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디 라마의 일대기, <밤쉘>

'미녀 배우'로서보다는 '발명가'로 기억되고 싶어했던 배우의 이야기

by 정혜영
Bombshell
1. 명사 - (불쾌한) 폭탄선언, 몹시 충격적인 일[소식]
2. 명사 - 아주 섹시한 금발 미녀


'Bombshell'이라는 제목은 위의 사전적 풀이대로 이 영화에서는 중의적인 의미로 끌어온 용어인 것 같습니다. <밤쉘>은 활동하던 당시(현재 보아도 동의되는) 최고의 미녀로 꼽히던 영화배우 '헤디 라마'(1914.11.~2000.1. 오스트리아 출생)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동명의 다른 영화가 한 편 더 있죠)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생 때(중학생이었던 때로 기억됨) 영화를 볼 만한 채널이 귀했던 당시에 제게는 토요일 밤마다 TV에서 해 주는 '명화극장'만이 영화를 볼 수 있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그때 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화, <삼손과 델릴라>에 등장했던 미모의 여주인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후로는 어떤 영화에서도 만나볼 수 없던 배우였는데 그녀가 '헤디 라마'였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네요.


영화 <삼손과 델릴라> (1955, 세실 B. 데밀 감독) by 네이버


여자인 제 눈에도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는데, 남성들의 눈에는 얼마나 예뻐 보였을까요.


헤디 라마의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려 했다면 영화화될 이유도 없었겠지요. 이 영화는 헤디 라마의 미모에 가려진 그녀의 명석함, 특히 '발명가로서의 천재성'과 보이는 화려한 삶 뒤의 '진정한 헤디 라마'의 이야기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언젠가 모 TV 프로그램에서도 헤디 라마의 이야기를 잠깐 다뤄서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그녀를 다룬 영화를 다시 찾아본 이유는, 얼마 전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죽음>에 그녀의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자신의 이야기라고도 하는 이 소설에서 남주인공은 가장 애정 하는 스타를 큰 사진 액자로 만들어 집에 걸어둡니다. 그 스타가 바로 헤디 라마여서 그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졌네요.


헤디 라마는 1914년,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성공한 유대계 은행장이었던 아버지와 부다페스트 상류층 가정 출신의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유복하고 기품 있는 가정환경에서 자랐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지요. 영화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자주 갔던 발레 공연이나 연주회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헤디 라마의 육성으로 들려줍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미모가 두드러졌던 그녀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18세에 찍었던 <엑스터시>라는 영화는 그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녀가 연기한 오르가슴의 고통과 전신 누드 장면은 당시 아직은 어린 데다, 건실한 가정교육을 받고자란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것이었습니다.


실제 영화 장면은 감독이 어린 배우 라마를 다독여가며 구슬려 찍은 장면들이었다고 합니다. 실제 영화 속 장면과 같이 연출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라마는 감독에게 사기당한 것으로 주장하는 부분이라고 하네요.


어찌 되었건 이 영화로 인해 헤디 라마는 한동안 '극도로 관능적인 미모의 여배우'라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영화의 예술성을 높이 사는 유럽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전성기 시기의 헤디 라마(당시 그녀의 1:1 가르마는 모든 여배우들이 따라 한 헤어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by 네이버
(왼) 전성기 시기의 헤디 라마, (오) 밤쉘 영화 포스터 by 네이버


쓰다 보니, 그녀의 관능미와 미모에 치중하는 내용이 되고 있네요. 대중들에게 알려진 헤디 라마는 이런 인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디 라마는 그런 이미지만을 가진 배우로 남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가 아닌, 자신이 가진 특별한 것, '내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학생 때 헤디 라마는 화학 수업에 흥미가 많았고 작동하는 물건의 원리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녀와 함께 한 많은 남성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항공계의 거물이었던 '하워드 휴즈'는 헤디 라마가 발명에 취미를 갖고 있음을 알고, 그녀에게 과학기술자팀을 붙여 주는 등 적극적인 후원을 했다고도 합니다.


그녀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친구이자 작곡가, 피아니스트였던 조지 앤 테일과 함께 고안한 '주파수 도약 시그널'은 당시에는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현대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인공위성, 첨단 무기 등에서 필수적인 무선 신호 시스템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그녀가 미 해군에 제안했던 이 발명이 받아들여졌다면 그녀는 물론 자손대대가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갖고 살아갔을 것이라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19살에 한 철없던 첫 결혼. 그 이후 5번의 반복된 결혼과 이혼으로 미루어 보건대, 여자로서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매번 부와 권력을 가진 남성들의 구애를 받았으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속하기는 어려웠으니, 신은 인간에게 다 주시지는 않나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었던 헤디 라마의 말년은 더욱 안타깝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배우로부터 최대치의 이득을 얻어내려던 미국 할리우드 영화 배급사 측에서는 배우들에게 각성제로 마약 성분까지 상습 투여받게 합니다. 그래서 헤디 라마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마약에 중독되게 되었죠.


세월이 헤디 라마만 빗겨가지는 않았을 테니, 점차 늙고 마약에 찌든 헤디 라마에게 대중들은 더 이상 사랑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헤디 라마는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도 참을 수 없어 여러 차례 성형을 했어요. 게다가 나중에는 성형 부작용에 대한 지속적인 시술로 재정적으로도 바닥이 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노년의 헤디 라마는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자로 살다가 85세에 심장병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유복했던 어린 시절, 외동딸로 태어나 사랑만 받고 자랐을 그녀가 대중의 사랑까지 받았을 때, 그녀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의 축복받은 삶이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요. 왜 그녀는 지속적인 사랑을 하지 못하고 남자에 휘둘렸을까요. 그녀가 가졌던 '발명'에 대한 사랑은 왜 그 꽃을 피우지 못했을까요. 왜 우리 인간들은 사람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현혹되면 내면의 아름다움 따위는 안중에 두려 하지 않는 것일까요.


"여자라면 누구나 매혹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그냥 꼼짝 않고 서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기만 하면 되지요."


헤디 라마가 남긴 이 말로,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이 어떻게 그녀의 삶에 역설적으로 작용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헤디 라마가 살았던 삶은 분명 그녀가 지향하고자 했던 모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가까운 친구나 자식과도 전화 통화 외에는 직접적인 만남을 거부하고 은둔하며 살았다던 그녀의 노년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녀가 가까운 주변인마저 멀리하며 지키고자 했던 것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마지막이 그것으로 반짝 빛났기를 바랍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랑'만이 설명 가능한 영화, <I Orig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