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민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그의 시, <The Road Not Taken(가지 않은 길)>에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하여 선택의 기로에 놓인 우리 모두의 공감을 샀다. 가지 않은 길, 선택에서 빗겨 난 삶의 행로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다. 그 진로를 택했더라면,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때 그 일을 했더라면……. '후회 없이 살자'는 어린 시절 모토를 지켜내는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어려워진다.
여러 학습 이론들 중, 확실히 난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더 잘 학습하는 듀이의 경험론 주의자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직접 보고 체험을 통해 배우는 과정을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나라의 교육 현장의 모습 직접 보기'는 언제나 나의 wish list 중 하나다. 현지에서 현지 아이들과 선생님이 만들어가는 수업의 호흡을 느끼고, 나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 알고 싶다. 그리고 좋은 것이 있다면 훔쳐라도 오고 싶다.
그토록 일하고 싶었던 나라, 싱가포르
나이 40이 되었을 때,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달까. 왠지 직접 몸으로 체험하며 배울 수 있는 시기의 막바지에 다다른 느낌. 그래서 더 초조했던 것 같다. 본격적인 중년에 들어선다는 압박감이었을 수도, 당시 교직 경력 15년 안팎이었던 중견 교사의 무게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육아와 일을 함께 하다 보니 집과 학교, 두 세계 밖에 모르며 지나온 내가 우물 안 개구리 같았다. 계기가 필요했다. 일상에 안주하지 않는 나를 일깨울 기회, 그로부터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확답을 얻어 자존감을 높일 기회가.
그즈음 '재외 한국학교(해외 주재원이나 해외에 체류하는 교민 자녀들에 대한 교육 기관)'에 관심을 갖고 여러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두 아이에게 다른 문화 속 교육의 기회도 제공하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던 30대 기간 내내 새벽에 나가 밤늦게 퇴근하는 남편 덕분에(?) 아빠 없이도 2년 정도는 혼자 아이들 건사하며 지낼 수 있겠다는 용기는 기본이었다.
고려해야 할 여러 상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 학교를 택할 것인가였다. 재외 한국학교는 세계 곳곳에 있지만(주재원 자녀 등의 교육 기관이므로 개발도상국가에 더 많이 분포되어 있긴 하다), 자녀 동반 계획이니 너무 먼 나라는 제외했다. 그래서 가까운 나라들 중 나와 아이들의 '선진 교육' 체험 장소로 최종 낙점된 곳이 싱가포르였다.
그때까지 내가 아는 '싱가포르'라는 나라는 깨끗한 환경과 부패 공무원이 없는 청렴한 나라, 다문화 사회이면서 치안 상태가 좋은, 최상의 이미지를 가진 나라였다. 필리핀이나 태국의 학교를 언급할 때는 극구 반대하던 남편도 싱가포르라면 안심해했다. 1인당 GDP(개인 소득)가 높은 나라로 급여 조건이 다른 동남아 지역에 비해 좋다는 점도 큰 몫을 했다.
학교별 채용 공고를 보고 서류와 증빙자료를 준비하면서 살펴보니, 싱가포르 학교에 지원하는 교사들의 프로필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처럼 평교사로 아이들만 가르치다 지원하는 교사들은 명함조차 내밀기 무색할 정도였다. 결국 의욕만 앞선 2번의 지원은 서류 통과조차 되지 못했다. 알고 보니 매해 120:1에 육박하는 경쟁률로, 분기탱천한 의욕만으로는 재도전도 어림없는 일이었다.
한 달간 겪어본 싱가포르
그러던 중, 근무하던 학교 교감 선생님의 권유로 해외교류 교사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마침내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 교류 예정된 곳이 호주와 독일, 싱가포르 세 나라였다. 이미 두 번 지원했다 미끄러진 나라는 마음에서 접자, 하고 1 지망으로 신청한 나라가 호주였는데 낙점된 나라가 싱가포르였으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렇게 원했을 때는 기회가 안 오더니, 한 숨 접은 후에야 스스로 온, 싱가포르와의 인연이라니.
그렇게 한 달간 싱가포르 교육 시스템을 체험할 수 있었다. 견학한 시설들 중에 내가 지원했다 두 번이나 미끄러졌던 싱가포르 재외 한국학교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2주 간의 현지 연수와 2주 간의 현지 초등학교 견학 및 실습을 거쳐 코앞에서 마주한 싱가포르는, 내 머릿속에 그려왔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도로의 청결 상태 유지를 위해 껌 판매도 금지하는 '청정 국가'라더니 머물던 호텔(물론 1급 호텔은 아니었지만) 주위 여기저기 떨어진 담배꽁초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80%가 넘는 정부 주도의 주택 보급률과 환경을 고려하여 국가 주도로 자차 비율을 조절하는 나라. 여전히 태형이 존재하는 나라. 개인주의적인 자본주의에 익숙한 내게는 뭔가 이질적인, 싱가포르식 사회민주주였다. 게다가 박물관 등의 시설을 방문할 때마다 군대 자원입대를 독려하는 표어들이 쉽게 눈에 뜨였다. 작은 땅덩이, 적은 인구의 국가가 겪을 수밖에 없는, 국방력 유지에 따른 어려움이 느껴졌다.
결정적으로, 싱가포르에 대한 환상이 깨진 부분은 '교육' 분야였다.
싱가포르 학생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학업적 성취에 따라 '그룹화'하여 교육이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의 과거 우열반 시스템과 비슷한. 6학년이 되면 다시 또 성적에 따라 비교적 일찍 대학 진학과 기술학교로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니, 우리나라 학부모들이라면 입에 거품을 물 교육 시스템이었다.
더욱이 나는 맞벌이 부모의 입장으로 맞벌이 가정 학생들에 대한 '싱가포르 학교 돌봄 시스템'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 학교에는 그런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 당시 실습 학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싱가포르 교육계에서도 돌봄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학교마다 무장한 학교 경찰이 배치된 나라에서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의 건강 문제를 살피는 보건 인력을 따로 두지 않는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운 나라이니 아침 7시 30분까지 등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매일 아침 대형 강당에 모두 모여 치르는 '정신 개조'에 가까운 아침 조회 의식은 이 나라의 체제와 현주소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저 관광을 목적으로만 가고 싶은 나라, 싱가포르
물론 싱가포르 현지인들은 더없이 친절하고 유쾌했다.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인들에게 호의적인 나라여서 어디에서나 환영받는 느낌이라 체류 기간 내내 즐거웠다. 그렇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내 머릿속이 그려낸 착각이었겠지만, 엄청난 청정 국가도 아니었고(물론 정부 주도 도시 계획에 의해 관리되는 나라라 서울 면적의 국가 전체가 제주도처럼 자연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기는 하다), 국민 개개인의 삶의 수준이 높긴 했지만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처우는 우리나라처럼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여러 면에서 싱가포르가 '우리나라보다 엄청나게 앞선 선진교육을 실현하는 나라'인지는 "잘 모르겠다"라는 것이 한 달간 겪어본 싱가포르에 대한 나의 소회였다. 한 달 머무르기에 조금도 부족함은 없었다. 그러나 그 정도였다. 그저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유쾌한 국민성을 지닌 좋은 이웃 나라 정도의 느낌.
한국에 돌아온 뒤로 재외 한국학교 근무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원하니 나를 내려다보시던 절대자께서 갸륵히 여기시어 한 번 체험의 기회를 주신 것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체험하지 않고는 포기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시고는. 그리고 스스로 깨닫게 하셨겠지. 가보지 않은 길이라 내내 마음에 두고 후회하지 말고 스스로 보고 판단하라고.
가보기 전에는 그토록 아쉬워하더니, 조금이라도 발을 디뎌봤다고 서투른 열망을 그토록 깨끗이 거두어들이다니, 프로스트 시인도 웃겠다.
내가 동경했던 나라, 한때 그토록 일하고 싶었던 나라, 싱가포르. 그곳에 있는 동안 한번 방문했다가 너무 사람이 많아 되돌아 나온 센토사 섬. 언젠가는 다시 한번 그곳에 가고 싶다. 그저 관광을 목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