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가 두려운 12살의 ‘지원’에게

시차를 두고 전하는 위로

by 대화의 발견

새 학기의 서막을 알리는 3월의 공기는 유난히 나에게는 늘 서늘했다. 남들에게는 설렘의 시작이었을

그 계절이, 12살의 나에게는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공포였다. 책가방 끈을 손가락이 하얘지도록

꼭 쥐고, 앞서가는 선생님의 뒤꿈치만 눈에 담으며 교실 복도를 걷던 그날의 모습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나에게 3월은 단순히 학년이 올라가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다시 '전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낯선 이들의 시선 앞에 나를 던져야 하는 가혹한 의식이었다. 교실 뒷문을 여는 순간, 이름표도 붙지

않은 책상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 없는 의자에 앉기까지의 그 짧은 거리가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먼 길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근거 없는 공포, 혹은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모순적인 불안이 어린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기에 제 격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친구와의 대화란 즐거운 소통이 아니라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검사받기 직전의 숙제'

같은 것이었다. 아니, 그 자체가 두려워 세상의 모든 문을 닫고 도망치고 싶었다. 선생님의 뒤를

쫓아 들어가는 순간, 교실 안에 빼곡히 앉아 있는 수많은 ‘눈’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만약 그중에서

외향적인 성향을 숨기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질문이라도 던지는 날이면, 내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 날은 온종일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으로 하교 시간만을 기다려야

했다.


‘제발... 제발 아무도 물어보지 마라. 선생님이 내 이름이랑 전학 왔다는
사실만 대신 말해주고 끝내주셨으면 좋겠다...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다행히 전학 간 학교의 선생님들은 내게 특별한 장기 자랑이나 긴 자기소개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다소 극성맞은 친구들의 호기심 섞인 질문만 교묘히 피하면 그날의 고비는 넘길 수 있었다.


아버지의 생업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참 자주도 짐을 쌌다. 6개월 만에 다시 짐을 꾸려 다른 학교로

떠난 적도 있었으니, 어린 시절의 나는 끊임없이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살 터울의 남동생은 나 와는 참 달랐다. 동생은 새로 간 학교에서도 당일부터 친구를 셋이나 사귀었다며

집에 돌아와 무용담을 늘어놓곤 했다. 그 밝고 경쾌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더 깊은 침묵 속으로 침잠했다.

누구와도 말 한마디 섞지 못한 채 돌아온 나의 하루는 동생의 자랑 앞에서 더욱 초라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적응'이라는 단어와 싸우며 전학의 기억들로 점철되었다.


특히 5학년 무렵의 3월은 유독 잔인했다. 이제 막 정이 들기 시작한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12살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익숙한 세계를 뒤로하고, 맨몸으로

얼음판 위에 서야 하는 기분. 그 상황을 헤쳐 나가 친구 관계를 형성할 용기는 내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억지로 만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3월 1일 밤이면 천장을 바라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내일부터 당장 마주해야 할 새로운 교실,

새로운 아이들.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생각만 해도 눈물부터 고였다. 누가 다정하게 말이라도

걸어오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상태로 나는 3월을 맞이했다. 그때의 나에게

3월은 성장의 계절이 아니라 고립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생존의 계절이었다.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과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는 갈망이 뒤섞인 채로 말이다.


이제 긴 시간이 흘러, 그때의 나만큼 자란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이 된 내가 12살의 '지원'이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시차를 두고 도착한 이 위로가 그 때의 떨리는 지원이의 어깨에 가닿기를 바라며...


"안녕, 지원아. 있잖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네가 완벽하게 준비해서
무대에 올려야 하는 연극이 아니란다.


우리는 흔히 대화를 화려한 '말솜씨'라 착각하지만, 사실 대화의 진짜 시작은 '나의 곁을 조용히 내어주는

일'이다. 대단한 미사여구가 없어도 괜찮다. "안녕? 여기 앉아도 돼?" 이 짧은 여덟 글자의 문장은

두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단숨에 좁히는 마법의 주문이다. 상대방의 대답이 기분 좋은 "응!"이든, 혹은

"미안, 여기 친구 자리야"라는 거절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말을 내뱉기로 마음먹고 입술을 뗀

순간, 이미 스스로 만든 고립된 섬에서 걸어 나와 타인이라는 거대한 육지를 향해 튼튼한 다리를

놓은 셈이니까.


12살의 내가 느꼈던 그 지독한 떨림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가장 정직하고도 순수한 반응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새로운 시작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를.


Q. 대화의 발견

당신의 어린 시절로 가서 지금의 당신이 이야기 해 줄 수 있다면, 언제 어느 때로 돌아가 어떤 말을 해 주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