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쪽을 바라고 있는 자그마한 빌라에서 살고 있다. 덕분에 아침 일찍부터 해가 뉘엿뉘엿 보이다가 해가 중천에 뜨게 되면 어느새 사라진다. 맑은 날 아침시간은 우리만의 공간에 햇살이 잠깐 찾아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에 자신만 덩그러니 있으니 꼭 주인공이된 거 마냥 부끄러웠는지 이내 자리를 뜨는 새침때기 햇살이다. 나는 이것을 작품이라 생각하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찾아온 햇살'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여백에 햇살이란 친구가 찾아와 만들어진 햇살 인테리어. 나는 이 공간은 무척이나 좋아한다.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서 그런지 나는 항상 무언가에 목말라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공허함인지, 허전함인지도 모른 체 오직 채우는 것을 목표로 지금껏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나에게 여유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공간이었다.
새벽에 눈을 뜨고 처음으로 나를 맞이해주는 이 공간. 아무것도 없음이 적막함을 안겨줄 법도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나에게 안정됨을 여유로움을 되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 마음껏 쉬었다가'
'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이 아니야'
이나가키 에미코(퇴사하겠습니다. 저자)는 저서에 "무언가를 없애게 되면 거기에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또 다른 세계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원래 거기에 있었지만 무언가가 있음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혹은 보려고 하지 않았던 세계입니다." 라며 나의 공간에 의미를 더욱 부여해 주었다.
아침이면 햇살이 찾아오고, 열어둔 창 사이로 바람이 슬쩍 들어와 벽을 훑어가는 이 공간에서 나는 어떤 세계를 찾을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없는 곳이기에 나의 존재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었다. 한참 폭발적인 성장을 했던 시기를 떠올려보면 나는 항상 이 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간절함을 담아 기도를 드리고, 나만의 삶을 설계하기 위해 사색을 하고, 글을 쓰거나 창작활동을 할 때도 나는 이곳과 함께하였다. 그러고 보니 작다면 무척이나 작은 집에서 다른 곳은 차고 넘치더라도 이 공간만큼은 빈공간은 악착같이 고수하려고 했었다. 지금은 작업공간이 필요하여 책상 하나를 가져다 놓았지만, 아직까지 오롯이 나만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는 손색이 없다.
이렇듯 내 주변의 자그만한 공간을 하나 만들었을 뿐이데 많은 것이 변하였다. 자신만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그것을 위한 시간이 생기고,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 빈 공간을 만들어 본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36년이란 시간동안 나로써 존재하기보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 시간 중 10년이란 시간을 조직에 몸담고 있었으니 지금쯤이면 쉼표를 한번 찍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쉼표 하나로 인해 사라질까봐 두려워하기 보다는, 일단 찍어보고 그 변화와 성장을 기대하는 편이 나을 듯 싶다. 이나가키 에미코의 글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힘을 내어본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나 자신의 상식을 얼마나 뒤집을 수 있느냐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결코 비참한 일도, 괴로운 일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