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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사람 Aug 18. 2019

경쟁국은 없다

무역과 국제 관계

미국이 여러 국가와 무역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일본도 한국에 대한 수출 절차를 강화하면서 우리나라와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정치적 문제를 경제적 형태로 보복하는 일본의 행태는 분명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로 인해 국가 간 무역이 위축되고 다른 국가들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오해는 경쟁국이라는 개념입니다. 언론 등에서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다른 나라를 경쟁(회)사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 국가 관계는 본질적으로 경쟁관계가 아니라 협력관계 입니다. 기업 간 경쟁사는 분명히 있지만, 경쟁국이라는 개념은 사실 불분명합니다. 두 개념에 대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농심과 오뚜기는 라면시장에서 경쟁사입니다. 농심이 쇠락한다면 당연히 오뚜기의 시장점유율이 올라가겠지요. 내수 시장에 국한해서 생각한다면 오뚜기 라면이 잘 팔린다는 것은 농심 라면이 덜 팔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삼성과 애플은 어떨까요?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과 애플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예전에 삼성과 애플이 특허소송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꽤 많은 전문가들이 일정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유는 양사가 휴대폰 시장에서는 경쟁하고 있지만, 반도체 시장에서는 협력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이 망한다면 애플 휴대폰 판매가 단기적으로는 늘어나겠지만, 삼성이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하면 애플도 아이폰을 만들 수 없습니다. 애플이 삼성이 망하기를 원치 않는 이유입니다. 특정 산업에서 경쟁사라는 개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삼성과 애플처럼 복수의 산업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면, 한편이 이기면 다른 한편이 지는 단순한 관계로 규정하기 어려워집니다. 삼성과 애플의 관계를 단순한 경쟁구도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지요.


이번엔 경쟁사 관계에 국가를 포함시켜 보겠습니다. 지엠의 군산공장 철수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현대차와 한국지엠은 분명 경쟁관계입니다. 하지만 한국지엠이 망해서 철수하기를 바라는 우리나라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관세맨(Tariff Man)이라 자칭하는 트럼프 대통령도 외국회사들을 쫓아내려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기를 고대합니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지엠, 포드, 크라이슬러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차가 미국에 대규모 공장 증설 계획을 발표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차 칭찬으로 트윗을 도배할게 분명합니다.


좀 더 민감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경쟁국인가요? 축구나 야구를 생각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경쟁국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는 어떤가요? 일본 기업과 숙명의 라이벌인 한국 기업이 떠오르시나요? 참고로 현대차는 토요타, 포드, 폭스바겐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과 독일도 우리의 경쟁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경제라는 개념이 개입되면 ‘경쟁국’이라는 것을 정의하기가 애매해집니다. 국가 간의 경제활동은 대부분 무역이고, 무역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경쟁국이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해야 한다면, 경제 영역은 제외하는 것이 무리가 덜 합니다.


국가 간 경제활동의 필수 요소인 무역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가능성은 없지만 가령 우리나라가 국가 간 경제활동을 줄이겠다고 선언해도 최소한 석유는 수입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 상품인데 국내에서 구할 수 없다면 무역 말고는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적고 내수시장 규모가 충분하지 않다면 무역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출을 통해 경제 규모를 넓히지 못했다면 우리나라는 이만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원재료를 수입해 중간재와 최종제품을 수출하는 산업구조는 수십 년째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근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자원이 모두 생산된다면 수입은 하지 않아도 될까요?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은 산유국입니다. 그런데도 중동으로부터 많은 석유를 수입하고 있고 사우디와의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요. 미국이 중동 원유를 수입하는 이유는 자원 전략 측면도 있겠지만 자국에서 원유를 전부 생산하는 것보다 저렴하고 재고관리에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돼지고기를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지만, 구제역으로 생산량이 부족해지거나 삼겹살처럼 특정 부위가 대량으로 필요하다면 수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돼지고기 수요가 일시적으로 급증하거나 수급이 요동치는 것을 감당하려면, 일정 부분은 국내에서 생산하고 과부족은 무역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락하면서 경제에 어려움이 생길 것입니다.


무역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모두가 더 풍족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각 나라마다 조선업, 농업, 천연자원 등을 모두 스스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한국은 배를 만들고 미국은 옥수수를 재배하고 사우디는 석유를 수출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입니다. 각자의 장점을 살려 분업을 하면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우리나라가 모든 상품에 경쟁우위를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무역을 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자세한 내용은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무역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경쟁국이라는 개념을 부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독점이 아닌 이상 한 산업에서 경쟁사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국가 간 무역에서 경쟁국이란 개념은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산업에서 두 국가가 경쟁관계일 수도 없고 다국적 기업도 많아졌기 때문에 경쟁국이라는 개념은 적용하기가 매우 모호합니다. 무역은 경쟁관계처럼 제로섬게임이 아닙니다. 무역과 어울리는 말은 공생, 공동번영, 시너지, 윈윈입니다.


무역은 경제를 효율화하고 더 풍요롭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지, 결코 다른 나라의 일자리를 빼앗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흥국들이 선진국의 좋은 일자리를 빼앗으려고 자국에 제조공장을 지었을까요? 신흥국의 수많은 제조공장 중 상당수는 선진국 기업의 자본으로 건설된 것입니다. 선진국들이 기초를 닦은 자유무역 질서가 오히려 선진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신흥국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신흥국들에게 시장을 개방하라고 호령하던 미국이 이제는 관세를 무기로 다른 나라들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중국이 자유무역 정신을 위배하고 있다며 미국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일에 장점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역이 발전하면서 발생하는 단점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무역을 경쟁관계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자극적인 정보들이 많아지면서 무역과 국가 관계를 잘못 이해하기 쉬운 것도 현실입니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본이 망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이 망한다고 한국이 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농수산업, 제조업, 관광, 유통, 금융 등 수없이 많은 관계로 촘촘히 얽혀 있습니다. 일본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아쉽게도 아베 총리는 한국 경제가 어려워지면 일본도 타격이 클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무역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망각한 채 무역분쟁에만 매몰되면 모두가 위험해집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1929년 대공황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불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공황과 같은 글로벌 장기 침체를 피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연구가 많았지요. 이때 나온 많은 연구들에서 대공황이 길어진 주요 이유로 보호무역 주의를 꼽았습니다. 자국의 이익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부과하고 수입을 제한하는 정책이 세계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모두를 나락으로 이끈 것입니다. 유럽과 중국의 경기가 악화되는 가운데, 미국에서도 경기확장기 종료 시점에 대한 논쟁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무역분쟁이 격화되는 것은 분명히 경계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무역 의존 국가입니다. 글로벌 무역과 우리나라 경제는 같은 배를 탄 운명이라는 점,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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