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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Dec 31. 2020

내 맘대로 시상식

모두 고마워요


그 어느 해보다 힘겨웠던 2020년의 마지막 날,

놓친 것들만 아쉬워하기엔 문 앞에 와 있을 새로운 희망의 기운에게 미안하다. 바뀐 삶의 패러다임 안에서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해였기를, 이 시기를 돌이키며 추억할 수 있기를.


마지막 한 주 동안은 경건한(?) 마음으로 올해를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성적 처리, 화상 수업 등 학년말 바쁜 업무로 정신없이 마지막 날을 맞이해 버렸다. 이 저녁 시간만은 놓치지 않으리, 생각하며 서둘러 저녁을 차려 먹고 태블릿 앞에 앉았다. 오늘 내내 마음먹었던, <내 맘대로 (주는 상) 시상식>을 거행하고 싶어서다.

영화를 볼 때 외에는 TV를 잘 보진 않지만, 이맘때면 채널을 장식하던 화려한 시상식을 생각하며, 올해 나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교감을 주고받았던 고마운 이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부상삼아 '내 맘대로 상'을 드린다.

  


베스트 영감상

이 상의 수상자는 '남편'이다. 실제 내 미래의 '영감'이 될 사람이기도 하고, 끊임없는 애증의 대상이자, 내 글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상을 수여한다.

남들은 재수, 삼수도 한다는 브런치 작가 신청에, 안되면 다음 기회에, 를 생각하며 신청했다가 한 번에 덜컥 되어 버린 것이 축복인지, 시험인지. 그 둘을 구분하기 힘들 만큼 1일 1 글쓰기 목표가 버거웠을 때, 나를 구원한 소중한 '소재' 제공자였으니. 남편, 그대에게 기쁜 마음으로 이 상을 드린다.

 

알아서 잘 커요상

당연히 이 상의 수상자는 '나의 아들, 딸'이다. 코로나 시대를 보내면서 가장 감사한 일 중 하나는, 우리 애들이 자기 먹을 것을 찾아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거였다. 하나하나 챙겨야 할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과 직장 동료들이 이 시기를 더 힘들게 보냈으리라는 생각에,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그래도 학교를 '구경하러' 갈 정도로 적은 등교 횟수에 스스로 점심을 해결하며 집에서 원격 수업을 잘(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지만) 들어주어서 엄마는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었다. 균형 잡힌 학교 식단이 아닌, 냉동 볶음밥으로도 포동포동 살이 찌는 기적을 마주하면서 내년에는 좀 더 양질의 급식을 먹일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상을 너희들에게 수여한다.


그리움에 목이 메어상

'친정 엄마와 시댁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 상이다. 어버이날도, 추석도, 크리스마스도 찾아뵙지 못했던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고 목이 멘다. 다수의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을 하는 딸과 며느리를 두신 탓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좀만 완화되면, 확진자 수가 좀만 줄어들면, 찾아뵈리라던 날을 미루고 미루다 올해 끝자락까지 와 버렸다. 마주 앉아 얼굴 보며 밥 한 끼 먹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다가올 설에는 찾아뵐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도 항상 자식들 건강만 걱정하시는 우리 어머니들, 건강하시기만을 기원드린다.


너희들이 있어 내가 있어상

당연히 수상자는 '우리 반 아이들'이다. 얼굴도 못 본 채 온라인 개학을 맞았던 30명의 우리 반 아이들. 이름 꾸미기 과제와 사진을 편집한 영상으로 처음 만났을 때, 말로는 표현 못할 찡함이었다. 등교일 수가 너무 적어 함께 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래도 등교 일과 화상 수업에 최선을 다해 주었던 너희들에게 고맙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유지해야만 하는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켜내기엔, 2학년 너희들은 신나게 뛰어놀고 싶을 나이인데. 어른들이 좋은 세상을 못 만들어준 것 같아서 미안하다. 내년엔 훌쩍 자란 너희들이 마스크를 벗고 복도를 지나가면 선생님이 몰라볼까 봐 걱정이 된다. 모른 척 지나치지 말고 꼭 인사 나누기다!

  

그대들 덕분에 버텼소상

나의 '동학년 선생님들'께 드리는 상이다. 아무도 겪어 보지 못한 코로나 세상은 교육의 현장에 일대 광풍을 몰고 왔다. 온라인 개학 및 원격수업과 등교 수업 병행이라는 초유의 교육과정과 마주해야만 했다. 혼자서 였다면 그 광풍에 맞서다 장렬히 전사했을지도 몰랐으리라.

대한민국 교사들, 특히 초등교사들이 얼마나 다재다능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를 헌신하는 사람들인지. 그 일원이라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감사한 한 해였다. 코로나에도 반짝임을 멈추지 않았던 그대들의 교육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상을 드린다.

  

무척 보고 싶소상

'가까운 내 친구들'에게 주고 싶은 상이다. 한 달은 너무 빠르고, 두 달은 너무 오래된 듯하여, 항상 만남의 시기를 조율하느라 고심했었던 우리들. 학창 시절의 추억을 나누고 이제는 서로의 삶을 같이 토닥거리며 살아내는 친구들. 못 본 지 너무 오래되니 카톡 안부로는 이제 못 참겠다, 줌 화상으로라도 만날까, 싶어 진다.

나이가 들수록 남는 건 친구라던데, 해가 갈수록 그것을 더 실감하게 된다. 내 속을 아는 이들이기에 계산 없이 만나도 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세상에 더없는 행복이다.

친구들아, 마주 앉아 밥 먹으며 사는 이야기 나누는 소소한 행복의 시간, 너무 갖고 싶다. 너무 보고 싶다.


고생했소, 내년엔 더 힘 내소상

<내 맘대로 (주는 상) 시상식>의 마지막 상이자,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이 상의 수상자는, 바로 '나'다.

신축년 새해는 상서롭다는 '하얀 소'의 해이다. 소띠인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기대와 소망의 해.

젊은 교사들에 비하면 무척이나 아날로그적인 내게, 비대면 원격 수업과 화상 수업은 솔직히,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아, 이러다 내가 원치 않게 교직을 그만둘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에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그러나 인간의 적응력이라는 것이 이토록 놀라운 것인지, 쉽지는 않지만 잘 적응하고 있다. 원격이나 화상 수업을 계획함에 앞서 모르면 더 잘 아는 사람에게 배우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하였다.

하다 보니 비대면 수업 역시 그 본질은 '교육'인지라 현란한 공학 기술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를 잇는 '교사의 실재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수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기 조작 능력으로도, 아이들과의 수업을 보람차게 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더 감동이 왔던 것 같다. 물론, 우수한 기기 조작 능력이 더해졌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가진 것을 활용하는데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잘 버텨냈다. 고생했다. 내년에 더 분발하길, 나 자신에게 소망한다.

 


이것으로 오늘의 시상식을 마치고자 한다.

내년 연말 시상식에서는 이 공간에서 만난 인연들께 드리는 상도 추가되리라 기대한다.

나도, 여러분들도 그때까지 건강히, 잘 버텨주시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나와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새해 인사를 보낸다.

토닥토닥, 고생했소. 내년엔 더 힘 내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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