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4.자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에 관한 비판
최근 발의된 형법일부개정안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해당 법안은 공연히 특정 국가, 국민 또는 인종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정의를 추구하는 잘못된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한 원칙을 지켜야 하며, 이것에 예외를 두고자 하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ㅤㅤ며칠 전 발의된 형법일부개정안이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1) 양부남 의원(더불어민주당, 광주 서구을)이 대표로 발의한 이 법안은 공연히 특정 국가, 국가국민 또는 인종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형법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307조의2 및 제311조의2를 각각 다음과 같이 신설한다.
제307조의2(특정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특정 국가, 특정 국가의 국민, 특정 인종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 에 처한다.
제311조의2(특정 집단에 대한 모욕) 공연히 특정 국가, 특정 국가의 국민, 특정 인종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ㅤㅤ법안의 제안이유에서, 양부남 의원은 지난 10월 3일 우익단체가 주도했던 특정 시위를 언급하며 집회 주최자와 참여자들이“현행법상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과 모욕은 모두 피해자를 특정되는 사람에 한정하여 특정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인정하지 않는” 허점을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법안의 제출은 “최근 온ㆍ오프라인을 불문하고 특정 국가,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적 발언으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각종 혐오 표현과 욕설이 난무하는 집회ㆍ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초하고 있다.2)
ㅤㅤ법안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부정과 옹호로 양분되어있다. 주된 논점은 표현의 자유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법안에 부정적인 입장은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고, 반면 이를 옹호하는 측은 그 자유의 한계를 지적한다.
ㅤㅤ법안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법안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며, 특정 국가와 관련된 발언 자체를 봉쇄함으로써 해당 국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정치적 견해를 억압하는 것이다. 심의 과정을 중요시하는 민주주의는 폭넓은 관용을 요구한다. 이러한 관용은 무례하고 천박하거나 혐오스러운 표현일지라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국가가 후견인의 지위에서 검열을 통해 “해로운 표현”을 선별하여 제한하는 입법조치는 민주주의에서 심의가 지닌 이점을 빼앗고 시민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판단할 기회를 박탈한다. 표현은 명백하고 현재적인 위험이 임박한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단순히 불쾌감을 주는 표현은 그런 위험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 다양한 사상과 의견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교환되지 않으면 진리에 도달하기는 어려워지며, 장기적으로 진리는 강화되기보다는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ㅤㅤ그러나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언론과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최근 시위에서 나타난 정치구호는 인종차별-혐오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는 특정 국가에 속한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설령 개개인의 사회적 평판을 훼손하는 정도에까지 이르지 않았더라도 인종차별을 배격하고 다원적 세계관을 지지하는 민주주의 내에서는 최소한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에 반한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증오발언(또는 혐오표현)은 가치 있는 표현이 아니며, 민주적 의사형성에도 기여하지 못한다. 진리가 자유시장경쟁을 통해 드러난다는 말은 그저 철 지난 은유에 불과하며 이를 입증할 만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 오히려 무수한 차별 철폐의 역사를 거쳐 온 현실은 인종차별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으로 토론이 종결되었음을 증명한다.
ㅤㅤ법적 근거는 비교적 명확하다.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이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동조 제2항은 언론ㆍ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ㆍ결사에 대한 허가(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동조 제4항은 언론ㆍ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ㅤㅤ법안의 내용과 유사한 현행법으로는 현재 대한민국이 비준한 두 개의 조약이 확인된다.
ㅤ1)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제20조 제2항은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에 해당되는 민족, 인종 또는 종교에 대한 증오의 고취가 법률로 금지된다고 규정한다. 해당 조약 제19조 제2항은 모든 사람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면서도, 동조 제3항에서 이 권리의 행사에 특별한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타인의 권리 또는 평판의 존중,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보건 또는 공중도덕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표현의 자유는 법률로써 제한될 수 있다.
ㅤ2)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제25조 제3항은 집단살해죄와 관련하여 본죄를 범하도록 직접적으로 그리고 공공연하게 타인을 선동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집단살해죄”라 함은 동 조약 제6조에서 정의된 바와 같이 국민적,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그 자체로서 파괴할 의도를 가지고 범하여진 행위로서,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중대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위해의 야기를 포함한다. 조약의 실행에 따른 입법 결과로서,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제8조 제4항에서 “국민적ㆍ인종적ㆍ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 자체를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목적으로 그 집단의 구성원을 살해”하거나 이와 같은 목적으로 “해당 집단의 구성원에 대하여 중대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위해를 끼치는 행위”의 범죄를 선동한 사람을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ㅤㅤ민주주의라 할지라도 폭력행위를 결의 및 실행하도록 충동하고 격려하는 표현은 규제의 대상이 된다.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모욕감을 주는 것과 폭력을 선동하는 것은 대등할 수 없으며, 후자의 행위가 금지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형법 제90조, 제101조, 제120조는 헌법적 가치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범죄에 관한 선동죄를 규정하고 있다. 앞서 본 로마규정 제25조 제3항도 집단학살의 선동을 금지하고 있다.
ㅤㅤ표현의 자유가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는 점은 명백하지만, 그 한계가 이번 사안에도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법안이 의도한 취지와는 별개로, 실제로 시행되었을 때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법안의 시행으로 발생하게 될 문제는 그 법의 적용을 받는 개인의 기본권 침해에서 그치지 않고, 법질서 자체의 민주적 정당성을 손상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ㅤㅤ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논거는 이른바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이라고 불리는 견해다. 사상의 자유시장은 공론장에서 사람들이 진리에 도달하는 과정을 자유경쟁시장의 메커니즘에 빗대어 설명한다. 마치 시장에서 재화의 자유로운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의견의 교환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면 “시장경쟁”을 거쳐 자연히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짓된 정보나 허위사실, 오류는 각각 의견이 경쟁하는 과정을 통해서 걸러지고, 그 끝에는 진리만 남게 된다. 사상의 자유시장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익숙할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가 쟁점이 된 판례에서도 종종 언급될 만큼 나름 비중 있는 관점이다.3)
ㅤㅤ사상의 자유시장의 이론적 계보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고전적인 견해, 곧 존 스튜어트 밀(J.S. Mill)의 『자유론(On Liberty)』에 맞닿아있다. 밀은 어떠한 견해도 배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지적 토론에서 진리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혐오하는 발언조차 용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밀의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사상의 자유시장은 이를 현실에 적용함에 있어서 수많은 결함을 노정하고 있다. 가령 음란물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쟁점 중 하나지만, 이것이 사상의 시장에 어떠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인종차별적 발언이 유의미한지는 이미 결판난 것으로 보이며, 인종주의의 옳고 그름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진부하고 무의미한 과정의 반복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ㅤㅤ더군다나 의견들이 서로 자유롭게 경쟁한다고 가정되는 그 “시장”은 공정하지 않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기관과 1인 미디어, 이를 후원하는 경제권력 그리고 이들과 유착관계에 있는 정치세력에 의해 시장에서의 발언권은 독점되고 있다. 오늘날 음모론은 개별 사람들에 의해 “소문에서 소문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화된 단체나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 의하여 소문을 믿지 않는 이들 사이에서도 “기정사실”이자 “정론”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편 시장의 참여자 개인은 대체로 정보의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라는 점에서 수요와 공급은 일정하지 않다. 사람들에게 정보에 접근할 기회가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이처럼 무수한 이론적 결함을 고려할 때,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말은 하나의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4)
ㅤㅤ오늘날 표현의 자유가 지닌 의의는 민주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강조된다. 다수결 원리를 채택한 절차적 구조 속에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은 동등한 투표권을 갖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들은 투표권뿐만 아니라 발언권도 가져야 한다. 국가권력의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고 표명할 수 있는 자유, 곧 정치적 자유권은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시민들은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가져야 하며, 국가가 개인의 투표권을 함부로 박탈할 수 없듯이 이들 권리도 제한할 수 없다. 만약 시민들이 각자 발언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정치적 자유의 공평한 보장이라는 전제조건 없다면 다수결 절차는 공정하지 않다. 정치적 다수는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항의, 논쟁 또는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금지된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 없다.5)
ㅤㅤ이러한 정당성 논거에 근거할 때 정부가 특정한 관점을 통제하는 것, 이른바 관점차별(viewpoint discrimination)은 금기시된다. 정부가 어떤 특정한 주제에 대한 견해를, 그 견해가 취하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경우에는 민주적 정당성이 훼손된다. 예컨대, 정부가 전쟁을 지지하거나 찬성하는 의견을 허용하는 반면, 전쟁을 부인하거나 반대, 비판하는 내용의 선전을 금지하는 경우 절차적 과정은 반대자에게 더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발언권을 박탈당한 소수는 자치(self-govern)라는 공동의 과업을 함께 수행하는 책임 있는 행위자로서의 입지를 상실하며, 단순히 다수의 결정에 의한 희생자가 된다. 특정한 입장에 편향되게끔 왜곡된 과정을 거쳐 도출된 결과를 반대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에 합치된다고 볼 수 없다.
ㅤㅤ이 논거에 대한 반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월드론(Jeremy Waldron)은 공적 책임의 영역에서 시민 간의 협동이 필수적임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한 정치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표현의 자유가 유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6) 그러나 증오발언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조차도 제한되어야 하는 표현의 범위를 매우 좁게 설정하거나 가능한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찬반 양측이 모두 인정하듯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제한은 민주주의를 향한 중대한 도전이며, 명백한 인권 침해다.
ㅤㅤ법률의 포괄적 적용의 위험성은 법문언의 모호함에서 비롯한다.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대부분 법안처럼 “사실의 적시”나 “모욕”을 구성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란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시간과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을 의미하며, 그 표현내용이 증거에 의한 입증이 가능한 것을 말한다.7) 이때 “사실”은 중립적인 개념이다. 즉,“허위의 사실”과 반대되는 “진실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에 대치되는 개념이다.8) 한편 “모욕”은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사람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9)
ㅤㅤ일반인의 관점에서 볼 때는 무엇이 모욕이고 아닌지 불분명하다. 판례에 따르면 “나이 처먹은 게 무슨 자랑이냐”는 모욕이 아니지만,10) “국민호텔녀”는 모욕에 해당한다.11) 표현 내용을 그대로 옮겨적을 수 없을 뿐이지 더 극단적인 사례도 존재한다.12) “모욕”보다 비교적 명확할 것 같은 “사실”을 판단하는 기준도 확실치 않다. 문맥에 따라서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이 아닌, 그저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판단할 진술이 사실인가 또는 의견인가를 구별할 때 언어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입증 가능성, 문제된 말이 사용된 문맥, 그 표현이 행하여진 사회적 상황 등 전체적 정황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다. 하지만 구체적 타당성과 더불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법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기준을 확립하기는 어렵다.13)
ㅤㅤ양부남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일반적인 규제와 같이 “(허위)사실의 적시”와 “모욕”을 구성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의 특징적인 면은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이 개인이 아닌 국가, 국민, 인종이라는 집단 내지 단체라는 점이다. 이 포괄적 대상은 집합명칭에 의한 명예훼손을 떠올리게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집합명칭에 의한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집합적 명사를 쓴 경우에도 그것에 의하여 그 범위에 속하는 특정인을 가리키는 것이 명백해야 한다.14) 그러나 미국, 중국, 프랑스 혹은 미국인, 중국인, 프랑스인 또는 흑인종, 황인종, 백인종 등은 그 범위에 속하는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다. 명예에 관한 죄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명예를 보호법익으로 삼는다. 이 법안은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개인적 법익의 침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질 수 없다.
ㅤㅤ특히 외국 혹은 외국인에 대한 표현을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제한을 초래한다. 시민들은 국내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발언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정치적 운명은 국외의 사정에도 영향을 받으며, 시민들은 자국과 연관된, 혹은 자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관련된 국제적 사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연대, 지지 또는 반대 견해를 표명한다. 그런데 법안에 따르면 이런 유형의 발언은 상당 부분 제한되거나 위축될 우려가 있다. 가령 일부 시민들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학교와 병원을 폭격하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키려는 이스라엘의 반인도적 행위를 규탄하며 “작금의 이스라엘의 행위는 전쟁범죄”이며 “이스라엘 총리와 군 수뇌부는 전쟁범죄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발언을 문제 삼은 누군가에 의해서, 규탄 의사는 범죄행위로 소추될 수 있다. 더욱이 집회, 시위 또는 언론 인터뷰나 기고문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강조하기 위해 이보다 훨씬 강경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형사소추의 위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위협적이다.
ㅤㅤ이 법안이 반중 시위뿐만 아니라 타 국가에 대한 반대 집회, 예컨대 반일ㆍ반미 시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단순히 정파적인 입장에서 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이 민주당 소속이기 때문에, 반일ㆍ반미 시위에 적용될 것을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추측하는 의견도 없지 않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지난 10월 3일의 반중 시위와 2019년 일본 측의 수출 통제 조치로 촉발된 반일 시위가 서로 비교선상에 놓이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진지하게 믿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우리가 이 법안에 반대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제공한다. 불가분의 원칙에 대한 예외는 항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설정된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정당한 항의는 그에 반대하는 세력의 집권에 의해 언제든 범죄행위로 규정될 수 있으며, 역으로 잘못된 행위라도 정당화될 수 있다. 당면한 목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자유를 타협할 때, 결국 그 타협을 이용하는 힘은 시민 개인이 아니라 권력자의 수중에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15)
ㅤㅤ법안이 금지하는 행위는 구체적 개인을 특정하지 않은 집단 내지 단체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이므로, 명예나 권리의 침해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목적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법안의 목적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가 아닌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법률이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합치되어야 한다는 한계를 넘어서진 못한다. 표현의 자유가 지닌 중요성은 이 자유가 자유민주적 헌법의 근본가치이자 민주정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에 있다.16) 어떤 견해가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견해를 가진 사람의 투표권을 제한할 수 없듯이, 발언권을 제한할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정당성의 손상을 가져오며, 이 손상은 정부가 특정 견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금지함으로써 더욱 심화된다. 우리가 고용, 의료, 주거 등에 있어 차별을 금지하는 법제를 반대자에게 강제하고자 한다면, 차별적 발언을 부도덕한 것이라 규탄하고 비난할지언정 법으로 금지해서는 안 된다.
ㅤㅤ한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유보를 정당화하는 근거로서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는 도덕규범, 윤리, 법률 등 여러 사회적 준칙들을 포괄하며, 개인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이나 시간적ㆍ공간적 배경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실제로 변화해온 가치개념이다. 이러한 포괄적ㆍ가변적 개념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호영역의 한계로 보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지닌 권리로서의 입지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실제로 헌재는 헌법 제21조 제4항의 규정에 대하여 “이는 언론ㆍ출판의 자유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동시에 언론ㆍ출판의 자유에 대한 제한의 요건을 명시한 규정으로 볼 것이고,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 한계를 설정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17) 이에 따르면 음란한 표현뿐만 아니라 모욕과 명예훼손적 표현도 헌법 제21조가 규정한 언론ㆍ출판의 자유의 보호영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공중도덕과 사회윤리가 표현의 자유의 한계라는 세간의 인식은 오해다.
ㅤㅤ법안이 규제하고자 하는 대상과 방식을 보면 집단명예훼손죄를 선동죄로 보기는 어렵다. 법문언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법안이 제한하는 표현은 특정 국가, 특정 국가의 국민 또는 특정 인종을 대상으로 삼은 범죄의 선동이 아니라 허위사실의 적시와 모욕이다. 오히려 이는 구 형법18) 제104조의2에 규정된 국가모독죄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삭제된 해당 조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었다.
제104조의2 (국가모독등) ① 내국인이 국외에서 대한민국 또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하거나 그에 관한 사실을 왜곡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안전·이익 또는 위신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게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② 내국인이 외국인이나 외국단체등을 이용하여 국내에서 전항의 행위를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③ 제2항의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ㅤㅤ국가모독죄는 구성요건, 보호법익, 입법목적 등 여러 면에서 이 법안의 집단명예훼손죄와 다르지만, 금지된 표현의 대상이 국가를 향한다는 것에서 일치한다. 집단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특정 국가”의 해석상, 법안의 취지와 목적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법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는 특정 국가에 대한민국이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국가모독죄가 국외에 있는 내국인에게 적용되는 것과 달리 집단명예훼손죄는 범죄행위의 주체에 제한을 두지 않고 특정 국가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거나 모욕하는 것만으로 처벌된다는 점에서 국가모독죄보다 적용범위가 넓다. 헌재는 서울지방법원의 제청으로 국가모독죄의 위헌성을 심사한 적이 있는데, 본죄가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고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를 들어 위헌으로 결정하였다.19)
ㅤㅤ12ㆍ3 내란으로 촉발된 헌정위기가 거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지만, 본래 평상시 민주주의에 관한 가장 생생한 논쟁은 정치적 기본권, 특히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것들이다. 언뜻 보기에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을 촉진하는 것으로 보이는 법률도 권력의 수중에 떨어졌을 때 자유로운 사상의 표현을 좌절시키고 반대의견을 묵살하는 압제자의 검으로 바뀔 수 있다. 이것은 결코 무리한 상상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작년 겨울에 그 무모한 상상력의 끝을 보았다.20)
ㅤㅤ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표현의 자유를 보편적 인권으로 인정하는 이들조차도 타협을 바란다.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일 수 없다는 주장은 약자를 보호하고 평등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자유에 대한 광범위한 제한이 지닌 실제 권능은, 동등한 존중과 배려를 실현하는 것이 아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경멸하는 이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힘이다.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런 힘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그 힘을 사용하는 대가로 정당성을 지불해서도 안 된다. 더군다나, 우리가 그 힘을 사용해 우리가 경멸하는 이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이 투표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 만약 우리가 그 힘을 투표권에까지 확장하기를 원한다면 민주주의와 심의는 발전이 아닌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ㅤㅤ민주주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이 그들 스스로를 지배하는 구조 아래에서 그 지배에 복종하는 모든 구성원을 동등한 정치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그 권리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권리가 없거나 실질적으로 이를 보장받지 못하는 구성원 개인에게 구성원 공동의 정치적 지배는 자기 지배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한 원칙을 지켜야 하며, 이것에 예외를 두고자 하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Nov 7, 2025
이 글은 나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시되었다. (https://grundgesetz.tistory.com/61)
1) 박재하ㆍ노선웅, “與의원, '특정집단 모욕처벌법' 발의…野 "반중시위만 혐오낙인",” 연합뉴스 (2025년 11월 6일)
2)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2213884), 제안일자: 2025. 11. 4.
3) 사상의 자유시장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최근의 판례로는, 헌재 2021. 2. 25. 2016헌바84, 판례집 33-1, 203; 대법원 2023. 7. 13. 2016두34257, 미간행
4) 문재완. 2024. ‘사상의 자유시장’이 작동하지 않을 때 — 표현의 자유의 전제 이론 및 그 대안에 대한 검토 —. 세계헌법연구, 30(2), 155-188.
5) Ronald Dworkin, “A New Map of Censorship,” Index on Censorship (May 1, 1994), p.14; “Foreword,” in Ivan Hare & James Weinstein(eds.), Extreme Speech and Democracy (Oxford Univy Press, 2009), p.ⅷ
6) Jeremy Waldron, The Harm in Hate Speech (Harvard University Press, 2014), 100
7) 대법원 2017. 5. 11. 2016도19255, 공2017상, 1325
8) 대법원 2017. 4. 26. 2016도18024, 공2017상, 1212. 그러므로 허위라는 인식 없이 진실한 사실로 믿고 실제로는 허위인 사실을 적시하여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는 고의가 조각되므로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성립하지 않으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성부가 문제시될 뿐이다.
9) 대법원 2022. 8. 31. 2019도7370, 공2022하, 2066
10) 대법원 2015. 9. 10. 2015도2229, 공2015하, 1571
11) 대법원 2022. 12. 15. 2017도19229, 공2023상, 277
12) 헌재 2017. 5. 25. 2017헌마1, 헌공248, 575
13) 예컨대, 주요 정치인을 “공산주의자”라고 지칭한 사건에서 제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항소심 법원은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후 판결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되었다. 대법원 2021. 9. 16. 선고 2020도12861, 미간행.
14) 대법원 2000. 10. 10. 99도5407, 공2000.12.1.(119), 2361
15) Ronald Dworkin, “Foreword,” in Ivan Hare & James Weinstein(eds.), Extreme Speech and Democracy (Oxford Univy Press, 2009), p.ⅸ
16) 「모든 국민은 자신의 정치적 의견과 정치사상을 외부에 표현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가지며, 이는 자유민주적 헌법의 근본가치이자 민주정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헌재 2013. 3. 21. 2010헌바132등, 판례집 25-1, 180, 200.
17) 헌재 2009. 5. 28. 2006헌바109등, 판례집 21-1하, 545, 560; 헌재 2013. 6. 27. 2012헌바37, 판례집 25-1, 506, 509; 헌재 2021. 2. 25. 2017헌마1113등, 판례집 33-1, 261, 266
18) 1975. 3. 25. 법률 제2745호로 개정되고, 1988. 12. 31. 법률 제404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을 말한다.
19)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위신”과 같은 개념 역시 구성요건으로서의 구체적인 표지를 가지지 못한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대한민국의 “이익”이나 “위신”을 실제로 해한 경우는 물론 그러한 우려가 있는 행위까지도 그 처벌대상에 포함시키고 있어, 정치적ㆍ학술적 토론이나 의견교환 과정에서 사용된 일부 부정적인 언어나 민감한 정치적ㆍ사회적 사안에 관한 비판, 현실 세태를 빗댄 풍자나 해학을 담은 문학적 표현마저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이 심판대상조항은 그 의미내용이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그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국가와 국가기관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고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 헌재 2015. 10. 21. 2013헌가20, 판례집 27-2상, 700, 707-708
20) 이준일. 2025. 내란 목적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공법연구, 53(3), 343-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