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아빠가 어떤 다큐를 시청하고 계시길래 꼽사리를 껴서 보게 되었다. 뮤지컬 배우 최정원의 수중분만하는 장면이 나왔고 출산을 한다면 자연적으로 아기가 나올 때까지 끝까지 기다려주고 남편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출산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다. 결혼을 한지 몇 개월 지나 친구가 추천해 준 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당연하게 병원에서 행해지는 촉진제, 무통주사, 회음부 절개 등을 하지 않고 온전히 아기가 나오기를 기다려서 출산하는 '자연주의 출산'을 알게 되었다. 산모 출산의 회전율을 생각하지 않고 충분히 기다려주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아이를 위한다면 부모로서 마땅히 해 줄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결혼을 한 지 1년 여가 지나 임신을 했다. 자연스럽게 우리 부부는 '자연주의 출산'으로 출산 방법으로 정하고서는 조산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에 조산사로 나왔던 분이 아직도 일을 하실까 반신반의하며 인터넷을 뒤졌다. 경기도 어느 지역에 계신 것을 확인하고선 찾아갔다. 시설이 노후되어 있고 대형병원과의 연계가 잘 안 된다는 것이 아쉬웠다. 첫째라 그게 제일 신경이 쓰였다.
의사가 상주하는 곳은 병원비가 좀 부담이 되었다. 어차피 의료개입을 최소화하는데 굳이 의사가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가 된다면 대형병원으로 바로 연계되어 가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최종적으로는 편안한 출산이 가능한 시설이 있고 대형병원과 연계가 되는 서울의 한 조산원을 알게 되었고 예약을 했다. 출산 전 교육이 있고 남편과 함께 받는 교육이 따로 있었다. 출산이 엄마 혼자만이 감당하는 것이 아닌, 함께 출산을 준비하고 출산과정도 모두 함께 한다는데 큰 매력을 느꼈다.
임신주기에 맞추어 교육받으러 서울을 향하는 길은 몸은 무겁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진통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제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진통간격에 따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무엇을 먹고 먹으면 안 되는지,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체중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아직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가는데 제법 재미를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아가는 재미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왔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아이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 같아 두려웠다. 임신 7개월 차가 되었고 '임신성 고혈압'을 진단받았다. 임신 중에 나타나는 증상이고 출산 이후에는 보통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했지만 식사 조절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한 달에 1kg 이상 찌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아이의 건강을 위해 기름진 음식은 먹지 않으려는 노력은 했지만, 진단을 받은 상황에서는 더욱더 음식에 신경을 쓰고 인스턴트나 기름진 음식은 금해야 했다. 직장에서는 상황을 말씀드리고 점심은 따로 먹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직장과 집의 거리가 5분 이내라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정했다. 메뉴를 통일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은 좋았지만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는 고민이 되었다. 반찬을 사 먹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때라 건강한 음식을 해 먹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급격한 체중증가를 막아야 했기에 매일 같이 음식의 종류와 양을 조절했다. 혈압기계로 혈압 수치를 재며 정상수치로 내려가길 기다렸다. 직장에서 일하느라 8시간 이상을 앉아 있노라면 다리가 퉁퉁 불어서 코끼리 다리를 매일같이 마주해야 했다.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눌린 자국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매일 하는 노력에 비해 정상수치로 다가가는 게 힘들었고 '유지'로 방향을 바꿨다. 이 상태에서는 출산방법을 바꿔야 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아이를 위해 기다리는 출산을 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하기 힘든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조산원에서 추천해 주신 책들이 10권 이상 되었다. 책을 몽땅 사서 모조리 읽어 내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달리 집에서 또는 조산원에서 아이의 시간에 맞추어 충분히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다. 놀랍고 신기했다.
병원에서 99%의 출산이 이루어지는 반면 나머지 1% 정도만 이루어지는 출산이다 보니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특히 부모님과 시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스러워하셨다. 괜찮으니까 걱정 말라고 단호하게 얘기했지만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임신 39주 4일째 되는 새벽 1시였다.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픔의 정도는 미세한 것 같아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자지 못했다. 짐볼과 하나가 되어 뒹굴거렸다. 진통 초기에는 남편을 회사에 보내라고 교육을 받았기에 남편을 회사로 보냈다. 아직은 참을만하니까 가서 일을 마무리하고 오라고 남편을 보냈다.
진통이 시작되었음을 조산원에 알리고 혼자서 진통을 겪었다. 뭘 먹긴 해야 하나 싶은데 차려먹을 정신은 없고 눈에 보이는 바나나 하나를 먹었다. 속이 쓰렸다. 먹은 것을 후회하며 진통 간격을 재는데, 언제까지 계속 재야 하는 것인지 짜증이 났다. 진통의 세기는 점점 커져갔지만 진통 주기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오후 3시경 남편에게 이제는 퇴근을 해서 집으로 와야 할 것 같다고 연락했다.
5시쯤 조산원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혈압을 쟀다. 수축기 혈압 140 이상부터 고혈압으로 보는데 145였다. 아주 높지는 않은 것 같다고 시도해 보자고 했다. 배웠던 호흡법도 남편과 해보고, 물속에 들어가면 좀 더 편안함을 느낄지 모르니 들어가 보기도 하고, 아래가 뻥 뚫린 의자에 앉아서 힘을 주기도 해 봤다.
결국은 침대에 누웠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진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남편은 자꾸 옆에서 숨을 쉬라며 배운 호흡법을 하는데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았다. 끝이 과연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가 밑에 불을 지른 듯한 뜨거운 느낌을 강하게 받은 지 10분 여만에 물컹한 생명체가 가슴에 올려졌다.
우리 부부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어떻게 낳을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키울 것인지. 나름의 공부를 했고 교육을 받았다. 이제는 배운 것들을 실천하면서 잘 키워보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다짐했다. 그렇게 우리의 고생길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