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 소외감, 당황과 결정
나의 친한 친구 중 하나가 퇴사를 하고 가족과 스페인 여행을 간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이번 겨울을 보드와 함께 불태운다며, 스키장에서 주로 지낼 거라 자주 못 볼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2년 전에 같이 다녀온 유럽 여행, 나는 정말 즐거웠는데. 그 이후로 어쩐지 친구들은 꾸준히 해외 여행을 갔는데 나랑 가잔 소리는 없었다. 국내 여행은 같이 자주 다니고 같이 놀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나도 같이 여행 가고 싶은데. 부러움과 소외감이 몰아쳤다.
짝이 없는 신세도, 직장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도 비슷하고, 하고 싶은 것들도 잘 맞는 (스페인 여행 예정인)친구와 나는 며칠 후 배구장에서 만났다. 야구 보던 가락대로 밖에서 맛집 탐방도 하고 느긋하게 들어갔는데, 경기는 싱겁게 끝나 버려 아쉬운 귀가길. 부러움과 소외감, 서운함을 담아, 작은 희망도 함께 담아 친구에게 말했다.
유럽을 2주 가기는 아깝다! 다음에 언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랑 같이 앞쪽에 여행 가자. 포르투갈 좋잖아.
- 그렇긴 한데. 포르투갈은 글쎄. 영국이면 좀 가고 싶긴 한데 잘 모르겠다.
영국 가서 반나절 있다 온 나의 설움을 아니? 나도 영국 진짜 좋아해. 같이 갈까? 가자.
나의 특기 중 하나가 바람 넣기(?)다. 나는 어느 새 여행 정말 재밌을 거라며, 유럽 2주는 진짜 아깝다며 같이 여행을 가자고 친구를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다. 친구의 반응은? 일단 한 발 빼기. 일주일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다음 날, 머릿속에서는 영국 드라마 ‘셜록’의 OST가 자동 반복 재생 중. 그러고 보니 아일랜드를 참 좋아해서 자주 가는 친구가 있는데. 정보를 물어 볼 겸 연락을 해 봤다. 그런데 아뿔싸. 친구의 표현에 의하면 겨울에는 영국 날씨가 ‘똥’이라고. 어제의 열정이 차가운 요즘 날씨만큼이나 바로 식어 버렸다. 여행은 다음에도 갈 수 있는데 굳이 추울 때 여행을 가야 하나? 친구가 고민을 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내가 넣는 바람은 금방 부푸는 만큼 금방 꺼지기도 하거든.
근데 그 순간 친구가 연락이 왔다. 근데 이번엔 친구 쪽에서 불이 붙은 것 같다.
- 생각해 봤는데, 여행 가자. 이번 기회 아니면 정말 못 갈지도 몰라.
- 퇴사한다고 나중에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지금 해야겠어.
아뿔싸. 안 돼. 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잠깐 기다려 봐, 하는 나의 답장이 무색하게 친구는 그 새 대표님과 이야기를 하러 떠났고, 몇 분 후 상쾌한 메시지를 보냈다(정확히는 눈물이 흩날리는 퇴사 통보 현장). 이제 가는 거다. 뺄 수가 없다. 친구는 바람이 들면 돛을 펴고 달려가는 스타일이고, 내 바람이 쉽게 꺼지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30대의 시작을 여행과 함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