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으로 미리 만난 친정엄마, 설에 또 만나요

코로나 시대에도 언택트 명절 나기로 가족의 정을 전달해 봅시다

by 정혜영


설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예년 같으면 귀성 방법을 여러 가지로 고민하다 결국은 장거리 운전길로 귀결되었을 터다.

나는 광주와 나주가 친정, 시댁이어서 명절 때만 되면 최소 6시간 30분, 길게는 9~10시간도 걸려 홀로 계신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를 찾는다. 남편과 함께 나눠하는 운전이라 장거리여도 한 사람만 고생하는 독박 운전은 면하지만, 길에 소모되는 시간이 기니 피로도는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 나고 자란 곳과 부모를 찾는 일은 내 본류를 찾아가는 길이요, 오랜만의 가족의 정을 나누는 길이므로 결국은 마음이 향하는 길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 19의 맹위로 우리 일상에는 일대 변혁이 이루어졌다. 학교 등교일도 줄고 재택근무가 늘면서 집 안에서 가족이 모이는 시간은 훨씬 더 늘어났지만, 떨어져 살고 있는 친가와 시가 쪽 가족들과는 그렇지 않아도 일 년이면 몇 번 안 되는 만남이 더욱 요원해졌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명절 연휴에는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이동의 제한이 계속되다 보니 모임 자체를 하지 않은 지 1년이 넘었다. 얼굴을 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가족들의 얼굴은 못 보니 그리움만 더해 간다.


"딸, 네 얼굴을 본 지 오래되니, 네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물가물해진다."


는 통화 중 친정 엄마의 말씀은, 코로나가 갈라놓고 있는 가족 간 생이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작년 추석 때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 강화되어 결혼 15년 차 처음으로 '집콕 명절'을 맞았을 때는, 구정 설날에는 꼭 보자며 아쉬움을 달랬었다.

그런데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의 만남을 거부한다. 추석 때는 장거리 이동으로 인해 코로나 접촉이 두려워 우리 쪽에서 양해를 구했었는데, 이번 설을 앞두고는 양쪽 어머님들이 우리의 귀성길을 만류하셨다.

얼마 전, 몇몇 교회를 거점으로 확진자가 대거 느는 바람에 수도권에 비해 인구수도 많지 않은 그곳 사람들도 서로 간의 만남에 눈치 주는 상황이라고 하셨다. 수도권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다들 코로나 바이러스를 하나씩 달고 내려오는 사람들인 양 반가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결국, 이번 설에도 우리 가족 간의 만남은 무산될 위기다.




그렇지만, 이렇게 명절을 또 보낼 수는 없다. 이렇게 앉아서 코로나에게 속수무책으로 인간의 자리를 내어줄 수만은 없다. 코로나로 인해 가보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으므로 해보지 않은 설 계획도 필요하다.

우리 가족이 세운 설 계획은 이름하여, '온, 오프 쌍방향 명절 나기 프로젝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방식을 적절히 섞어 설다운 설을 보내보자는 취지이다.


우리 가족이 계획한 '온라인 설나기' 방법은 '온라인으로 세배하기'이다.


어르신들은 설 아침이면 자녀들과 손주들의 첫 새배를 받으시고 한 해의 건강과 복을 덕담으로 내려주신다. 이것을 전화 통화로 끝내기엔 너무 서운하다. 화상 통화도 가능하겠지만, 아이 둘이 동시에 세배를 하는 모습을 어머니들께 보여주고 싶다.


게다가 우리에겐 작년 내내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은 대신, '줌'이라는 쌍방향 시대가 활짝 열렸지 않은가. 다행히 우리 집에는 책상 위에 올려진 컴퓨터 외에 낮은 테이블에 설치해 둔 낡은 컴퓨터가 한 대 있다.

그 컴퓨터에 줌을 깔고 친정 엄마의 핸드폰에 초대 문자를 보냈다. 홀로 계신 노모가 기기 작동을 제대로 하시지 못하실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게 내 안내를 잘 따라와 주신 엄마와 줌으로 접속이 되었다.


화상으로 엄마의 얼굴을 본 순간, 찌릿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거의 매일 통화를 한 엄마였는데 컴퓨터 화상에서 엄마의 얼굴을 보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안 본 사이 한 뼘 더 연로해지신 모습, 나를 보고 반가워하시는 환한 엄마의 웃음이 마음에 묵직하게 와 닿았다.


한창 각자의 할 일로 열중이던 아이들을 서둘러 불러내어 컴퓨터 앞에 앉혔다. 아이들을 본 엄마도 벅찬 표정이셨다.


"우리 00이랑 00 이가 그동안 이렇게 예쁘고 멋져졌네! 너무 보고 싶었어."


하시는 엄마를 보니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는지 나의 무심함에 자책이 몰려온다.

아이들도 오랜만의 외할머니와의 화상 만남이 나쁘지 않았나 보다. 전화 상으로는 길게 얘기하지 않던 아이들인데, 쉬이 일어나지 않았다. 설날 아침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엄마의 '얼굴을 보며' 안녕을 고했다.



우리 가족이 계획한 '오프라인 설나기' 방법은 '윷놀이'이다.


줌 접속에 이어 우리 가족이 계획한 또 하나의 '오프라인 설나기' 방법은 '윷놀이'이다. 윷놀이는 명절이 아니라도 우리 4인 가족이 종종 하는 놀이이다. 물론 엄마, 아빠가 주축이 된 놀이라기보다는 매번 아이들의 성화로 이루어지는 놀이이긴 하지만.


가족이 함께 하는 놀이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다른 변천사를 겪어 왔지만, 윷놀이는 몸으로 놀이하는 것이 힘들어진 지금도 우리 부부가 선호하는 놀이이다.

아이들은 블루마블 게임도 원하는데 도통 놀이의 끝이 보이지 않는 보드 게임보다는 시작과 끝 시점이 명확한 윷놀이가 제격이다.


놀이 시작 전, 몇 판을 할 것인지 약속하니 놀이의 끝 시점이 예상 가능하고, 승자를 예상할 수 없는 '불확실성 놀이'라는 점이 윷놀이의 최대 장점이다. 온라인 놀이가 넘쳐나는 21세기에도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세대를 아우르는 놀이임에 분명하다.


어젯밤에도 엄마, 아빠의 한가로움을 귀신같이 알아챈 아이들은 윷놀이를 제안해 왔고, 설거지를 해 주면 하겠노라는 거래가 성사되어 3판의 윷놀이 판이 시작되었다.

남편이 놀이를 할 때 나를 꼭 포함시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떤 놀이에도 어리숙 하기만 한 나를 놀려먹기 딱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 '따지기 여왕'이 놀이 앞에서만은 이제 걸음마를 갓 뗀 아이처럼 서투르니 보는 재미가 쏠쏠한가 보다.

어제도 앞으로 나아가야 상대팀의 말을 잡을 타이밍에 자꾸 백 도, 백 계만 연속해 던지는 내게 열불이 났는지, 같은 팀 딸이 내게 화풀이하는 모습에 그렇게 꼴 보기 싫게 신나 하더라니.


논리로 똘똘 뭉친 딸이 평소에 우습게 보기를, 땅에 기어 다니는 개미만도 못 한 취급을 하는 남동생이 아빠와 한 팀이 되어 딸과 나의 팀을 우습게 이길 수 있는 것도 윷놀이라는 게임이라 가능한 일이다.

윷을 던져 어떤 면이 그 모습을 드러낼지 알 수 없으니 위기 상황에서는 던지는 윷에 콧김을 불어넣고 이상한 주술(?)까지 외며 우습기 그지없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미 다 진 판이라고 포기 직전이다가도 한 자리에 세 개의 말을 포개어 이동하던 아빠팀의 '만용'을 잡는 순간! 그 환희는 컴퓨터 게임이 주는 짜릿함과는 분명 다른 것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이 자꾸 윷놀이 판을 가져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설날을 앞두고 고향 어머님들과의 예비 줌 화상 만남이 성공적으로 준비된 듯하여 뿌듯하다. 가족들과 함께할 오프라인 게임도 준비되었다. 이번 설은 지난 추석처럼 무기력하게 보내지 않을 각오가 이미 되었다. 이제 설을 즐길 일만 남았다.



p.s. 우리 가족들의 설 계획을 신나게 세우다 보니, 자녀와 함께 하지 못하는 노인들과 부모님과 함께 하지 못하는 어린 소년소녀 가장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친다. 모든 이들이 뜨끈한 떡국 한 그릇에 따뜻한 설날 아침을 맞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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