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운 에세이]
가끔 지원자의 이력서나, 누군가의 링크드인 프로필등을 보게 됩니다. 찬찬히 글을 읽어도 겨우 몇 문장으로는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아는 건 정말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했고 고민에 끝에 내린 결론은 무엇이며, 어떤 행동으로 이어졌는지.
함께 일한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떠했으며,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지.
이런 중요한 맥락 없이 '어떤 회사에서 얼마간의 기간 동안 어떤 업무를 했다는 것' 만으로는 개인에 대해 판단하는 건 이력서라는 좁은 구멍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저의 이력서를 본 사람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겠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습니다. 몇 줄로 요약된 이력사항으로 제가 목표한 것과, 시행착오를 겪은 것, 이를 통해 배운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겠죠.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스스로의 이력서를 돌아보며 마케터 장영운이 거쳐온 길을 정리해 봤습니다.
주의: 이 글의 가장 중요한 독자는 제 자신이기 때문에 재미나 교훈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나름 좋은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몰랐습니다.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아무거나 하게 될 수밖에 없겠죠. 졸업 후 막연히 마케팅을 하고 싶어서 다양한 회사에서 인턴쉽 경험을 거쳤습니다. 평소에 관심 있던 다양한 산업들을 경험해 봤습니다. 인턴쉽을 통해 제가 재미있어하는 일을 찾고자 했지만 딱히 잘 모르겠는 상태로 첫 번째 정규직 업무를 시작합니다. 작은 모바일 게임 회사였습니다.
작은 회사 규모에 비해 해외 여러 국가에 게임을 판매하고 있는 팀이었는데, 나름대로 도쿄게임쇼에도 참가하고 해외 바이어를 확보하는 등, 신입 사원에 걸맞지 않은 일을 해본 것 같습니다. 다만 당시 게임업계 특성인지 야근이 너무 많았고, 신입사원인데도 주변에 마케팅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서 해외의 아티클을 읽어가며 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마케팅 정보를 얻기 위해 다양한 직장인 단톡방에 들어갔고, 그중 하나가 스타트업 익명 단톡방이었습니다. 그걸 계기로 스타트업에 대한 동경이 생겼고, 다음 커리어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당시에 대기업 마케터 익명 단톡방 같은 곳에 들어갔다면 또 다른 커리어를 쌓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리어의 발전'이라는 말 대신 진행이라고 썼습니다. 체계적으로, 계획적으로 다음 회사를 정해나간 게 아니라 재미있어 보이는 일을 닥치는 대로 골라갔기 때문입니다. 앱 사업을 막 시작한 제조업체, 큰 광고 대행사, 몇몇 스타트업을 거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꼈습니다. 이상한 사람, 나쁜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한동안 프리랜서로 일해 보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 용역과 컨설팅을 제공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마케팅을 그만두고 글을 써보려고 한 적도 있지만 이 또한 적당히 재미있어 보여서 선택한 일이라 잘 되진 않았습니다. 결국 프리랜서는 현금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힘들어 다시 스타트업 씬으로 돌아온 상태입니다.
따개비라는 동물을 아시나요?
뜬금없어 보일 수 있지만 커리어 회고를 따개비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따개비는 한 곳에서 평생을 지냅니다. 섬모를 뻗어 먹이를 채집하고 주변 따개비와 짝을 맺는 정도의 활동을 반복하며 살다 죽습니다. 따개비는 그런 처지를 불평하거나 슬퍼하지 않을 겁니다. 그럴 지능이 없으니 먹이만 풍부하다면 따개비는 평생을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개는 먹이를 부족함 없이 먹는 것 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태생적으로 따개비보다 지능이 높고 사회성이 강한 개는 사람과의 교류 없이는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높은 지능을 얻은 대가로 행복의 조건이 더 까다로워진 것이죠.
개보다 지능이 훨씬 높은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더 다양한 조건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환경과 부족하지 않은 식사가 필요하고 주변인과의 적절한 교류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개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행복감을 얻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바로 본인의 삶에 대한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교에, 국가에, 직업에, 예술 작품에 일생을 바치는 것이 아닐까요?
인간은 행복감을 얻기 위해 삶의 의미가 필요하다는 관점으로 지난 커리어를 돌이켜보면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던 많은 부분이 이해됩니다. 업무가 고통스러웠던 때는 항상 업무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업무가 즐거웠을 때는 업무의 의미가 제 삶의 가치와 일치하던 때였습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일할 때 정말 즐거웠는데, 이 내용은 다른 글에서 좀 더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앞으로의 커리어에서 이 업무가 내 삶의 가치와 일치하는가를 계속 물어보게 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당신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저는 꽤나 성공적인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독자인 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런 글을 좀 더 일찍, 자주 쓰기 시작했다면... 글쓰기를 좀 더 빨리 시작하고,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먼저 가졌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혹시 막연히 글을 써보고는 싶은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브런치에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과 함께 글을 쓰는 모임을 만들어볼까 하는데, 관심 있으신 분은 아래 링크로 참가해 주세요.
글 쓰는 모임 https://open.kakao.com/o/geEJi9r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