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원두 송금에서 시작된 금융 인프라 혁명

(1)글로벌 결제인프라 플랫폼 Airwallex 창업스토리

by 똘똘이스머펫

자본은 본질적으로 에너지다. 에너지는 저항이 없는 곳으로 흐르려 한다. 물이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듯, 자본 역시 마찰이 적은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인류가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해 놓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매끄러운 혈관이라기보다, 곳곳이 막히고 꼬인 복잡하고 거친 미로에 가까웠다. 겉으로는 거대한 디지털 네트워크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 구조는 여전히 오래된 관료적 장치와 파편화된 금융 인프라가 얽혀 있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이다.


현대 사회에서 국경을 넘는 자금의 이동은 대부분 스위프트(SWIFT, 국제 은행 간 통신망)라는 아주 낡은 파이프라인을 통과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글로벌 송금 네트워크로 이해하지만, 스위프트는 사실 돈을 직접 이동시키는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은행들 사이에서 “송금 요청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신망에 가깝다.

예를 들어 한국의 기업이 브라질의 공급업체에게 돈을 보낸다고 가정해 보자. 돈이 곧장 목적지 은행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A국가의 은행이 B국가의 중개 은행으로, 다시 C국가의 은행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치 릴레이 경기에서 바통을 넘기듯 송금 요청이 전달되는 구조다. 실제 돈은 그 메시지를 따라 여러 은행 계좌를 거치며 이동한다.


이 거칠고 긴 파이프라인을 통과할 때마다 마찰이 발생한다. 중간에서 바통을 넘겨받는 은행들이 떼어가는 중개 수수료, 환전 과정에서 붙는 불투명한 환율 마진, 그리고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며칠씩 걸리는 시간.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은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세금이다. 장부에는 명확히 기록되지 않지만, 기업의 이윤을 조용히 갉아먹는 비용이다.


이 구조는 수십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꾸는 동안에도 글로벌 금융의 기본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보는 이제 거의 실시간으로 이동하지만, 돈은 여전히 느리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통과한다. 21세기의 디지털 네트워크가 정보의 처리 속도를 빛의 속도로 끌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의 세계는 여전히 이 구시대의 철창 속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철의 새장을 부수겠다고 결심한 남자는, 역설적으로 이 시스템의 가장 밑바닥에서 생존의 쓴맛을 배운 이민자 청년이었다.


잭 장(Jack Zhang).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물리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영재였다. 숫자와 논리의 세계에서 그는 또래보다 훨씬 빠르게 사고했고,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가 과학자나 공학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부모 역시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잭의 가능성이 칭다오라는 지역 도시에 머무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결국 잭이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부모는 큰 결심을 한다. 아들을 호주 멜버른으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낯선 땅이었지만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그는 명문 사립학교인 웨스트본 그래머 스쿨에 입학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 속에서 적응해야 했지만, 그의 미래는 비교적 안정된 궤도 위에 올라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불과 1년 뒤, 잔인한 운명이 그를 덮쳤다.


중국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실직했고, 집안의 재정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해외에 있던 아들에게 보내지던 모든 지원이 끊겼다. 16세의 소년은 말도 완벽하게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사실상 혼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잭의 삶은 생존의 문제로 바뀌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던 잭은 일을 찾아 나섰다. 레몬 공장에서 무거운 상자를 나르며 손이 부르트도록 일했고, 식당 구석에서 밤새 산더미 같은 접시를 닦았다. 심야 주유소의 야간 계산원으로 일하며 쏟아지는 졸음과 싸웠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바텐더로 일하며 학비를 모았다.


이 시간은 단순한 고생의 기록이 아니었다. 그는 돈이 부족한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자본의 결핍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좁은 공간에 가두는지 몸으로 배웠다. 1달러의 가치, 아니 1센트의 무게를 누구보다 절절하게 경험했다. 독기로 버텨낸 끝에 그는 호주 최고의 명문 중 하나인 멜버른 대학교에 진학해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뛰어난 프로그래머로 성장했다. 졸업 후 그는 호주를 대표하는 거대 금융기관인 내셔널 오스트레일리아 은행(NAB)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그는 외환(FX) 거래 시스템과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핵심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는 매일 수조 원에 달하는 자본이 국경을 넘나드는 장면을 시스템의 가장 깊은 곳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묘한 질문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시스템은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가?'


은행 내부에서 바라본 금융 시스템은 생각보다 낡아 있었다. 수십 년 전 설계된 인프라 위에 새로운 기술이 덧붙여진 형태였다. 복잡한 중개 구조와 불투명한 수수료 체계는 마치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오래된 규칙처럼 유지되고 있었다. 한편, 그의 내면에는 편안한 고연봉 직장인으로 만족할 수 없는 기업가적 야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은행원으로 일하는 동시에 여러 개인 사업을 병행하며 상당한 자산을 축적했다. 하지만 통장 잔고가 늘어날수록 이상하게도 허무함이 커졌다. 돈을 버는 기술은 배웠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2014년, 잭은 건축가 출신의 오랜 친구 맥스 리(Max Li)와 함께 멜버른 도클랜드에 ‘Tukk & Co’라는 작은 스페셜티 커피 카페를 열었다. 그저 지인들과 좋은 커피를 나누고 싶어 시작한 작은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이 작은 카페가 세계 금융의 역사를 바꾸는 진원지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카페를 운영하며 그들은 최고급 커피 원두와 종이컵, 포장재 등을 브라질,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에서 직접 수입해야 했다. 그리고 바로 그 평범한 과정에서 잭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민낯과 마주하게 된다.


해외 송금을 할 때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이 빠져나갔다. 은행의 외환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직접 시스템을 구축했던 그는 그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놀랐다. 거대 기업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 수준의 수수료만으로 자금을 이동시킨다. 반면 잭과 맥스 같은 소상공인, 그리고 글로벌 무역을 하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은 해외로 대금을 보낼 때마다 4~5%에 달하는 환율 수수료를 부담해야 했다. 은행의 시스템 구조를 백엔드 단위까지 알고 있던 잭에게 이 격차는 단순한 시장 가격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구시대적 금융 인프라를 장악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구조적인 차이였다. 잭은 맥스에게 말했다.

“이거, 완전히 잘못된 구조야.”

맥스가 물었다.

“뭐가?”

잭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문제는 송금 서비스가 아니야. 금융 인프라 자체야.”

잭은 세상을 바꾸는 임팩트는 바로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들이 수십 년 동안 유지해 온 낡은 파이프라인을 통째로 다시 만드는 것. 그리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금융 고속도로를 구축하는 것. 일개 엔지니어가 금융인프라를 바꾸겠다는 것 - 허무맹랑하리만큼 큰 이상이었다.


잭은 맥스 리, 멜버른 대학 시절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던 개발자 제이콥 다이(Jacob Dai)와 함께 팀을 꾸렸다. 하지만 아이디어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독자적인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막대한 초기 자본이 필요했다. 잭이 계산한 최소 필요 자금은 100만 달러였다. 이 거액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바로 그 시점, 잭은 멜버른의 지인 모임에서 운명을 함께할 지원군을 만난다. 2015년, 루시 류(Lucy Liu)는 굴지의 중국국제금융공사(CICC)에서 일하던 25세 창창한 인재였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인 그녀는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앞두고 집을 함께 구매하려고 계획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러나 그녀 역시 마음속에는 거대한 조직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갈증이었다.


휴가를 내어 여행차 멜버른을 방문했던 그녀는 지인의 식사 자리에 합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잭 장 일행을 만났다. 식사를 하며 자신의 계획을 거침없이 설명하는 잭의 아이디어에 루시는 홀린듯 빠져들었다. 스위프트라는 낡은 금융 파이프라인, 그리고 그 위에 완전히 새로운 글로벌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계획.

그가 말하는 것은 단순한 송금 앱이 아니었다. 금융 시스템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이야기였다. 잠시 이야기를 듣던 루시는 조용히 말했다.

“아마존이 클라우드로 인터넷 기업들의 인프라가 된 것처럼, 당신들은 핀테크 기업들을 위한 AWS가 되려는 거군요.”

그리고 곧바로 덧붙였다.

“제가 200만달러 투자할게요. 지분 40% 조건으로요.”


그 자리의 공기가 잠시 멈췄다. 아이디어 단계의 스타트업에 20대 개인이 2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것은 상식적인 제안이 아니었다. 그것도 그들은 그 날 처음 만나 불과 몇시간 이야기 했을 뿐이다.

결국 다음 날 그들은 몇 시간에 걸친 협상을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루시와 남자친구는 루시가 100만 달러를 투자하고 회사 지분 20%를 받고 공동창업자로 합류하는 조건에 합의했다. 그리고 며칠 뒤 잭의 계좌에 정확히 100만 달러가 입금됐다. 이제 개발만 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기적의 시작 뒤에는, 그들을 끝없는 절망으로 밀어 넣을 긴 침묵의 시간과 실패가 기다리고 있었다.


화, 목 연재
이전 16화성공은 설명되지만 재현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