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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루 May 31. 2020

1년 5개월 만에 개봉한 포르투갈 정어리 통조림

'허영심을 자극하는 골드바 디자인'

포르투갈 리스본에는 마치 놀이동산 (특히 회전목마 컨셉) 같이 화려하게 꾸며 놓은 정어리통조림 기념품샵이 있다. 구글 후기엔 너무 비싸다, 가게 구경만 하기 좋다는 글이 가득했지만 점원들이 너무너무 친절해서 나도 모르게 통조림 세 통을 구입했다. 한 통은 선물했고 한 통은 패키지를 보고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현재 실종 상태, 그리고 마지막 남은 게 이 정어리다.

점원의 유려한 말솜씨에 내가 이걸 안 사 가면 안 될 거라는 흡사 착각에 빠졌었더랬다.

'허영심을 자극하는 골드바 디자인의 정어리 통조림'이라는 문구와 함께 소개는 했지만, 진심으로 터질 듯했던 가방에서 풍파를 겪어 겉이 뜯어진 골드바 정어리는 결국 선물도 하지 못한  부엌 구석 장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요즘 심심하다는 직장 선배님께 나의 포르투갈 기념품 자랑 유튜브 영상 링크를 보여 드린  이 통조림의 발굴 계기가 된다.


정어리 통조림이 맛있었겠다는 선배님 말씀에 '정어리 김치찌개'  기대도 흥미도 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가, 선배님께서 ‘이렇게 먹으면 맛있다’고 알려주신 방법대로 다음 날 같이 먹어보기로 했다.  다른 준비물인 빵과 버터는 다른 분께서 가져와 주시기로 했다.

영롱한 자태! 심지어 금조각도 들어 있었다.


집에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했던 정어리 통조림 두 통을 다 찾아 가져가야 모두가 먹는다는 생각에 찾고 또 찾았지만 한 통밖에 못 찾았다(그래서 참치 한 캔도 가져감). 먹는 방법은 어려울 것 없이, 정어리랑 버터를 빵에 얹어서 먹으면 된다고 하셨다. 처음에 듣고는 맛이 상상이 안 되어 도전해 보고 싶지 않았는데 선배님께서 '이태원에 있는, 어떤 개그맨이 운영하는, 포르투갈 음식점의, 파티에서, 먹어 봤다'는 포인트 하나하나에 급 신뢰가 생겼다.

소심한 첫 시도

첫 입은 소심하게.
생각보다 괜찮았다!
하지만 다 먹고 나니 입에 비린내가 감돌았다.


비린내를 덜 느끼려면 멈추지 않고 계속 먹으면 된다.

두 번째 도전.
(식빵은 1/4~ 1/6으로 나누는 것이 좋다)
얌얌~ 생각보다는 맛있다. 이 때 나는 안 먹고 있는 동료들에게 정어리 빵 쌈(?)을 싸 드렸다(거부할 수 없게). 한 분은 드시곤 두 번째 쌈을 정중히 거부하셨다(하지만 끝없는 감언이설에 나중에 한 번 더 드셨더랬다). 다른 분께는 버터를 너무 듬뿍 발라 살찌겠다는 걱정을 드렸으나 맛있게 먹어주셨다. 고소하면서 풍미 있는 맛. 정어리가 담긴 오일도 좋은 오일같다고 다들 추정하셨고 맛있는 빵이랑 버터가 또  한 몫을 했다.

정어리도 버터도 나름 많이.

한 통으로 여섯 명이 먹고도 남고 남았다. 집에 두 통이 없었던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팁이 있다면 두 층으로 정어리와 버터를 쌓을 때는 정어리를 아래에 넣자는 게 있겠다. 첫 맛이 비린 것보단 느끼한 게 낫겠지.

처음으로 혼자 여행이란 걸 해 본 포르투갈. 항상 또 가고 싶지만 한 번 가면 3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나만의 룰이 있는 유럽. 이젠 가고 싶어도 한동안 못 가게 되어 더더욱 아쉬운 마음이지만 아직 남아있던 통조림 덕에 그곳의 추억을 먹어 본다. 포르투갈에 가신다면, 리스본에 가신다면, 시간적 여유가 있으시다면 이 가게에 꼭 가 보시어요.



The Fantastic World Of Portuguese Sardines
O Mundo Fantastico da Sardinha Portugu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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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영상

 - 선배님의 말씀

  1. 아니, 뭘 이렇게 많이 샀어?(이건 새 발의 핀데요)

  2. 가방 안 터졌어?(진짜 터질 뻔 했어요)

  3. 이러니까 돈이 없지!(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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