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책꽂이에 십수 년간 꽂혀있던 오래된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학구적인 자기학대는 은유적인 편견을 반영한다. 진실은 얻기 어려운 보물이며, 쉽게 읽고 배울 수 있는 것은 경박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편견이다. 진리는 올라야 할 산과 같아서, 위험하고 모호하며 품이 많이 든다. 도서관의 환한 불빛 아래에 학문의 좌우명은 이렇게 쓰여 있다. 읽기 힘든 책일수록 더 진리에 가깝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다. 마음이 열려 있고, 명쾌하고, 예측 가능하고 시간을 잘 지키는 애인보다는 힘들게 하는 애인이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심성이 종교적인-낭만적인 사람에게, 이런 사람은 비난을 받거나 기피해야 할 대상이건만, 그들은 명석한 열두 살짜리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훌륭한 문체를 비웃는 학자들처럼 행동한다.
-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중에서
이 글은 '나쁜 남자'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설명이라 할 수 있다. '나쁜 남자'에 대한 단상을 저렇게 우아하게 풀어놓다니. 이런 수준 높은 글보다는 수준이 많이 떨어지겠지만, 초등(국민) 학교 때는 그렇게 하기 싫던 글짓기가 갑자기 하고 싶어졌다.
1)
그녀는 불현듯 허전함을 느꼈다. 무엇이라도 채워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때마침 희미하게 불빛이 보인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영문 알파벳이 선명해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원통형과 사각형 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완벽한 크기와 그립감의 바로 그 입체 도형은 어디에 있는가? 익은 쌀과 소금 그리고 약간의 양념이 절실했다.
>>주제 : 편의점 삼각김밥
2)
정신은 이미 깨어 있지만, 눈은 게슴츠레하다. 그는 세 번째 울리는 핸드폰 알람을 끈다. 지난밤 과음을 하지도 않았고, 야근을 한 것도 아니다. 이른 시간에 이렇게 멀쩡한 정신인 것이 도대체 얼마 만인가. 멀쩡한 정신에 비해 그의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곧 다가올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주제 : 회사가기 시러
허기가 닥치면 사리가 불분명해지고, 일요일 밤이 되면 용기를 잃고 마는 아내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주의!) 이 글은 취향이 명료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이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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