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에게 보내는 첫 편지
수빈에게,
안녕, 수빈. 너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써봐.
글을 다시 쓰고 싶은데, 다시 시작하기가 무척 어려운 거야. 그러다 문득, 책이었는지, 영상이었는지 글쓰기가 어렵다면, 다수가 모여 있는 대중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단 한 사람만을 상상하고 글을 써 보세요'라고 하던 조언이 떠오르더라.
그래서 어느 카페에서,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오후에 따뜻한 티를 마시며 너와 이야기를 한다고 상상하며 글을 써 내려가려고 해. 그리고 너는 나를 진심을 담아, 궁금해하며 바라보고 있을 거야. 그리고 고맙게도 넌, 나를 평가하지 않고 이해하고 배려해 주며 경청해 줄 테지. 나의 이야기에 관심 없는 사람은 세상에 아주 많지. 아니, 절대다수가 그럴걸?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너라는 한 존재 앞이라면 나는, 충분해. 진심으로 충분해.
수빈, 너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참으로 많아 무엇부터 이야기할지 모르겠어. 아, 그렇다면 조금은 가슴이 아릿한 것 하나, 즐거운 이야기 하나를 해볼게!
먼저, 가슴이 아릿한 것 하나는 말이지. 올해가 가기 전, 엄마에게 연락을 해보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엄마와 연락을 안 한지는 만 5년이 되어가고 있어. 그 시간은 참 힘들었어. 엄마가 몹시 보고 싶었지만, 그녀가 무척 원망스러웠고, 미웠어. 그녀와 소통을 지속하다가는 내가 계속 다칠 것 같아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내 쪽에서 마음의 문을 닫았지. 그럼에도 각종 영상에서 나오는 모녀간의 모습, 일상생활에서 보이는 모녀 관계,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나오는 친구들의 엄마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불편하고, 아릿하고, 힘들었어.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도 정말 많았어.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는 것에는 마음의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더라. 동시에 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된 엄마의 나르시시즘과 나의 어린 시절의 어려움들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데에는 지난한 시간이 필요했어. 그리고 연락을 안 하기 시작한 그 시점, 극도의 스트레스로 시작된 나의 신체화장애로 인해 나는 몸적으로도 자주 아팠지.
그런데 말이야, 지난주에 친동생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대. 그 통화를 한 것은, 나와의 통화 이후였어. 그날 동생과 엄마 이야기를 정말 오랜만에 했거든. 내가 말했어. '잘은 모르겠는데, 나는 내가 엄마에게 바라는 게 없고,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가 오면 연락할 수 있을 것 같아. 그저 엄마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그저 있는 그대로 말이야. 그리고 그냥 가볍게 사과 한 봉 건네면서, 엄마 맛있어 보여서 샀어, 라며 웃으며 전해줄 정도의 가벼운 만남, 관계가 되었으면 해. 그런데 말이야, 나는 이 관계의 재시작은 네가 괜찮다고 할 그 이후에, 언젠가 할 거야. 그 사건은 너에게 큰 상처를 준 일이라, 나는 네가 괜찮은 게 먼저야.'
그리고 동생이 지난주에 이사하기 전 날, 전화했더라. 그 전과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하고, 만나서 대화를 했대.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았대. 동생은 그 사건을, 없던 일로 하기로 했대.
수빈아, 나는 그녀를 이해하는 것이 힘들었어. 며칠 전에는 문득,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힘들었던 내가 그녀를 참으로 사랑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어. 그리고 동시에, 어렸을 적부터 그녀를 이해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내가, 한 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어. 그녀의 어린 시절, 가정환경, 결혼 후의 삶, 육아, 종교 활동, 여러 가지. 그녀의 삶을 타인으로서는 꽤나 잘 알고 있는 것 같거든. 그래서 수빈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그녀에게 연락을 해보고자 해. 울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그녀를 깊게 원망하거나, 사과를 요구하거나, 무언가를 나에게 해주길 바라는 건 없었으면 해.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눈물이 계속되니, 이제는 주제를 바꿔볼게. 너에게 편지를 쓰기 이 전에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눈물과 분노 범벅이라 글이 써지지를 않았거든. 그리고 너무 울면 글을 지속해서 쓰기가 힘들더라!
지난 토요일에는, 남편과 로드 자전거를 탔어. 울산이라는 도시에 이사 온 지 처음으로 로드 자전거를 꺼냈어. 자전거 정비를 받고, 자전거 옷을 입고, 집 근처에 있는 여천천이라는 곳에서 태화강 변까지 달렸어. 와, 날은 시원하고, 자전거 길은 잘 마련되어 있고, 햇빛에 눈이 부시고, 갈대밭은 멋지고, 어떤 곳은 나무가 흐드러지더라. 행복하고 기뻤어. 남편은 서울에서 자전거를 자주 타던 사람이니까, 어떤 대교, 어떤 대교와 비슷하다며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서울보다 사람이 훨씬 적어서 좋더라.
(이 사진은 타다가 중간즈음에 벤치에 앉아서 찍은 사진이야. 한강 변과 달리 애석하게도 편의점이 없어서.. 간식을 못 먹은 게 아쉬웠어!)
감사한 하루였어. 나 요새 몸도 꽤 좋아졌거든. 갑자기 취소된 토요일 오전 과외 수업으로 인해 늦잠을 더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맛있는 브런치를 먹고, 갑자기 자전거 정비를 받더니 자전거 라이딩! 햇살은 완벽하고, 바람은 선선하고, 자전거 도로 옆 인도에 러닝 하는 사람들, 산책하는 사람들, 혹은 행사를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과의 대화. 이 정도면 나 행복하다 싶더라. 만성통증을 여전히 관리하고 있지만, 이렇게 자전거도 탈 수 있다는 것, 남편과 드디어 반환점에서 마주한 CU편의점에서 초코우유 사 먹을 수 있다는 것, 저녁 시간에 일을 하지만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너와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 마음도 천천히는 가벼워지고 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감사해서 마음이 충만해졌어.
수빈, 나는 이제 나를 너무 채찍질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천천히, 다정하게 나를 대해보고자 해.
그런 맥락에서, 네게 이 편지도 천천히 그렇지만 꾸준히 보낼게.
쉽지 않은 월요일, 오후 시간, 네 마음이 평온하기를 바라며
마음을 담아,
아온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