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석을 지키려는 자, 토마스 울프 Vs 보석을 만들려는 자, 맥스 퍼킨스
O LOST
우리 중 누구라도 영원한 방랑자이자 혼자이지 않은 자가 있는가?
작가 지망생인 토마스 울프(이하 톰)의 첫 저서인 “LOOK HOMEWARD, ANGEL”의 초고를 맥스 퍼킨스가 읽으며 차츰 그 속으로 빠져드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문장입니다. 앞으로 톰의 삶을 암시하듯 공허함이 잔잔하게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영화는 시작되게 됩니다. 기차 안에서 날카로운 듯하지만 부드러운 눈빛으로 톰의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장면이 영화가 끝난 지금도 제 머리 속에 남아 맴돌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리뷰어들과는 다르게 작가를 준비하는 이의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보았습니다. 큰 구도에서는 편집자와 작가의 삶을 다룬 영화다 보니 저에게는 조금 특별하게 와 닿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작가의 눈으로 보는 원고와 편집자의 눈으로 보는 원고는 완전히 다른 것이겠지요. 또한 추구하는 목표도 다를 것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원고 즉, 원석 그대로를 지키고 싶어 할 것이며, 편집자는 원석을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보석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를 지켜보고 느껴보니 책 한 권 나오는 과정이 전쟁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헤밍웨이
톰은 두 번째 책의 원고를 맥스에게 가져다 놓으며 “상냥하게 읽어줘요.”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해봅니다. 그 짧은 말 한마디가 저에게는 그 어떤 말보다 간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원고 단어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이 들어갔는지 알기에 톰의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속으로 ‘ 너는 나의 원고를 단순한 글로만 보겠지만, 그것은 피와 땀이 섞인 나 자신과도 같은 것이니 반드시 소중하게 다뤄주길 바란다.’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원고가 얼마나 소중하기에 급기야 편집을 시작하기 전에는 원고에 손을 올리며 이런 말을 남겼을까요? “ 그중 한 글자라도 떨어져 나갈 땐 제 가슴에서 피가 나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것을 지키려 할 것이고, 편집자는 그것을 가공하여 더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드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출판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전쟁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술성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작가는 나의 감성을 몰라주는 편집자가 야속할 것이고, 그 예술성을 알면서도 상품성을 위해 난도질을 해야만 하는 편집자는 가슴이 아플 것입니다. 이러한 갈등 상황을 맥스는 “전쟁 후 평화라고 했나? 나에게는 전쟁밖에 남은 게 없군”이라며 자신의 아픔을 나지막이 표현하였습니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라고 헤밍웨이가 말했듯이 원고는 다듬어지고 깎여야 제 맛이겠지요. 이것은 짧은 글을 써온 본인도 느낄 수 있는 명언입니다. 어제 쓴 블로그 글을 오늘 보는 것만으로 부끄러울 정도니 몇 달을 거쳐 나온 원고는 어떠할지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본인은 작가 입장에 서서 조금 더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상품성, 작품성, 대중성, 수익성 다 좋단 말입니다. 하지만 마치 소수의 의견이 대중을 대표하듯이 소중한 그 단어 하나하나를 자신 있게 잘라 버리면, 빛도 보지 못하고 공허함으로 사라져 버리는 글자 하나하나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인쇄를 하고 나면 수정하기 불가할 정도 어려운 일인지는 알지만, 작품을 평가한다는 사람들은 정말 순수한 크리에터들의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작품을 대할 때 최소한의 예의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역시 많은 작품들을 특정 소수의 평가로 인해 사장된 적이 있기에 격하게 공감하고 걱정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고생은 편집자가, 영광은 작가에게
여러분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었던 책이 있는지요? 저에게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울림을 주는 몇 가지 책이 있답니다. 그중 ‘미라클모닝’이라는 책의 저자는 할 엘로드라는 유명한 자기계발 강연가이자 사업가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편집자는 누구일까요? … 저는 모릅니다. 전혀 모르고요.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작가를 알고 싶어 하지 편집자는 궁금해하지 않거든요.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나요? 그 수많은 책들 중에 작가는 들어 봤어도 편집자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유능한 편집자 맥스 퍼킨스는 톰이 맥스 자신을 칭송하는 에필로그를 책에 싣으려고 할 때 “편집자는 익명으로 남아야 하네” 라며 자신의 공을 작가인 톰에게 모두 넘기려 했습니다. 그로 인해 출판 시장에서도 톰은 인정을 받고 지니어스라는 호평도 받게 되었지요. 하지만 편집자인 맥스는 그저 또 다른 작가들의 원고들을 편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편집자의 길은 참 힘들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맥스의 말처럼 항상 익명로 남을 테니깐요. 그렇다면 작가와 편집자 중 누가 공적을 더 가져가야 할까요? 작가의 원고가 있어야 편집자는 편집이란 걸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대중성을 대표한 편집자의 날카로움이 있어야지 쓰레기 원고는 비단이 될 것이고요.
이번 영화를 보면서 위대한 개츠비의 편집자가 맥스 퍼킨스인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책 앞에는 작가가 있다면 그 뒤에는 편집자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도 저서를 쓰려하고 있고, 김작가가 대표님과 여러 번 퇴고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책이란 것이 작가 하나만으로 나온 것이 아니란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온 감성을 다해 다소 거칠고 억세게 세상을 향해 던진 말들을 부드럽고 반짝반짝 빛나는 옥석 같은 말들로 하나씩 고쳐주고 다듬어 주시는 편집자 분들의 고마움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항상 기타 등등으로 여겨졌던 분들의 성함들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소중한 글, 아름다운 글이 담긴 책을 독자인 저희들의 손에 쥐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쟁이로 살아가는 삶
톰은 자신의 친구 스콧(위대한 개츠비 저자)과 대화를 하며 글을 쓰는 이유를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함이라 말했습니다. 스콧 역시 어렸을 때는 유명세를 위해 글을 써왔지만 현재는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은 쓸 수 있을지가 자신의 최대 관심사라고 했습니다. 톰이 하루에 5000개의 문장을 쓸 때, 스콧은 단 5 문장이라도 진실이 담긴, 가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글이란 것은 작가의 성향에 따라 많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천재적 감성을 지닌 톰처럼 미사여구에 능통하여 자신의 여인을 칭송하는 내용으로만 50페이지를 쓸 수 있는 작가가 있는 반면, 단 2개의 문장으로도 그 의미와 상황을 임팩트 있게 때려주는 작가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글을 쓰면서, 글쓰기를 준비하면서 많은 책들을 읽어보고 느껴보았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1000권의 책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제 수위에 맞는 책들로 제 가슴 용량에 맞는 만큼의 책을 읽어보고 품었다고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책들을 경험하면서 수많은 작가들을 향한 의문점이 하나 생기게 되었습니다. "책에 나온 글처럼 정말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신 걸까?", "말은 쉽지. 나도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정말 행동을 겸비한 말인 걸까?" 대부분 자기계발서는 외국책들을 많이 접하게 되어 그 작가의 삶을 실제로 볼 수도 경험할 수가 없기에 무작정 믿고 책을 읽어내려갔습니다. 하지만 국내 작가님이 쓴 자기계발서들을 접할 때에는 저자 강의를 통해서라도 그분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렇게라도 글에 대한 진실성을 확인하고픈 아직 덜 성숙된 독자의 마음이겠지만요.
저는 아직 글쓰기 초보라서 그런지 다른 분들처럼 간결하지만 이쁜 글들을 쓰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의미도 모르는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이면서 이쁜 척? 고상한 척?을 하는 뼈 없는 글이 되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못나고 배우지 못한 글 일지라도, 그 글이 말하는 것과 내 행동이 말하는 것을 일치시켜 읽는 이에게 진실성 하나만은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지니어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글 쓰는 이의 삶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힘들고 어렵고 외로운 전쟁터 같은 곳에 뛰어드는 것과 같겠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라 여겨졌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글 쓰는 삶에서 행복을 느끼고 재미를 찾으려고 한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지요. 글로 제 생각과 마음을 자신 있게 써내려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한 단계 성장했음을 느낍니다. 지금은 톰처럼 이름을 남기고 싶어 글을 쓰고 있지만, 조금 더 성숙된 이후에는 글 하나하나에 나의 생각과 혼을 담을 수 있는, 그리고 그 글로 인해 누군가의 가슴을 울릴 수 이는 노련한 글쟁이가 되어 있을 자신을 그려보며 하루하루 글을 써내려 가봅니다.
열정의 양면성
글쓰기에 천재성을 지녔던 톰은 자신의 소설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자신의 피와 땀이 섞인 글들이니 온 힘을 다해 가꾸고 싶었겠지요. 그래서 그는 단 하나만 생각하는 몰입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선택이 옳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몰입이라는 외길을 선택하기 전 그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란 것을 알았어야 합니다. 자신의 꿈, 자신의 열정이 소중한만큼 배우자의 꿈도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단 말입니다. 자신을 위해 자신의 시간, 명예, 부를 다 희생하며 보살펴 주었던 번스타인 부인. 그녀가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단 하루도 양보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그에게 행복이란 결과를 줄 수 있는 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첫 책에 쓰인 문장처럼 그는 영원한 방랑자로 남아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도 싱글일 때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원이 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제 사명을 회사에서 다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족이란 공동체를 이루게 되고 나 혼자만이 아닌 배우자, 즉 같이 가야만 하는 동반자가 생겼을 때에는 그 행복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나 혼자의 행복이 아닌 우리의 행복을 향해 함께 나아가야 헸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각자의 꿈을 공유하고 서로가 서로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조력자가 되기로 했지요. 신영준 작가님의 개념 주례사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서로의 조력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보여준 일방적인 톰의 모습은 열정적이고 열성적이었지만, 저에게는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행복을 얻기 위해 올라선 길에서 그 누군가가 버려지고, 희생되며 고통이 따른다면 그것은 행복을 위한 길이 아닌 거라 생각한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맥스가 톰에게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너의 말들, 아름다운 단어들에는 한톨의 진실성도 없었구나"
사실 저희 부부는 작가가 되기 위한 긴 여정을 밟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4시부터 ‘탁탁탁’ 키보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보니 우리는 글쟁이 부부가 맞나 봅니다. 본인은 이제 초고 몇 꼭지를 써 내려간 게 다인지라 작가 준비생이라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와이프인 김작가님은 이미 출판 계약을 완료하고 편집 대표님과 퇴고를 수도 없이 진행하고 있으니 조만간 저서가 나오고 작가라는 호칭을 달게 되겠지요.
어느 날 출판사 대표님이 김작가님에게 영화 지니어스를 추천을 하셨습니다. 작가라면, 그리고 출간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면 꼭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하셨답니다. 사실 한창 퇴고를 시작할 때쯤이라 초보 작가인 와이프에게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권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인 지금 생각해보니 대표님이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권하셨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지니어스는 대중성을 겸비한 영화로 분류하기는 조금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상황 콘셉트 자체가 글 쓰는 삶으로 잡혀 있기에 한계란 것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꼭 작가와 편집자의 이야기로만 볼 것이 아닌, 우리 삶이라는 큰 관점에서 본다면 이질감 없이 받아 드릴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제목에서 말했듯이 지키려는 자와 바꾸려는 자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삶의 이야기로 본다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설로 제 후배는 영화 시놉시스를 보더니 요즘 자신의 상사가 자신의 PPT를 계속 이상한 방향으로 수정하려고 한다며 영화 내용이 공감될 것 같다고 합니다. 이렇듯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다양하게 열어놓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풀어보는 것도 참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 지니어스라는 영화를 통해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본 것이고요.
끝으로 오랜만에 생각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 '지니어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별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