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을 덜어낸 자리에 자라나는 문해력

Chapter 8 : 같은 책만 백 번째? 반복 책 읽기의 심리학

by 테라

낡은 책 한권의 위대함, 반복 읽기

"선생님, 우리 애는 읽던 책만 계속 읽어요. 집에 안 읽은 새 책이 산더미인데 꼭 그 책만 읽으니 책이 다 닳아 없어질 정도라니까요" 많은 부모님이 '골고루, 많이' 읽혀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계십니다. 전집을 샀으니 1번부터 50번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도 많죠. 하지만 문해력의 뿌리는 '넓게' 읽을 때가 아니라 '깊게' 읽을 때 튼튼해집니다.

아이가 같은 책을 백 번째 들고 온다면, 그것은 그 책 안에 아이가 아직 캐내지 못한 보물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어른들은 줄거리를 파악하면 "다 읽었다"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다릅니다. 첫 번째 읽을 때는 주인공을 보고, 두 번째는 주인공이 입은 옷을 보고, 열 번째는 배경에 있는 작은 강아지를 봅니다. 그리고 백 번째 읽을 때 비로소 작가가 숨겨놓은 문장의 맛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합니다. 반복 독서야말로 어휘와 문장력을 뇌에 새기는 가장 강력한 각인 과정입니다.


독서 편식? 아니요, 어린이 전문가가 탄생하는 중입니다.

"선생님, 애가 공룡 책만 읽어요. 창작 동화도 읽고 위인전도 읽어야 하는데, 오로지 공룡, 공룡, 공룡이에요." 많은 부모님이 식사처럼 독서도 탄단지(탄수화물, 단백질, 지방)를 맞춰 골고루 섭취해야 건강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공룡 책만 보는 아이에게 억지로 전래동화를 들이밀곤 하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것은 '편식'이 아니라 '몰입'입니다. 특정 분야에 깊게 빠져본 경험은 문해력의 가장 중요한 근육인 '배경지식(스키마)'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킵니다. 공룡 이름을 줄줄 꿰는 아이를 보세요. '백악기', '초식', '육식' 같은 전문 용어를 스펀지처럼 흡수합니다. 좋아하는 분야에서 느낀 '앎의 희열'은 다른 분야로 나아가는 강력한 엔진이 됩니다. 한 우물을 깊게 파 본 아이만이 나중에 다른 우물도 팔 힘을 얻습니다.


** '독서 편식'을 '지식 확장'으로 바꾸는 셰프의 '페어링(Pairing) 레시피'

'덕후' 기질은 영재성의 씨앗입니다. 하나에 미친 듯이 파고드는 아이를 요즘 말로 '덕후'라고 하죠. 유아기의 덕후 기질은 축복입니다. 이때 "그만 좀 봐, 지겹지도 않니?"라고 찬물을 끼얹으면 아이의 지적 호기심은 그 즉시 시들어버립니다. 아이가 꽂힌 그 세상이 바로 아이의 현재 우주입니다. 그 우주를 존중해 줄 때 아이는 자존감을 얻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확장 독서'를 유도하세요.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다른 책을 주면 튕겨 나갑니다. 대신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세요. 공룡(관심사) -> 화석(과학) -> 화산과 지진(지구과학) -> 원시인(역사). "와, 이 공룡은 화산이 폭발해서 사라졌대. 그럼 화산은 왜 폭발할까?"라는 질문 하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화산 책을 꺼내 듭니다.

학습 만화만 본다고요? '애피타이저'입니다. 줄글 책으로 넘어가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학습만화는 훌륭한 입맛 돋우기용 애피타이저입니다. 중요한 건 만화책에서 멈추지 않게 돕는 것입니다. 만화에서 본 내용을 다룬 얇은 도감을 슬쩍 옆에 두세요. "어? 만화에서는 이렇게 그렸는데 진짜 사진은 이렇네?" 하며 비교하는 재미를 맛보게 하면 자연스럽게 넘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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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잘 이해하는 선생님이자,선생님들의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growing_room 상담 심리사이자, 좋은 글에 다정하게 다가가는 댓글러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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