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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Dec 22. 2020

나는 반려견이 선택한 새 주인이었다

반려견에게 선택당한 자부심에 찬 개 주인장의 이야기


바야흐로 반려 동물의 시대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사람이 걷는지, 개들이 걷는지 모를 산책길이다. 생명 있는 것들을 양육하는데 잼병인 나는 아들, 딸 키우기도 벅차고 식구들 건사하기에도 버거워 반려 동물은 꿈도 꾸지 못하는데, 반려견과 나란히 산책하는 노부부를 보면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삶의 여유가 느껴진달까. 초로의 노부부에게서나, 그들 곁에서 함께 걷는 반려견에게서나.

그런 나에게도 견공과 인연을 맺었던 호시절이 있었으니,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결혼 전 남편은 서울에서, 나는 전라도에서 직장을 다니며 엄청나게 먼 장거리 연애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연분은 하늘에서 점지하신다고, 쉽지 않던 4년 6개월간의 연애 끝에 무사히(?) 결혼 날짜를 잡고 한창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서 두려움과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남편의 물건도 정리할 겸, 잠시 수도권에 상경해 남편의 거처에 들렀다가 퇴근하는 남편을 마중하러 지하철 역으로 향해 가던 길이었다.


지역도 낯선 데다, 윗 지역의 1월은 남쪽 지역의 그것과 달라 너무 추워서 온 몸을 싸매고 나갔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 내린 눈으로 도로는 꽁꽁 얼어붙은 상태여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좀 걷다 보니 내 뒤쪽에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종종거리며 따라오는 것이었다. 크기도 너무 작은 데다 옷도 입혀져 있어서 근처에 주인이 있나 보다 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자꾸 내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너무 추웠던 날이라 길에 사람이 많이 다니지도 않아서 주변에 주인이 있다면 이내 따라갔을 텐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꾸 내 뒤에 붙어 오는 것이었다.


혹시 내가 멈추면 다른 데로 가려나, 싶어서 횡단보도 신호등에 멈춰서 있었더니, 이 아이도 내 옆에서 똑같이 멈춰 서고. 그러다 신호등이 바뀌어서 건너갔더니 또다시 따라오고. 내가 멈추면 멈추고 다시 걸으면 또 따라오고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얘, 너 주인 없어? 나 따라오는 거니?"

난 그 아이가 내 말을 알아듣기나 하는 양,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 작지만 초롱초롱하고 까만 눈망울이 뭔가를 말하는 것처럼 나를 응시했다. 그러자 정말 이 아이가 나를 따라오는 거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한참 나를 따라온 것을 보면 주인을 잃었거나, 버려졌거나 한 강아지인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이 아이가 나를 정말 따라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적한 골목길인 데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일단 눈에 띈 나를 따라오기로 작정했나 모르겠지만,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면 이 아이가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이 쏟아지는 지하철 역이라면 상황 파악이 분명해지겠다, 싶었다.


그렇게 그 아이와 나는 어정쩡한 거리를 두고 계속 걸어가 지하철역에 이르렀고, 드디어 난관에 봉착했다. 지하철 역에 들어서려면 넘어야 할 '계단'이 있었던 것이다. 이 아이가 워낙 몸집이 작은 새끼여서 그 계단을 오르기에는 벅차 보일 정도였다. 이 아이가 오르기 힘든 계단을 만났으니, 이제 포기하고 돌아가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지하철 역으로 들어서서 뒤돌아보니, 그 아이가 어떻게 올라왔는지 내 뒤에 서성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이 아이가 나를 새 주인으로 '택'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퇴근하는 사람들로 금세 붐비게 된 지하철 역 입구에서 그렇게 그 아이와 나는 퇴근하는 남편을 함께 맞았다.

 

"저 강아지가 아까부터 나를 따라오더니 안 가고 계속 내 옆에만 있어. 어떡해."

이제 나는 거의 울상이 되어 남편에게 말했다. 난 강아지고 고양이고 간에 개인적으로 동물을 장기간 키워본 적이 없어서 걱정부터 앞섰다. 주인이 없는 것이 분명하고 아직 어린 새끼인데 그 엄동설한에 밖에 두고 올 수도 없었다. 다행히 어렸을 때부터 개를 키우던, 시골집에서 자라난 남편은 나보다 개나 고양이에 대해 더 포용적이어서 그날부터 그 아이는 우리와 한 식구가 되었다.

너무 오래 전이라 사진을 찾기 힘들어 인터넷에서 가장 닮은 것으로 고른 사진. 아, 다롱이 보고싶다~ (출처: pixabay)


남편이 출근하고 없는 동안에는 내가 그 아이를 씻기고 먹였다. 남편이 돌아오면 나보다 더 능숙한 솜씨로 그 아이와 놀아 주었다. 며칠 후 남편의 짐을 정리해 다시 내려오면서 그 아이도 함께 옮겨와 친정 엄마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건강 상태도 살필 겸 동물병원에 데려가니 수의사가 많이 되어봤자 생후 3~4개월 정도밖에 안 되는 새끼라고 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 추운 날씨에 길을 잃고 바깥으로 돌게 되었던 것이었을까. 예방 주사도 맞히고, '다롱이'라는 이름도 붙여 주고는 정식으로 우리 식구 일원이 되었다.

  

다롱이는 정말 영리한 아이 었다. 내가 출근하고 친정 엄마와 있는 시간에는 엄마가 주로 강아지 훈련을 시키셨는데 가르치는 족족 따라 하고 말귀를 잘 알아먹었다. 눈치가 엄청나게 빨라서 엄마나 내가 가르치는 것을 금방 흡수했다. 대소변도 정해진 장소에서 보도록 몇 번 훈련하니 금세 가렸다.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내 아이들보다 그때 다롱이의 학습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영특한 아이 었으니 어린 새끼일 때도 자기를 거둘 새 주인을 고를 수 있었던가보다.


결혼 후, 직장 관계로 남편과 떨어져 살아야 해서 바로 살림집을 마련하지 않는 바람에, 다롱이는 친정 엄마와 3년 정도 같이 살게 되었다. 나는 근무하던 학교 주변에서 자취를 하며 살아서 가끔 주말이면 한 번씩 들러 다롱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오곤 했다.

남편을 따라 다시 경기도로 옮기게 될 즈음, 아파트에서 개를 기르려면 거주하는 아파트동 주민들의 전체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말이 돌던 때였다. 결국 더 이상 다롱이를 아파트에서는 기르기 힘든 상황이었다. 고민하다 결국 다롱이는 시골에 거주하시는 시어머니 댁으로 보내졌고, 시어머니와 또 몇 년을 시골집에서 더 살았다.


시골에서 너무 자유롭게 길러서였던지, 이 녀석도 짝이 그리웠던지, 언젠가는 시골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다롱이의 마지막 소식이 되었다.




명절이면 내려가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즐겁게 함께 놀기도 했었는데, 녀석이 사라져 버려서 우리 모두 내내 아쉬워했더랬다. 일 년에 몇 번 못 만나는 나와 남편이었지만, 시골집에 가까워지면 우리 차 엔진 소리를 구분하고 반가워 짖어대던 영특한 아이였는데….


나에게 온 것도 그 아이의 선택이었으니, 그렇게 간 것도 그 아이의 선택이었으리라. 반려견이 선택한 짧은 기간의 동반자였다는 것으로 자부심을 갖고 살련다. 반려견이 주인을 선택하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므로.     

우리 다롱이가 어디서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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