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도 아파트에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막 6살이 된 첫째 아들은 요즘 들어 부쩍 아파트 타령이다.
"아파트에 살고 싶은 이유가 있니?"
솔직히 나 자신도 아파트에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벌여놓은 사업도 있고,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해서 미루고 있을 뿐이다.
"우리 집은 아파트만큼 넓지가 않잖아. ㅇㅇ이 집은 넓어서 막 뛰어다니고 좋았는데"
아들의 대답은 단순하고도 명확했다. 어린 눈으로도 더 넓고 깨끗하고 세련되어 보였던 것이다. 사실 우리가 사는 빌라도 나름 신축에다가 외관도 펜션처럼 예쁘게 지어져 있다. 심지어 우리의 가지치기 삶 덕분에 짐이 별로 없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다닐 공간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만족스럽지 않나보다. 예쁜 조경이 갖춰진 마당이 있고, 손쉽게 집에 올라 갈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으며, 높은 곳에서 멀리보이는 전망이야 말로 아이에게는 더 살기 좋은 곳이라고 인식 되어 있나보다.
"아빠는 말이야. 비록 아파트는 아니지만 우리 아들들과 같이 뛰어 놀면서 베개싸움도 하고, 동생이랑 같이 놀수 있는 거실도 있고, 다 같이 잘 수 있는 안방이 있어서 나는 너무나 좋은데 지우는 어때?"
"나도 우리 집이 좋아"
그렇게 나는 아들이 원하는 아파트의 시선을 가족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돌려 그 순간을 모면한다.
우리는 1단지부터 5단지까지 아파트가 조성된 택지지구에 산다. 택지지구 특성 상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에 상가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우리는 그 상가주택 중 한 곳에 세입자로 들어가 살고 있다.
"00 아빠는 몇 단지 살아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처음에는 괜히 기분이 나빴다. '당신이 왜 내가 사는 곳이 궁금한데?', 마치 어디 사는지를 확인해서 나를 판단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대답은 항상 어중간했었다.
"저는 4단지 쪽에 살아요."
4단지면 4단지지 쪽은 뭘까? 하지만 빌라에 산다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은 자격지심으로 인한 표현이었다. 스스로 주거환경에 대해 만족한다고 하면서 남들에게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모습이 참 작아보였다. 이게 뭐라고. 사는 게 뭐라고. 내가 사는 집, 내가 타는 차가 뭐라고 나를 대변할 수 있을까? 이건 마치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예전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요즘은 나에게 어디 사냐고 물으면 과하다시피 친절하게 알려준다.
"저는 4단지 앞에 도서관 있죠? 거기 앞에 있는 빌라에 살고 있어요~"
동네 사람들은 그걸로 내가 사는 위치 파악이 끝났음으로 뒷 이야기가 별로 없지만, 회사 동료가 나에게 질문을 하고 내가 답을 하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홍과장, 빌라에 살면 방범이 취약하지 않을까?"
"애들 키우기에는 아파트가 더 나을텐데…"
"돈 아껴서 뭐할래? 대출 받아서라도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아~"
참으로 감사한 분들이다. 자신이 아닌 남의 주거환경까지 걱정해주시는 분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말만 하지 나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실 분은 없다. 대출을 더 받게 해주시던지, 아님 돈을 좀 빌려주시던지. 누구는 아파트 안가고 싶어서 안가나. 아직까지 못가서 여기에 있는 건데 말이다.
우리 부부는 젊었을 때부터 부동산 투자를 해온지라 임대사업을 하고 있는 아파트를 십 수채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보진 못했지만 우리 명의의 집은 좀 있다는 말이다. 임대업을 하고 있어서 집주인의 여유를 느끼는 것보다 한 번씩 서러움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집주인이 무슨 서러움을 느끼냐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 같은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2017년에 향후 미래 가치를 보고 오래된 아파트를 매수하여 임대업을 하려고 했다. 연식도 오래되었고 인테리어도 새로 해야 해서 좋은 가격에 매수하였고, 그렇게 바로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내 집에 인테리어로 투자해보지 않았는데, 막상 세입자를 위해 인테리어를 내 돈 주고 하려니 배가 좀 아팠다. 그래도 내집이려니 해서 꼼꼼히 인테리어 과정을 지켜보고 살폈다. 그리고 완료한 날 와이프와 함께 아파트에 방문 했을 때, 마음 한구석에서 부러움과 서러움이 동시에 막 올라왔다. '나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들어올 세입자가 부럽기도 하고 우리에게 이것저것 따지던 세입자가 미워지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아들이나 부모나 모두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한다. 어른인 우리야 현실을 알아채고 조용히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지만, 아직 어린 우리 아들은 매일 집 앞에 있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아파트 살고 싶단 타령이다. 우리는 그냥 웃어넘기고 있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가슴이 아련해지기도 한다. 얼마나 더 많은 욕심을 채우려고 아이가 가지고 싶어하는 지금의 행복을 미루고 있는 것일까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아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 무엇이든 가지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인내와 노력, 그리고 고통이 필요하단 것을. 그래서 1년이란 시간 뒤에는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아파트에 가면 얼마나 좋아할까? 우리도 이렇게 벌써 설레고 좋은데 이 아이는 어떤 기분일까?
우리는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준비해나가면서 우리 가족만의 기준으로 살아갈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지금 당장 주변에서 뭐라 말하든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묵묵히 가면 된다. 비록 지금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작은 빌라에 살고 있을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