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설날: 귤 모자를 쓴 할머니, 연화장의 아빠, 눈이 하얘진 강아지
코리안 새해가 밝았다. 진짜 2026년의 시작!
이번 설 명절에 고향 수원에 다녀온 기록을 남기고 싶다.
명절에는 수원 할머니댁에
할머니, 여동생, 여동생의 강아지 '아기', 남편 그리고 내가 모인다.
울산에서 4시간 30분을 남편과 차로 번갈아 운전하며 도착한 할머니댁,
할머니는 그렇게 먼 길을 왔냐며 연신 고맙다고 하신다.
오랜만에 만난 강아지 '아기'는 동생이 보내준 사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작음'을 느낀다.
3kg의 작은 강아지 아기. 여동생은 늘 '내 새끼'라고 부르는 아기.
아기는 늘 나를 보면 할머니 원룸 방을 빙글빙글 적어도 3바퀴씩은 돌곤 했는데.
10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한 바퀴를 돌더니, 이번에는 돌지도 않고 그저 반가운 티만 낸다.
나의 브런치 프로필 사진이기도 한 아기는, 가만히 바라보니 눈이 좀 하얘졌다. 동생 말로는 백내장 1기에서 2기로 넘어갔다고 한다. 6개월에 한 번씩 보는 아기는, 볼 때마다 나이가 들고 있다.
37년생인 나의 할머니는, 올 해로 90세가 되셨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귀가 더 잘 안 들리신다. 더 천천히, 크게 말해야 한다.
이전보다 더 할머니의 입에서 나는 냄새가 심해졌다.
식탁에 둘러앉아, 기사식당을 했던 할머니의 음식 솜씨에 감탄하며 식사를 한다.
'이거 할머니가 만든 오이소박이지?'
'이 갈비탕은 할머니가 한 거 아니지?'
'이 깍두기 역시 시원해~ 할머니가 만든 거 맞지?'
반찬 하나하나, 동생과 함께 할머니의 음식인지 혹은 누가 해준 것인지 감별해 본다.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어릴 때도 그렇게나 잘 맞추더니. 맛만 보면 내 것인지 동네 사람 것인지 알더니, 그때랑 똑같아.'
울산에서 챙겨간 간단한 펭귄 보드게임과, 우노 게임을 한다.
우노 카드게임을 할 때는, 할머니에게 계속 규칙을 알려드린다.
'할머니 빨간색 없지? 할머니 먹어!'
'할머니 7 없지? 먹어!'
웃음꽃이 핀다.
나갈 채비를 하고, 수원시 연화장으로 향한다.
벌써 아빠가 떠난 지 5년이 지났다.
할머니의 지팡이와 '구루마'를 끌고 향한 그곳,
할머니는 아빠에게 말을 건넨다.
"네 딸이랑 사위 왔다. 엄마도, 둘째 딸도 왔어."
지난 추석에는,
'네가 왜 거기 있니'라고 하셨는데. 이 번에는 다르다. 다행이라고 느낀다.
할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아들을 먼저 보낸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 하지만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이다.
나도 말을 건네본다.
"아빠, 그곳에선 편안하지? 나는 잘 지내."
울컥, 하려는데 우리 할머니 다급하게
"바람이 너무 분다. 너무 춥다. 손녀 춥다, 가자"하신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할머니 구루마를 같이 잡고 차로 향한다.
차를 타고 5분 정도 가니, 목적지인 태국 쌀국수 식당이 나왔다.
남편과 식당에 갈 때는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던
'반려동물 입장가능', '할머니의 구루마 사용 가능' 두 가지 옵션에 모두 통과한 식당이었다.
심지어 광교호수공원 바로 옆에 있는 뷰가 멋진 식당!
그곳에서 우리는 맛있게 먹고, 대화를 나눴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쉬웠다. 시간을 부여잡은 채로 대화하고 눈을 맞췄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와 멀리까지 나와 함께 바람을 쐬고,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이 기뻤다.
우리 할머니는, 의외로 '요즘 애들' 식성이라 한과보다는 스타벅스 케이크를,
식혜보다는 투썸 밀크티를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멋진 공간에서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마음이 충만해졌다.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포토이즘' 사진 찍는 곳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귤 모자를, 나는 곰돌이 모자를, 남편은 검은 안경을, 동생은 멋쟁이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강아지 아기는 동생에게 안겨서 공중에서 찍혔다.
사진을 기계에서 바로 현상하고 나와,
'국룰'이라고 하는, 전신 거울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때, 울컥할 만큼 행복했다.
'이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내 마음속에 영원히 담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10년 후에도 함께일까'하고 생각했다.
태어나자마자 할머니의 손에 큰 나는,
할머니의 음식을 먹고 자랐고, 할머니와 늘 함께였다.
그런 우리 할머니가 늙어간다. 알고는 있었지만,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느낀다.
할머니가 식당을 가면서 한 말 그대로 말이다.
'우리 손녀딸 할머니가 왜 이렇게 나이가 먹었을까'
이제야, 엄마에 대한 마음도 조금 가벼워지고,
엄마가 끼친 영향으로 인한 동생과의 오해도 풀어졌는데,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끝이 보이는 것만 같다니.
돌아가신 아빠의 연화장 방문, 계속 약해지고 눈이 하얘지는 강아지, 90세 우리 할머니,
그들을 만나며, 보며, 삶의 유한함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10년 후에도 함께일까'라는 생각은 할머니를 정말 깊이 사랑하기에 느끼는 두려움이자 간절함이다.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이 처절하게 소중해서,
그 순간이 얼마나 애틋하고 귀한지 알고 있기에 터져 나오는 울컥함이었다.
짧은 하루, 저녁 식사, 잠깐의 산책, 포옹, 사랑의 눈 맞춤, 고마움의 표현,
그 순간순간이 삶의 하이라이트였다.
울산으로 돌아오는 차 안, 운전하는 남편 옆 조수석에 앉아 생각했다.
인생에서 남는 건,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눈 맞춤이구나, 하고.
나는 올해, 임신 준비를 시작했다.
짧은 인간의 삶 속에서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누군가는 태어난다.
그러한 삶과 죽음의 커다란 사건 이외에도, 그 과정 중에 질병도, 통증도, 아픔도 겪는다.
'어떻게 인간의 삶은 이토록 유한할까?
이토록 연약한 인간은, 또 어떻게 그토록 강할까?'
라는 철학적 질문을 남편에게 던지며, 창 밖을 본다.
그리고 말한다. '그런데, 일단 얼큰한 라면을 먹자. 푸라닭 안성재 치킨을 곁들인!'
하하. 삶의 정수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도,
맛난 음식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