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성장에 목말라 자기계발서에 한참을 매달려 있다시피 한 적이 있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키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나에게 많은 조언과 가르침, 그리고 용기를 주었던 시간이었다. 성공학, 시간관리법, 인관관계론, 재테크, 라이프 스타일 등 많은 분야에서 괜찮다는 책들은 일단 읽어 보았다. 처음에는 별다른 의심없이 종이처럼 선구자들의 기준과 조언들이 흡수되고 빨아 당겨졌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나니 마음 속 한구석에서 질문이 하나 생기기 시작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옆을 지켜주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지?'. '선구자들이 성공을 위하여 달리는 동안 가족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때부터인지 나는 선구자들의 책을 읽으며 나에게 필요한 부분, 맞지 않는 부분을 필터링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시간의 희생이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목표한 것이 있다면 우선순위에 맞게 하나씩 차근차근 끝내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목표한 것이 있다고 해서 가족들과의 시간까지 희생한다는 것은 나의 기준에 맞지 않다.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구차한 변명으로 가족들이 나의 빈자리로 인한 공허함으로 희생되어져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것처럼 어떻게든 노력을 해서 성공을 해야 가족들도 행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가족들과의 시간만큼은 지켜주고 보장해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에게 우리가 희생을 강요할 자격은 없다. 일본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유다이가 " 아버지라는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거죠" 라고 말했듯이 지금 이 시점에도 가족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행복, 성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과 성공이 정말 무엇인지를 들어내고 정의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가족이 함께해야만 하지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족과의 시간을 모든 것에 우선한다. 그렇게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시간이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천에 버려지는 시간을 활용하지 못한 변명일 뿐이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티비 시청시간을 없애고 아이들과 뛰어 놀거나 책을 읽어주고, 출퇴근 시간에 즐겨보던 웹툰을 끊고 자기계발서를 손에 들었으며, 인생을 기적처럼 변하시키기 위한 미라클모닝도 나의 몸속에 새겨 넣었다. 이제는 시간이 없다는 변명을 하지 않는다. 다만 노력하지 못했다는 말은 한 번씩 할 수는 있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 한 번씩 늘어지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가족을 희생시키는 일은 절대 하지 않기로 했다. 아프리카 속담에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라는 말처럼 나의 성공의 뒤에는 가족의 희생이 아닌 가족과 함께라는 행복이 따랐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선구자들의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직접 경험해보았기에 그것이 왜 필요한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무엇이 우선순위에 있는지에 따라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한때 회사와 나를 동일 시 했던 총각시절의 나 자신을 떠올려본다.
대학교를 졸업 후 그토록 다니고 싶었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대대손손 상인의 집안에서 자라온 나로서는 대기업에 입사한다는 것이 가문의 영광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당시 나의 꿈은 바다같이 거대하고 파도처럼 힘이 넘쳤었다. 이 회사에 입사한 이상 CEO는 되어야지라는 당찬 각오로 모든 일에 임하게 되었다. 공대 출신이었던 나는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연구소 내 개발부서에 배치받게 되었고, 입사 당일 때부터 편하게 잠을 자 본적이 없었다. 하루하루 해내는 일보다 쌓여가는 일이 더 많았고, 배우고 싶은 건 너무나 많은데 배울 시간이 없던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만큼 조직의 일이 재미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따로 시간내어 배울 시간이 없으니 현장에서 하나라도 더 배우려 했고, 새벽이 되서야 일을 끝이나도 바로 퇴근하기보다는 일단 선배들과 함께 퇴근하며 술자리에서도 노하우를 더 얻어가고 싶어 했었다. 요즘에는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때 당시는 월화수목금금금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목표와 행동이 완벽하게 일치되어 있었다. CEO라는 큰 목표가 세워져 있으니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작은 목표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며 처음으로 로드맵이란 것을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연구원 시절 로드맵을 팀장 및 인사과장에게 본인은 여기에 머물 사람이 아니란 것을 계속해서 어필 하였었다. 처음에는 콧방귀만 뀌던 그분들이 장난이 아닌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나를 조적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였고, 4년차부터는 비공개적인 인재 풀에 들어가게 되었고 나의 로드맵은 나의 수첩이 아닌 회사 내 DB에 들어가 하나의 관리 자료가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성공이 보장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회사에서 미리 닦아놓고 기다리려 준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물론 그 당시 나는 혈혈단신 열정에 가든 찬 총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회사에서 핵심인재 관리대상으로 선정된 당시 지금의 와이프와는 연인인 상태였다. 항상 새벽에 퇴근하는 나를 위해서 부산에서 창원까지 열심히 올라와 저녁식사만 함께하고 다시 내려가는 고달픈 희생을 감내해준 정말 고마운 그녀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회사라는 우선순위가 있었기에 연인과 함께하는 시간보다는 직장동료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노동의 시간에 더 할애하고 싶었고 무작정 그녀에게 희생을 강요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참 몰랐던 것 같다.
나만의 시간을 줄여가며 회사 내 시간을 늘리고, 어느 정도 인정을 받으며 탄탄대로라고 생각한 그 길을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되었을 때 지금의 와이프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한 사람으로 자리도 잡았으니 가족을 책임질 자격이 생겼다고 판단을 하였다. 맞벌이 부부로서 조금만 노력하면 남들 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고,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했었다.
와이프의 직장과 가까운 부산에 신혼집을 마련하였다. 신혼여행 후 첫 출근 날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창원까지 출근을 하였다. 항상 막히는 구간이라 빨리 출근한 이유도 있었지만, 막히는 시간에 도로 위에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일찍 출근하여 미리 업무를 처리하고 남들보다 좀 더 빨리 퇴근해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출근을 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 아침에 아무리 업무를 처리해놓아도, 쌓이는 일은 마찬가지일 뿐이고 내가 신혼인지 총각인지 관심은 없고 각자의 업무처리에 정신이 없었다.
나는 결혼 후 첫 출근을 하며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 갑갑하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 불현듯 가족이라는 단어가 나의 가슴속을 후벼 파고 들어왔으며, 기존의 우선 수위였던 회사를 밀어내고 당당하게 자리 잡고 앉게 되었다. 그동안 가족이라고 하면 부모님 아니면 형, 누나라고만 여겨졌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의식 치룬 후 나만의 특별한 가족이 생기게 된 것이다. 나만의 가족은 곧 내가 책임져야할 가족이고 그것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족이 되는 것이었다.
성공을 바라보던 관점도 달라지게 되었다. 그동안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던 중에 느닷없이 가족이란 동반자가 생기게 된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릴 때는 아무리 힘들고 지쳐 쓰러져도 나만 추스리고 다시 시작하면 되었지만, 가족이란 구성체가 함께 달린다고 생각하니 신경 쓸 것도 챙겨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나도 가족도 모두 지쳐 주저앉게 될 뿐이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각에서 인생의 로드맵을 짜야만 했다. 회사에서 성공하기 위한 로드맵이 아닌, 인생에서 가족과 함께 어떻게 행복할지에 대한 로드맵이 더욱 절실했던 것이다.
2011년 12월, 나의 성공에 대한 관점이 바뀐 중요한 시점이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조직의 인정'이란 사회적 관점에서 '가족의 행복'이란 지극히 개인적 관점으로 변경되었고, 성공이란 단어 앞에 나 자신이 아닌 가족이란 구성체를 붙여 놓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성공'이란 과정과 목표를 함께 넣은 삶의 다짐을 굳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