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실패와 마지막 기회

(2) 글로벌 지급결제 핀테크 Airwallex 스토리

by 똘똘이스머펫

25세의 엘리트 금융인 루시 류(Lucy Liu)가 과감히 베팅한 100만 달러(약 13억 원)의 시드 머니(Seed Money, 초기 자본금)는 잭 장(Jack Zhang)의 벤처에 강력한 생명수를 불어넣었다. 자본이 확보되자 팀은 곧바로 움직였다. 잭 장과 그의 동료들은 멜버른의 작은 사무실에 틀어박혀 밤낮없이 코드를 짜기 시작했다. 벽에는 화이트보드가 가득 붙어 있었고, 그 위에는 세계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화살표로 연결된 도시들, 복잡하게 얽힌 통화 흐름, 그리고 그 위에 덧그려진 새로운 결제 경로들. 그들이 그리고 있던 것은 단순한 스타트업의 서비스가 아니라, 은행들이 수십 년 동안 지배해 온 국제 결제 인프라를 다시 설계하는 청사진이었다.

그러나 비전이 크다고 해서 현실이 관대해지는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 세계는 언제나 냉혹하다. 자본이 조금 들어왔다고 해서 시장이 문을 열어주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고객이 자동으로 몰려오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아이디어와 열정만으로 시작했다가, 시장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에어월렉스가 처음 세상에 내놓은 비즈니스 모델은 ‘P2P 기반의 국경 간 결제 시스템’이었다. 아이디어 자체는 단순하면서도 혁신적이었다. 예를 들어 호주에서 중국으로 돈을 보내려는 사람이 있고, 동시에 중국에서 호주로 돈을 보내려는 사람이 있다면, 두 거래를 직접 연결해 버리는 것이다. 굳이 은행의 국제 송금망을 거칠 필요 없이 양쪽의 돈을 서로 상쇄시키면 된다. 그렇게 되면 환전 비용과 중개 수수료가 극적으로 줄어든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모델이었다. 은행이라는 중개자를 제거하고 사용자들끼리 직접 거래를 연결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거래량'이었다.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양쪽에서 동시에 송금하려는 수많은 사용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호주에서 중국으로 보내려는 돈과 중국에서 호주로 보내려는 돈이 일정 수준 이상 쌓여 있어야만 매칭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제 막 태어난 무명의 스타트업에게 그런 거래량이 생길 리 없었다.

사람들은 생때같은 돈을 이름도 모르는 회사에 맡기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신뢰였다. 금융 서비스에서 신뢰는 기술보다 훨씬 중요한 자산이다. 아무리 코드가 완벽해도, 아무리 수수료가 싸도, 사람들이 “이 회사에 돈을 맡겨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 거래는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시스템은 움직이지 않았다. 거래량이 없으니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사용자도 늘어나지 않았다. 정교하게 설계된 알고리즘은 현실의 시장 앞에서 허무하게 멈춰 섰다.

첫 번째 실패였다.


하지만 스타트업에게 실패는 흔한 일이다. 문제는 실패 이후다. 대부분의 팀은 이 지점에서 방향을 잃거나 지쳐서 무너진다. 그러나 잭 장의 팀은 곧바로 두 번째 시도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타깃을 개인이 아니라 기업으로 바꿨다.

그들이 내놓은 두 번째 제품은 호주의 전자상거래 판매자들이 중국 소비자들로부터 대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인보이싱 플랫폼이었다. 중국 소비자들이 결제한 돈을 보다 원활하게 해외 판매자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었다.

겉보기에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은 이미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해외 판매자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에어월렉스는 그 사이에서 결제와 정산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들이 만든 서비스는 결국 기존 은행 시스템 위에 올라간 또 하나의 레이어에 불과했다.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금융 인프라 자체를 바꾸지 못한 채, 그 위에 편의 기능을 덧붙인 수준이었다.

속도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비용 구조도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시장은 냉정했다.

아무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실패였다.


거침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잭의 벤처 신화가 처음으로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루시 류가 투자했던 100만 달러는 서버 유지비와 개발 비용으로 빠르게 증발하고 있었다. 스타트업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숫자가 서서히 현실로 다가왔다.

런웨이(Runway).

회사가 아무런 추가 자금 없이 버틸 수 있는 남은 시간이다.

에어월렉스의 런웨이는 이제 겨우 6주였다.

직원들의 다음 달 월급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바로 이 지점에서 사라진다. 자본이 마르고, 투자자들은 관심을 잃고, 창업자들은 현실을 받아들인다.

플랜 B는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가 찾아온다.

아시아 인터넷 생태계의 절대적인 포식자, 텐센트(Tencent)였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향해 떨어지던 시점, 에어월렉스 팀에게 텐센트 벤처투자팀과의 미팅 기회가 주어졌다. 텐센트는 단순한 투자사가 아니었다. 중국 최대의 인터넷 기업이자, 위챗(WeChat)이라는 국민 플랫폼을 가진 거대한 제국이었다.

잭 장은 이 기회를 얻기 위해 무려 3개월 동안 매달렸다. 이메일을 보내고, 소개를 부탁하고, 수차례 거절을 당하면서도 계속 문을 두드렸다.

결국 그는 텐센트의 최고 전략 책임자(CSO) 제임스 미첼(James Mitchell)과 짧은 미팅을 잡는 데 성공했다.

이 미팅은 단순한 투자 미팅이 아니었다.

에어월렉스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다.

텐센트가 투자한다면 단순히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과 직접 연결되는 통로를 얻는 것이었다.

미팅 전날 밤.

홍콩의 작은 비즈니스 호텔 방에서 창업팀은 새벽 3시가 넘도록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다음 날 투자자들에게 보여줄 프로토타입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었다.

잭 장은 지독한 완벽주의자였다.

라이브 데모에서 단 한 번의 오류도 허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종종 가장 잔인한 타이밍에 장난을 친다.

다음 날, 텐센트 본사의 회의실.

잭 장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글로벌 송금 시스템의 문제를 설명한 뒤 에어월렉스의 결제 대시보드를 시연하려 했다.

그리고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러나 화면에 나타난 것은 완벽하게 작동하는 결제 인터페이스가 아니었다.

검은 글씨로 적힌 단 하나의 문장.

404 Error.

웹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회의실에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창업자에게 라이브 데모 중 시스템이 멈추는 순간은 최악의 악몽이다. 잭 장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설명했다.

“아마 텐센트 내부 방화벽이 외부 서버 접근을 막은 것 같습니다. 코드 자체는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일반적인 투자자였다면 여기서 미팅을 끝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임스 미첼은 달랐다.

그는 과거 골드만삭스에서 페이팔의 기업공개를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디지털 결제 산업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전략가였다.

그의 시선은 고장 난 화면이 아니라, 잭 장이 설명했던 비즈니스 모델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조용히 어깨를 으쓱했다.

“It is what it is.”

그리고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시스템 구조부터 다시 설명해 보죠.”

그는 에러 화면을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 에어월렉스가 만들고 있는 인프라의 기술 구조, 각 국가의 규제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그리고 이 시스템이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했다.

잭 장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는 화면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텐센트는 결정을 내렸다.

다음 날.

에어월렉스는 텐센트로부터 투자 승인을 받았다.


이 소식은 곧바로 글로벌 투자 시장에 퍼졌다.

텐센트가 선택한 스타트업이라는 사실 자체가 가장 강력한 신호였다.

세쿼이아 캐피탈 차이나, 마스터카드, 스퀘어 페그가 연달아 투자에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에어월렉스는 1,3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6주 뒤의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었던 회사였다.

이제 그들은 완전히 다른 위치에 서 있었다.

자본은 준비되었다.

그리고 잭 장과 루시 류는 결심했다.

더 이상 반쪽짜리 제품을 만들지 않겠다고.

이제부터는 은행 위에 올라가는 서비스가 아니라, 은행 아래에 존재하는 인프라를 다시 만들기로 했다.

세계 금융의 낡은 혈관을 교체하는 작업.

그 작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조용히 사라지기로 했다.

스텔스 모드(Stealth Mode).

긴 침묵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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