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5일을 노예처럼 일하고, 노예처럼 일하기 위해 2일을 쉰다.
- 부의 추월차선, 엠제이드마코
퇴사가 화두다. 직장인은 시키는 대로 일하는 노예이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주인을 위해 몸을 바치는 착한(누구를 위해 일하는지도 모르는) 노예일 뿐이다. 부자가 된 인플루언서들은 월급에 중독되지 말라고 하고, 큰 부를 이뤄 일찍 은퇴한 FIRE족이 성공한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투자에 성공하거나 사업가가 되어 직장을 벗어나야만 노예 생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20년 넘게 공부하고 힘든 관문을 통과해 들어간 직장이건만, 사람들은 곧 허무함을 느끼고 퇴사를 꿈꾼다. 과연 직장인들은 어쩔 수 없이 노예생활을 하는 불쌍한 사람들인 것일까?
직장인이 노예라면 노예의 주인도 있을 것이다. 노예와 노예 주인의 관계는 매우 복잡해서 부사장은 사장의 노예이자 상무나 전무, 부장들을 부리고 상무나 전무, 부장들은 그 윗선의 노예이자 평직원들을 부리게 된다. 사장은 회장이나 정부 또는 감독기관의 눈치를 본다. 주인들의 특징은 기득권과 자리보전을 위해 노예들을 부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위를 잘 보면, 노예들도 주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이 시키는 일을 곧이곧대로 하지 않으며, 주인들을 이간질 시키기도 하고, 주인이 좀 만만하다 싶으면 태업을 일삼고 심지어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노예들도 만만하지가 않아서 노예 조합을 만들어 자신들의 권위를 주장하고, 자신들의 자리보전과 안위에도 매우 민감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일을 하나라도 더 할까 봐, 티 나는 일은 놓칠까 봐 많은 노예들이 전전긍긍한다. 조직의 위계는 있을지언정 노예 주인이나 노예가 전혀 다른 사람들로 보이지는 않는다. 누구나 힘든 일은 맡기 싫고 과실은 탐하고 싶다. 그것은 인지상정이고 누구도 자유롭기 힘들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 도둑과 사기꾼의 씨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권력이 생기면 우쭐하고 그 자리에 집착하게 된다. 주인들이 그렇게 된 것은 사람이란 것이 원래 높은 자리에 오르면 그렇게 되기가 가장 쉽기 때문이다. 연임에 연연하지 않고 후배를 생각하는 임원이 쉬울 것 같은가? 지금 당신이 화나는 것도 내가 안 해도 될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당신도 남을 위해 살 생각이 없는데, CEO나 임원들은 도대체 왜 그래야 하나? 이렇게 보면 노예 주인이나 노예나 사실 별거 없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가 시간이 흐르면 주인 자리로 올라서게 될 것이다. 취직이 노예가 되는 길이라면 조직에 몸담은 사람은 모두 노예다.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도 원래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벌어 조기 은퇴하면 FIRE족이라고 보통 부르는데 원래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미국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10~15년만 일하되 소득의 70~80%를 저축하고, 은퇴 뒤의 오랜 시간을 버티기 위해 극도로 절약하며 절제하고 사는 것이 FIRE족의 본래 의미다. (당연히 은퇴 후에는 높은 생활비 때문에 도시에서 살지 못한다.) 이들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미국판 ‘자연인’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속세를 등지고 싶거나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자연인이 되지만, 미국에서는 좀 더 안락한 자연인을 목표로 속세에서 10여 년을 일하고 절약하는 것이다. 이런 삶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생 절약하고 절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명품을 좋아하면서 FIRE족이 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기 절제에 대한 다짐과 삶에 대한 철학이 빠진 채 FIRE족을 추구하는 것은 돈은 없지만 사치는 하고 싶고 돈 많은 것은 부럽지만 일하기는 싫다는 방만한 마음가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조직에 충성하면 영혼 없는 노예가 되고, 국가에 충성하면 국뽕이 된다. 개인의 가치판단이고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니 여기서 내가 뭐라 할 주제는 못 된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과 애정을 갖지 못하고 한발 떨어져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노예가 아니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노예처럼 억지로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법륜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노루나 다람쥐는 일생 동안 밥벌이만 하다가 죽는다. 그렇다고 노루나 다람쥐가 자살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노루나 다람쥐의 삶이 의미가 없는가? 원래 동물이란 자기 밥벌이를 하다가 죽는 것이다. 일할 능력이 충분한데 자기 밥벌이도 못하면 사실상 짐승보다 못하다. 단순히 밥벌이를 위해 꿈이나 이상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밥벌이의 숭고함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대의를 이루겠다는 것도 망상에 가깝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민주주의가 태동하고 수준 높은 문화와 철학, 예술이 꽃을 피웠다. 시민들은 광장에서 시를 읽고, 토론을 하고 지적인 활동을 즐기며 살았다. 하지만 시민들이 이렇게 고상한 인생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노예 제도 덕분이다. ‘두 발로 걷는 짐승’들이 굳은 일을 다하고 모진 탄압을 견디며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노예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세상이 평등해졌으니 고상한 일도, 궂은일도 우리 모두가 나눠서 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각자 조금씩 노예의 짐을 나누는 것이 어떨까?
……매일 제 뒷자리에서 열일하는 최모군에게 힘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