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표현이 달랐다는 걸
12월. 아이들과 트리를 사러 갔다.
나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비싸고, 치우기 힘들고, 한 달 쓰고 창고로 들어갈 물건.
볼멘소리를 하자, 남편이 말했다.
“애들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해야지.”
우리는 부산의 평화자유시장 3층으로 올라갔다.
트리와 전구, 구슬 몇 상자와 지팡이.
아이들이 각자 고른 오너먼트를 계산대에 올려놓으며 서로의 취향을 자랑했다.
집에 돌아와 음악을 켜고, 박스에 구겨져있는 트리를 펼쳤다.
아빠와 아이들은 한 줄 기차처럼 전선을 잡고, 뱅글뱅글 위에서 아래로 전구를 감았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갑자기 트리에 대고 절을 했다. "산타할아버지, 사랑해요."
나는 그 웃긴 장면을 양가 가족 채팅방에 올렸다.
댓글들이 눈처럼 쌓였다. “귀엽다.”, “너무 웃겨 엄청 좋아하네 울 이쁜이들.”,
“산타할아버지 돌아가셨나.. 제사 지내노..", "우리도 하자.”
청소를 하다 트리에서 빨간 구슬 하나가 떨어졌다.
톡.
한숨이 나왔지만, 금세 웃음이 났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이 함께 트리를 꾸미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정말 좋았던가 보다. 오래 묵은 기억이 이렇게 쉽게 빛을 밝히는 걸 보니
아침에 첫째가 말했다.
“엄마, 나 꿈에서 루돌프랑 산타할아버지랑 만났어.”
그래, 잘했다. 이런 건 잘해도 된다.
부모는 그렇게 도무지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정성을 쏟는다.
그 정성이 아이들에겐 겨울을 건너는 온기가 될 테지.
그럼에도, 부모 자식의 마음을 돌아보면 늘 다 말하지 못한 미안과 한이 남는다.
내가 아이들을 보며 웃고 있을 때, 이모가 말했다.
“우리도 너희 그렇게 키웠다.”
그랬다. 나는 육아를 하며 한동안 자기 연민에 빠져 오랫동안 엄마를 미워했다.
“왜 그때 그렇게 했어.”
내 마음에 서리가 내리던 날들, 부모님의 머리에도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어느 순간 알았다.
사랑의 표현이 달랐을 뿐이라는 것을.
그게 내가 원하던 방식이 아니어서 미움이 되었을 뿐,
엄마도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제는 안다.
"엄마가 못 배워서 그래."엄마는 날 선 나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다고 마음이 쉽게 맑아지는 건 아니었다.
말 한마디 내뱉기까지, 여전히 망설인다.
감정의 가시가 혀끝을 스친다.
그래도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알게 되었으니까.
트리를 꾸미며 문장 하나를 준비했다.
아마 올해의 문장. “엄마, 고마워요.”
아이들이 잠든 뒤, 트리 앞에 혼자 앉아 있었다.
빨간 구슬을 다시 걸며 생각했다.
사랑은 치우기 힘들어도 매해 꺼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상자에서 꺼내고, 먼지를 털고,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
번거롭지만, 꺼내놓아야 비로소 집 안에 온기가 겨울을 버틴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내년에도 이 트리를 꺼낼까.
아마도.
아이들이 더 크면 다른 걸 좋아할 것이다.
그때 가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불을 켜는 법을 우리가 배우겠지.
사랑의 표현은 시대마다, 사람마다, 집집마다 모양이 다르니까.
나는 올해, 서둘러 미루던 말을 먼저 하기로 했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남편에게, 나에게.
“고맙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더해 보기로 했다.
“미안했다.”
그 두 문장으로도, 우리의 겨울은 한 뼘 따뜻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트리 앞에서 아이들이 또 절을 한다.
“산타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한 번 더 기도한다.
내가 자라온 집과, 지금 여기의 집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이 꾸릴 집에
각자의 불이 꺼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