 아내가 일으켜 세우자 비명이 터진다. 그날과 같은 부위 같은 모습이다. 팔을 살짝 움직여 보니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래도 한 번 겪어 봤다고 덜 허둥거린다. 곧바로 택시를 부르고 짐을 꾸렸다. 출발 시간은 저녁 8시 반. 9시까지 운영하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현재 가고 있음을 알렸다. 두 번째 겪는 일이지만 땀과 눈물에 나와 유나의 온몸이 젖어든다. 오늘도 가는 도중 팔이 맞춰지면 좋을 텐데. 데자뷔를 보는 것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검진 동작을 수행하자마자 끝났단다. 3초 만에 끝났다고? “오늘도 지난번처럼 이미 맞춰져 있었나요?” “아니요, 오늘은 제가 맞췄습니다. 맞춰지는 느낌이 났거든요.” 참 간단한 도수 처치이지만 언제 울었냐는 듯 웃으며 젤리를 먹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차비와 병원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다. 이 시간까지 진료를 보아주셔서 감사한 마음뿐. 연방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외삼촌 말씀대로 응급 상황이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문득 어릴 적 새벽녘 명지병원 응급실로 나를 데려가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연신 물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고열로 우는 나를 달래셨지. 지난 학기에 김종길의 <성탄제>를 가르치고 배웠다. 약을 찾고자 눈 덮인 산을 헤매는 아버지의 마음이 성년이 된 화자의 혈액에 녹아 흐르듯, 부모님의 물수건에 담긴 마음이 오늘의 나를 키웠듯, 간담이 녹아드는 우리 부부의 마음도 아이들을 지켜주며 이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