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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Jun 02. 2023

2023년 5월 31일, 미사일(?) 모닝콜이 울리다

세상 쇼킹한 날, 덤덤한 사람들이 대단하고도 무섭다


언제부터인가? 우린 습관적으로 많은 걸 억제하고 버티며 민감한 것에도 둔감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소한 것에는 앞뒤 따지지도 않고 금방 파르르 하면서 정작 커다란 문제에는 이상할 정도로 반응이 없고 덤덤합니다. 왜일까요? 충격이나 여파가 피부로 바로 느껴지지 않아서 그럴까요?





오월의 마지막 날, 대피 안내 문자를 받다



코로나를 겪으며 수많은 재난 문자가 있었지만 2023년 5월 마지막날, 밖에서 새벽부터 울리는 확성기 방송과 사이렌 소리, 동시에 폰이 굉음을 내며 정말 충격적인 문자가 날아들었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첫 알림과 정정 알림... 전 국민이 같은 시간 모닝콜을 받고 깬 날! 그것도 대피하라는 안내 문자를!



대학교 때 한강이 범람한다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한강을 건너지 못하면 집에 갈 수 없는 상태였고 당시엔 전화도 귀하던 때였습니다. 길에서도 공중전화 앞 대기는 늘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우왕좡왕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랑 지금 무엇에 얼마나 달라졌나? 글쎄요... 불가피하게 학교 근처의 친척집에서 자기로 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해프닝인가?

전 국민 민방위 훈련 날인가?

그것도 아니면,......?


문자 내용은 무슨 의미인가?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아무런 내용도 없는 문자에 왜 대피를?

어디로 대피를? 왜? 어떻게?



어떤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아니 기업들이 흔히 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잘못이 발생한 건 단지 담당자의 업무 미숙에 의한 실수 내지 전산시스템 오류라는 것. 이 말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사과도 필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 많은 사건사고가 터지고 죽음들이 번복되지만 정말 깔끔하게 해결되고 책임지는 일은 그래서 없습니다. 기껏해야 실명 이름을 붙이는 법이 사후약방문으로 만들어지는 정도이고 실제 담당자는 어떤 징계가 있었는지 전산오류로 더 많은 피해와 그에 대한 방안은 찾았는지 등등은 알 길이 없습니다. 불편을 겪은 사람, 피해를 당한 사람은 있지만 책임은 사라지고 없는, 그래서 더더욱 이런 상황은 빈번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또 반복해서 일어납니다. 조금 더 산 사람들은 그래서 그냥 일상적으로 대응(?) - 실제로는 아무런 대응이 없는 무대응으로 그칩니다. 그럼 우린 이 또한 학습이 됩니다. 길들여지는 것이죠.



내년 이맘때, 또다시 욕을 하며 한숨 쉬는 날이 올까 두렵습니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1970년대 후 통제된 사회에서 자라고 교육받아본 사람은 압니다. 사고의 규격화가 만들어내는 통제의 결정체!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정 기준을 벗어나면 이해를 못 하거나 잘못되었다고 판단을 해 버립니다. 그렇게 학습되고 길들여진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생각이 변하지 않습니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 같은!

그렇게 됩니다.



이미 국제사회에 보고까지 된 예견된 사실을 긴급 재난 문자로 전국민을 깨우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8분 간격의 발령 문자와 오발송에 의한 번복 문자, 심히 괘씸하고 괘씸합니다. 같은 시간 다른 지역에선 곤봉을 든 폭력적인 경찰의 공무집행(?)이 있었습니다. 하루의 시작, 모든 이들의 아침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달랑 오 발령이라는 알림만. 우린 지금 단지 개인적인 화를 낼 뿐입니다. 그런데요, 이런 일은 보란 듯이 다시 반복이 될 거라 예상이 되고 재난문자를 막아놓은 사람들조차 예외 없이 농락하는 사태는 또 있을 겁니다.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가 동화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나요?



주어지는 정보에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부터 해야 하는 순간이 반복 되면, 불신의 사회는 그렇게 서로를 의심하고 중심을 잃은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의 단 0.0001%만으로도 빠르게 5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그래서 가능합니다.






역사적인 단죄가 한 번도 없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어수선하고 답답한 날, 공안의 시대에 숨막힌 채 견디고 살아본 입장에서 기록으로 남깁니다. 다음번엔, 우리가 양치기 소년을 속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다시 속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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