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가족끼리 노는 게 제일 재미있는 추석
24. 09. 25. (수)
이번 추석을 맞이하며 별스레 싱숭생숭하였다. 지난 4월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친, 외가 모두 조부모님이 계시지 않게 되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명절마다 부모님의 고향을 찾았다. 성인이 되고 먼 거리를 왕래하는 일련의 행사가 귀찮게 느껴진 적도 없잖았지만 막상 갈 곳이 사라지니 상실감이 스민다. 나도 이런데 부모님은 어떠하실까.
부모님 댁에서 맞이하는 첫 명절을 앞두고 몇 달 전부터 아이디어를 내었다. 아이가 어리니 비행기삯이 무료란다. 이참에 우리도 가족 여행을 가자. 차례는 간소하게 여행지에서 치르자. 그러나 우리 애들은 여행을 떠나기에 너무 어렸고 아버지는 집에서 치르는 첫 명절에 마음을 다하고 싶으셨다. 명절을 앞두고 음식 장만을 고민할 때 아내가 제안을 한다. “여보, 우리가 전을 하자” 명절의 부담 중 음식 장만이 큰데, 아이들이 어려서 우리가 부모님과 음식 준비를 함께하기 어렵다. 그러니 각자 역할을 분담해서 준비하자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 계획은 믹서기 구매로 이어졌다. 동그랑땡을 하려면 재료를 갈아야 하니까.
만족스러운 믹서기의 성능과는 별개로 재료 손질과 부치는 과정은 지난하였다. 처가에 가져갈 동그랑땡만으로 온 집안의 프라이팬이 총출동하였음에도 4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처가는 늘 명절마다 전을 부쳤단다. 장모님께서 올해 처음으로 전을 안 하셨기에 우리 동그랑땡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고등어를 집어 먹는데 제주 사는 손윗 동서가 가져왔다고 장모님이 슬쩍 운을 띄우신다. “어쩐지 맛있더라~” 너스레에 웃음이 번진다. 지난 4월에 결혼한 처형네와 오랜만에 수다를 나눴다. 건넌방에서 애들과 함께 누웠는데 두런두런하다. 아이들을 재우고 장모님, 처형과 안방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던 아내를 기다리다 잠들었다.
장모님께서 챙겨주신 잔치팬을 쓰니 프라이팬 3개 분량이 한 번에 부쳐진다. 붓이 좋으니 범부도 명필이 된다. 기세가 올라 산적과 동태전도 부친다. “우리 집은 전을 안 해” 결혼 전 아내를 꼬시며 건넨 자랑이 머쓱하다. 시부모님의 걱정을 가볍게 물리친, 전을 하는 집에서 시집온 며느리는 어느새 집안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 “너무 고생이다. 다음부턴 하지 마라” 아버지의 염려와 별개로 젓가락질은 정직했다. 맛있긴 하네.
추석 연휴를 보내고 맞는 주말, 조부모님을 모신 호국원 근처로 온 가족이 1박 나들이를 간다. 애초에 그저 나들이를 가자 하였는데 마침 추석이니 성묘를 겸하여 이천으로 가게 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무섭게 내린다. 앞이 보이질 않는다. 바짝 긴장을 하고 마장 휴게소에서 잠시 비를 피한다. 잠시 뒤 부모님과 동생도 도착했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일정을 바꾸어 카페 이진상회로 갔다. 작년에 취업한 동생이 계산대에서 슬쩍 카드를 꺼낸다. “휴게소에서 밥을 살걸, 여기가 더 비싸네” 투덜거리는 농담에 다들 웃는다. 한참 떠들다 전시관을 구경하던 중, 아내의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두 녀석이 모두 가득 변을 보았다. 둘째는 기저귀가 샐 만큼.
급한 대로 바지를 한 겹 더 입히고 예약한 숙소에 전화를 했다. 체크인 전이지만 흔쾌히 오란다. 숙소는 쾌적했고 일찍 시작한 저녁 식사는 동네 산책을 가운데에 두고 이어졌다. 새벽녘 바뀐 잠자리에 첫째가 한 시간 넘게 운다. 기진하여 자는 아내와 유나를 두고 둘째를 챙겨 부모님과 샌드위치를 사러 아침 산책을 다녀왔다. 도예 마을도 우리 마음도 한가롭고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아버지 전화기가 울린다. 전날의 큰 비로 남부지방의 농작물 피해가 상당하단다. 정년퇴직 후 손해평가사가 되신 계신 아버지 일정이 바빠진다. 성묘를 마치고 다시 뿔뿔이 일상으로 돌아간다. 가는 길엔 얌전하더니 오는 길 내내 두 녀석이 운다. 차량 이동이 아직은 버거운가 보다.
몇 년 전, 명절을 쇠고 만난 친구가 자기 사촌 형의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한 적이 있다. “가족끼리 노는 게 제일 재미있지, 자주 놀러 와.” 그때만 해도 우리는 친구들끼리 노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 이번 추석이 지나고 그 친구 직장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녀석은 우리 가족의 이번 명절 이야기에 이어 주말에 잡힌 자신의 소개팅 이야기를 꺼낸다. 육아의 고단함을 위로하다가 가족 공동체의 행복에 진솔히 공감하더니, 기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자신의 주말 약속을 곱씹는 친구의 모습에 빙긋 웃는다. 대가 없는 즐거움이 없는 것처럼 수고롭지 않은 행복이 있을까. 지난 일주일 간 들인 가족들의 수고만큼 우리네 행복한 추억 또한 나이테처럼 더해졌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