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없는 성장은 없다
*Nov 09.2023에 작성한 글을 수정하여 발행하는 글이다. 추가로 작성한 내용은 다른 색으로 작성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겪었을 안 좋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여러 번 겪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나는 5년 동안 큰 시련이 있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위로는 하겠지만 공감은 못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한 번도 겪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을 거니까.
하지만 브런치에는 나보다 더 큰 시련을 겪은 사람이 많다. 그게 브런치의 갬성인가. 내 시련이 작게만 느껴지는 건 겸손이 아니라 상대적 우월감에서 오는 이기심이다. 애초에 타인의 힘듦과 나의 힘듦을 비교하는 것부터 교만이지 않을까.
왕따, 창업 실패, 투자 실패, 정신질환, 연애실패, 건강악화, 사기 등등 자잘한 것까지 나열하려면 더 할 수 있겠지만 브런치를 통해 조금씩 실패에서 긍정적인 마인드로 갈 수 있었던 여정을 공유하려 한다. 나의 여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희망과 힘을 얻었으면 좋겠고 더 이상 우울감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때 들뜬 마음을 안고 첫 입학을 했을 때가 기억날 리 만무하다. 그렇지만 그때 감정만큼은 잊을 수 없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장소에 대한 기대감,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는 설렘.
그 모든 감정을 절망으로 바꾸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다.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고 쌍둥이 여자애에게 찍혀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가 한 번 만들어지면 너도나도 동참하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1학년때 같은 반에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밥은 혼자 먹었고, 집은 제일 마지막에 갔으며, 나머지 공부로 인해 '모자란 아이'의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초등학교의 생태계는 정글의 숲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 그중에 나는 도태되기 직전의 최하위종이었다. 한 학년 올라갈 때마다 각 반에서 도태된 사람들이 보였다. 그 아이들보다는 내가 낫겠지 싶었다. 그 애들보다는 조금 더 눈치가 있었기 때문.
안타깝게도 나는 긍정성을 타고나지 못했다. 그저 회피만 할 뿐이었다. 싸우는 것도 싫었고 뭔가 노력하는 것도 귀찮았다. 보상이 없으면 지루했다. 매일 똑같은 일상, 똑같은 업무, 정해진 규칙 그런 건 좀 나랑 안 맞았다. 좋아하던 일도 어느 순간 질려버린다.
그렇게 인생을 살다 보니 이뤄놓은 것이 없었다. 남들은 잘 다니는 직장도 오래 다니지 못했다. 불합리해 보이는 시스템이 별로였고 수직적이고 관료적이고 보수적인 체계가 답답했다. 나는 사회부적응자인가 싶었다. 목표는 있으나 계획을 세우지 못했으며 계획을 세워도 실천하지 못했다. 겨우 실천은 했는데 지속되진 못했다.
다른 사람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집중이 안된다는 말이 더 알맞다. 대화도중에도 다른 생각을 한다. 관심 없는 주제가 나오면 흘려듣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부분은 많이 보완이 되었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나는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회피했다. 선택해야 할 문제 앞에서 나는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고 선택을 외부로 미루었다. 내 인생을 외부에 떠넘긴 셈이다. 그러면서 나는 환경 탓만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