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영어? 일단 좌절 좀 하고,

왜 아직도 다른 언어를 배워야 할까?

by gruwriting


언어적 한계는 세계관의 한계를 의미한다.
- Ludwig Wittgenstein






언어는 무엇을 만들어 내는 걸까요?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는 걸 느낍니다. 실제로 AI의 발달은 인터넷 세상의 시작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처음 컴퓨터 286이 나왔을 때는 낯설었고 알지 못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잠시, 인간들에게는 적응할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이후 세상은 빠르게 변했습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언어를 배울까요?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발달을 해도 사람들 간 소통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인간 존재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세상이 주는 편리함의 영역과는 별개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은 어려 경우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문맹을 벗어나 언어를 배우면 자신이 알고 이해하던 세상은 보다 확장되고, 스스로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성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모국어 외 다른 외국어를 배우면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문화와 경험을 배움으로써 또 다른 우물에 갇혀 있던 자신 밖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은 곧 인간 세계관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이유 없는 고집과 아집으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각 개인의 고립과 삭막한 세상의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영어를 배운다고 무조건 개안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영어와 다른 언어에 차츰 관심을 갖게 되면서 막연한 부러움이나 막연한 무관심에서 벗어나 조금씩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낯선 지역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여지가 생깁니다. 내 옆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좁아져 가는 마당에 다른 세상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뭐 그리 대단히 중요하랴 싶지만 그 바탕에는 옆에 함께 살고 있는 타인들에 대한 관심도 포함이 됩니다. 다양성에는 특별한 규정이나 범위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도,


세계관의 변화는 노력하지 않으면 빠르게 고정되고 멈춥니다. 그 고착 과정은 노화라는 이름으로 치부되고 당연시되지만, 그 틀이 꼭 맞는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 것,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그 범위가 더 좁았을 뿐이지만 지금은 스스로 조금만 찾아보면 확장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다만, 그것을 해 보려는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쓰지 않으면 모든 것은 결국 쓸모를 잃게 됩니다. 사물이던 생각이던 사람이던 자연이던, 쓸모를 다해보지도 못하고 사라집니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돌아가야 하는 것이 세상이지만, 그 모든 것에서 굳이 스스로를 고립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AI를 삶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고 모든 정보의 진위 여부에 골몰해야 하는 한층 피곤한 세상이 되었지만, 또 다른 면에서 소외된 사람들 또한 많습니다. 마치 해외여행을 할 수 없었던 80년대 중반 이전, 외국어를 공부하던 사람을 의아하게 여기던 때와 같습니다. 왜 영어와 중국어를 공부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몇몇의 새로운 시도와 노력들이 결국엔 앞으로 펼쳐질 세상을 빠르게 끌어옵니다.






AI의 언어가 아무리 발달해도 언어의 뉘앙스를 정확히 전달하는 데엔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도 학습을 시킨다고 하지만, 또 AI만의 커뮤니티와 SNS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사람의 그것과는 아직까지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AI가 학습한 영역까지만 가능합니다. 학습을 시키는 인간이 어떤 먹이를 주는지에 따라 그 내용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어쩌면, AI도 프랑켄슈타인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여러 창조물 중 또 하나의 거대한 괴물 조직으로써 기능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폭발력은 인간이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냈을 때보다 훨씬 더 크겠지요. 과학의 윤리적인 면과 인간의 소외라는 면을 새롭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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