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TV 자동차 광고 문구였던가? 운전은 하되, 차를 모르던 내게 딱 맞춤 문구여서 광고 여주인공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2003년에 운전을 시작했으니 운전한 지 17년이 넘었나 보다. 운전도 경력일 텐데, 이 기간 동안 택시 운전을 했다면 난 얼마나 베테랑 운전사가 되어 있을까. 아, 아니다. 이 말은 베테랑 운전사가 되기에는 내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을 간과한 '실언'이다. '길치'라는 치명적인 약점. 더불어 '방향치'는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옵션이다. 몸의 움직임 감각이 좋은 편이라 비교적 빨리, 제법 운전에 익숙해졌을 때도 오랫동안 나의 운전을 불안하게 만든 이 최대의 약점들을 간과하다니.
나는야 약도 없는 중증 '길치'이자 '방향치'
내가 어느 정도의 길치인지는 내어놓는 글을 쓰며 이미 너무 많은 부끄러운 '나'가 드러난 마당에도 민망한 부분이라 다 밝힐 수는 없다. 현재 진행형인, 이 약점에 대해 매우 과거형이었던 척, 한 가지만 실토하자면.
고등학교 때, 우리 집이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살던 곳과 아주 먼 동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낯선 곳이니 내가 학교에 간 사이 이사를 할 예정이었던 엄마가 걱정이 되셨나 보다. 엄마는 동생과 내게 이사 갈 곳의 위치와 버스 노선,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의 위치에 대해서 매우 상세히 알려 주셨다.
다른 '길치'분들도 나와 비슷한 증상인지는 비교 대조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내 경우, 일단 누군가가 방향이나 위치를 알려주는 상황에서 정보 제공자의 그림과 정보 입력자인 내 뇌 속의 그림은 시작부터 다른 것 같다.
상대가 말하는 방향과 위치는 내 머릿속으로 건너오는 동안 무슨 연유인지, 왜곡되고 뒤틀린다. 아예 다른 머릿속 지도를 갖게 되니, 목표 지점을 제대로 찾기 어려울 수밖에.
각설하고, 결국 내가 새로운 집을 제대로, 혼자 힘으로 찾아간 것은 이사한 지 4일 만이었으니, 이 정도면 병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 길치, 방향치인 내가 운전에 대한 로망은 있었나 보다. 운전에 대한 기대감과 교통편이 좋지 않은 지방 시골 학교로의 출퇴근은 내게 자차 운전을 서두르도록 종용했다. 운전에 익숙해 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일단 익숙해지자 내 차는 내게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기동성을 확보해 주며 좁았던 내 세상의 반경을 널찍이 확장시켜 주었다.
그때 자차로 둘러봤던 화순 운주사, 선암사, 내소사, 강천사 등 이름난 절들.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전라도 곳곳의 경치 좋은 절들을 둘러보던 시절은, 진정 풍류를 즐길 줄 아는 한량의 놀음이었으리.
'운전의 황금기'라는 겁 없던 2~3년 차 운전 시기를 거쳐, 3년간의 주말 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신랑이 있던 경기도로 발령받던 날.직장이나 결혼 등의 이유로 오래전에 먼저 수도권으로 올라가 살던 옛 친구들과 조우할 생각에 얼마나 설레었던가. 그렇지만 그런 설렘도 잠시, 운전 경력 4년 차에 접어들던 내가 새로운 도전과 만나게 될 줄,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한적하고 익숙한 시골길 드라이브와 차량으로 가득한 몇 차선 도로를 어디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수도권에서의 그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었다. 수도권에 인구 80%가 모여 산다는 사실을 거리의 차량들로 실감한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한 곳에 몰려 사느냐며, 이곳이 정말 사람 살 데가 맞냐며 얼마나 불평을 해 댔는지 모른다.
그렇게 경기도로 전입해 온 나는 직장과 집을 오가는 길만 연습해서 겨우 오고 갈 뿐, 수도권에 먼저 올라와 있던 친구들과의 만남은 꿈만 같은 것이었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만나보고 싶은 마음만 오매불망 커져갈 뿐.
내비게이션 하나 믿고 출발한 서울 친구 방문길
내비게이션의 필요를 느껴보지 않았다. 복잡하지 않은 시골길은 찾아가기 쉬웠고, 수도권에 올라와서도 직장과 집을 오가는 노선만 이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도권의 정신없는 버스나 지하철 노선은 길치인 내가 이용하기에는 너무 복잡했다. 내가 '대중교통맹(盲)'이 된 것은 자명한 이치. 당시 3살 첫 아이와 막 태어난 둘째 갓난쟁이를 데리고 다녀야 해서 차 없이는 나다닐 엄두조차 못 내던 시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신랑이 어디선가 사은품으로 내비게이션을 받아온 것이었다!
신랑이 차량에 그것을 장착해 주었을 때, 난 직감했다. 비로소 때가 되었음을. 수도권으로 올라온 지 1년 동안 꾹꾹 눌러두었던 나의 역마살에 내비게이션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아무 데나 갈 수 있겠다는 '만용'까지 풀 장착되었다.
때마침 시기도 잘 맞은 방학이었다. 여건이 되면 언제든 갈 수 있도록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 주소는 미리 받아둔 터였다.
대망의 행군을 나서던 날, 3살짜리 큰아이와 갓난쟁이 둘째까지 뒷좌석 아기의자에 태우고 처음 가보는 서울 친구 집을 향하여 부릉- 거는 시동을 걸었다. 그날의 내 기분만큼이나 시동 소리는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내게는 모든 길을 친절히 말로 알려줄 '내비게이션'이 있었으니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한 법. 난 용감하다 못해 무모한 자신감에 넘쳐 서울 친구 집으로 향했다.
내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 진입하기 전부터 5~6차선 도로에 눈이 돌아갈 지경인데, 내비게이션이 들어가라고 알려주는 몇 백 미터 앞 우측 진입로는 도통 들어맞는 법이 없었다.
서울 도로는 왜 이렇게 복잡하고 갈림길은 또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시골길을 달리던 우람한 SUV의 위용은 한껏 쪼그라들어 도로 위에서 우물쭈물하는 애물단지가 되어 있었다. 쉴 새 없이 끼어드는 다른 차량들 때문에 끼어들어야 할 곳은 놓치고, 다시 돌아오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던지.
초행길을 감안하여 한 시간 정도면 친구 집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두 시간 가까이 도로에서 헤매고 있었으니 친구를 만난다는 즐거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한 시간 정도까지는 어찌어찌 참아주었던 아이들이 뒷좌석에서 낑낑대기 시작하자 내비게이션은 봐야겠고, 애들은 달래야 겠으니. 그날 내가 흘린 진땀은 아마도 '연간 총 진땀'에 육박하는 양이었으리라.
그날 내가 서울 도로에서 겪었던 온갖 수난을 떠올리면, 삐질삐질 땀에 절은 채 두 시간 넘게 걸려 친구 집에 도착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 혼자 몸도 아니고 아이들을 태우고 그 무모한 길을 나섰다니,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백 번 야단맞아도 부족할 지경이다. 세상 길치가 어디 믿을 데가 없어 기계인 내비게이션 하나 믿고 서울길이 어디라고 함부로 나섰던가 말이다.
진정한 '자유'의 날개를 달아 준 것, 그것은 '내비게이션'
그래도 서울 초행길을 그 고생하며 찾아가 마침내 이룬 친구와의 조우는, 힘들었던 과정만큼 충분한 기쁨을 주었다. 두 시간 남짓 서울길에서 헤맨 경력(?)은 돌아가는 길을 한 시간으로 단축시켜 주었으니, 서울에서의 운전 예상 시간은 도통 계산 불가 영역이라는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그날 나는 분명 현생에 존재하는 지옥과 천국을 동시에 맛보았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기계의 언어에 서투른 나는 그날 내비게이션의 언어를 완벽히 습득하게 되었다. 솔직히 가끔, 아-주 가끔, 지금도 서울 초행길 몇 백 미터 앞의 갈림길 앞에서 조금 주저하기도 하고 잘 못 들어서는 실수도 하지만.
그날 내게 세상의 극 체험을 하게 해 준 내비게이션 덕분에 나는 진정한 '자유의 날개'를 제대로 장착하게 되었다. 이제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통일문이 열리는 날, 유럽 대륙까지 횡단할 수 있을 것만 같으니, 이것은 또 다른 만용의 씨앗인가.
그래도 통일이여 어서 오라! 유럽의 끝자락까지 운전해 갈 수 있는 원대한 자유를 만끽하련다. 운전이 무서워지기 전에,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이 용기가 사라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