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을 먹으며 주문을 외워본다

No more plastic!

by 정혜영


금요일은 치킨데이. 저녁 메뉴를 고민할 필요 없는, 일하는 엄마의 자유의 날.

퇴근길에 미리 주문하고 집에 돌아와 천근만근 같은 일터의 먼지 옷을 새털 같은 집 옷으로 갈아입을 무렵, 띵동, 하고 찾아오는 치킨은 기쁨이다. 일주일간 뿔뿔이 각자의 스케줄대로 움직이느라 식구가 함께 하는 시간은 여의치 않다. 네 식구가 함께하는 황금 같은 주말 식사의 첫 시작, 금요일 저녁 치킨 타임. 이 시간만큼은 '식사는 식탁에서'라는 아내이자 엄마의 룰이 느슨해지는 시간이다. 거실 식탁에 치킨 좌판을 펼쳐 놓고 '평일 금지'였던 TV를 보며 모두가 둘러앉아 '행복' 한 덩이씩 물고 뜯는다.


TV에서는 숨은 가수를 찾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 중이다. 때마침 화면에 등장하는 치킨을 시켜먹는 장면. '대놓고 PPL(Product PLacement, 영화나 드라마에 특정 기업의 상품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끼워 넣는 광고 기법)'은 이제 좀 익숙해질 때도 되었으련만, 마주칠 때마다 자다가 봉창 뚜드리 듯 뜬금없다.

"오, 저 치킨, 플라스틱 용기인 게 맘에 드네."

남편의 말에 유심히 보니, 과연 그들이 시킨 치 종이 박스 안에 플라스틱 용기가 들어 있어 치킨 요리의 각을 잘 살려주고 있었다. 양념 소스가 종이에 들러붙지 않을 것 같은 깔끔함과 종이에 들러붙은 소스를 떼어내기 위한 수고로움을 덜어 줄, 꽤 매력적인 모습에 나의 시선이 꽂힌다.


하지만 안될 말이다. 더 이상의 플라스틱은 안된다, 는 생각은 다음 주 아이들과 함께할 수업 때문이었을까. 학년 마지막 주 수업은 뭔가 의미 있는 것으로 준비해 보고 싶었다. 수업을 계획하며 동료 교사들이 함께 공유한 여러 자료들을 들여다보다, 환경 문제를 다룬 몇 가지 영상들을 수업에 넣었다. 항상 아이들을 위해 수업을 준비하지만, 결국 더 많은 것을 얻어가는 쪽은 나다.




플라스틱 아일랜드(Plastic Island)

20여 년 전, 북태평양에서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는 섬이 하나 발견되었다. 1997년 알갈리타 해양연구재단 소속의 찰스 무어 선장이 발견했다는 이 섬은, 매년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들이 쌓이고 쌓여 마치 커다란 섬처럼 보인다고 해서 '플라스틱 아일랜드(Plastic Island)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소용돌이치는 환류 해역이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흘러가지 못하고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쓰레기만 약 5,000만 t. 그렇게 만들어진 섬의 크기가 한반도의 7배 면적이라니. 최근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쓰레기의 양이 많아지며 우리나라 서해 인근과 제주도에서도 플라스틱 섬이 형성되고 있단다.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북태평양, 먼 곳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강한 자외선이 플라스틱을 쏘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나노 사이즈까지 쪼개지는) 입자의 플라스틱이 생겨난다. 이 미세 플라스틱(Micro plastic) 입자를 먹은 인근 물고기들이 죽거나 고통스럽게 생명을 유지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 작은 플라스틱 입자가 몸속 깊이 침투한 바다 생명들이 우리 식단에까지 오른다고 생각하면 괴로운 일이다.

살 터전을 잃은 야생 동물들이 어쩔 수 없이 인간들의 삶의 공간까지 넘어와 인간과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각종 바이러스가 시작되었다.


모두를 고통스럽게 하는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백신의 발명 이후 예전과 똑같은 생을 영위할 생각이라면, 우리는 이 시대를 힘겹게 버텨 온 보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오랫동안 자연을 훼손하며 살아온 인간들에게 이보다 더 큰 재앙이 닥쳐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희망, 'Plastic Attack', 스타벅스의 종이 빨대, 미니멀 라이프

다행히 세계 곳곳에서 자발적인 '플라스틱 줄이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반갑다.


2018년 3월, 영국에서 시작된 'Plastic Attack'은 과도한 포장을 줄이자는 운동이다. 슈퍼마켓이나 마트 등에서 물건을 구매한 후 과대 포장된 플라스틱 포장재와 비닐 등을 내용물과 분리해 매장에 버리고 오는 행위를 일컫는다.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꼬집고, 유통업체에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소비자 운동인 것이다.


2020년까지 플라스틱 빨대를 모두 없애겠다는 스타벅스의 선언 또한 새 희망이다. 음료를 마시다 보면 눅눅해지는 불편함이 없지는 않지만, 내가 사용한 플라스틱 빨대가 언젠가 플라스틱 아일랜드로 흘러들어 물고기의 장기에 박힐 것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2010년대 단순함을 추구하는 예술 및 문화 사조에서 시작되었다는 미니멀리즘. 이의 영향으로 삶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아지는 것도 고무적이다. 소비를 늘려 순간의 욕망을 채울 수는 있겠지만, 삶의 질이 나아지는지는 돌아볼 일이다.

물건을 들여놓을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물건은 너의 '욕망'의 결과인지, '필요'의 결과인지. 대부분이 '필요를 가장한 욕망의 결과'라는 것이 원망스럽긴 하지만.




플라스틱을 줄여도 모자랄 판에, 치킨 상자 안에 웬 플라스틱 용기냐는 내 말에, 남편이 그래, 플라스틱 치킨은 먹지 말자, 고 웬일로 순순히 수긍한다. 플라스틱에 대한 거부감과 자연에 대한 죄책감은 누구에게라도 있나 보다. 그 마음 스위치를 살짝 켜 주기면 하면 언제든 반짝거릴 준비 하고서.

소원을 이뤄준다는 주문을 외워본다.

수리수리 마수리, 아브라카타브라, 비비디 바비디 부- 플라시틱 아일랜드의 쓰레기야, 모두 사라져라. 아니, 우리 마음의 오만함아, 싹- 사라져라. 자연을 훼손하여 생명의 근원을 없애고도, 만물의 영장의 지위를 계속 누릴 수 있다는 착각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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