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이 실행 중인 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각 가정은 어떻게 설을 보내고 계실까?
'줌' 가족 상봉과 '명란 크림 파스타'.
이 두 가지는 코로나 시대에 맞이한 우리 집의 언택트 설날을 규정짓는다. 예년 설날 같았으면 오랫동안 못 본 형제지간을 만나고 친정, 시댁을 오가며 익숙한 명절 음식들을 해 먹었을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 가족 모임을 자제해야 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고군분투를 계속하는 것은, 나의 뿌리인 가족을 향하는 마음이 결국 나를 돌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줌' 가족 상봉
오전 10시 30분.
설날 아침 친정 식구들이 줌으로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다. 코로나로 인해 모이지 않는 언택트 명절을 보내기로 결정했으나 홀로 설을 보내실 친정 엄마가 쓸쓸히 설날 아침을 보내게 할 수는 없었다. 줌 수업에 익숙한 내가 줌을 열기로 하고, 모두에게 적절한 시간을 미리 정해 두었다.
부랴부랴 일어나 씻고 나오니 신랑도 덩달아 일찍 일어났다. 평소 아침을 잘 먹지 않는 남편이 모처럼 일찍 일어난 김에 떡국도 끓이시겠다니, 나야 대환영! 미리 장 보아둔 사골 육수와 소고기로 맛나게 끓여낸 남편의 떡국 덕분에 기분 좋게 한 살을 먹었다.
남편의 떡국 ⓒ 그루잠
비록 화상 만남이지만 저마다 가족을 일군 삼 남매와 엄마의 얼굴을 오랜만에 마주하는 자리에 민낯이긴 싫었다. 작은 것도 크게 걱정하는 친정 엄마께 나의 건강과 무탈함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선크림과 립스틱으로 얼굴에 약간의 화색을 더하고 있을 즈음,
"회의 창 안 여시나용?"
하는 동생의 카톡 메시지가 온다. 부랴부랴 줌을 오픈하니 이미 대기 중이던 동생네 가족과 친정 엄마가 들어오셨다. 어제 그렇게 연습했건만, 친정 엄마는 또 음성 해제를 하지 않아서 우리의 소리를 듣기까지 조금 시간이 지체되었다. 그래도 '줌' 가족 상봉이 가능하게 한 일등 공신은, 70대의 연로함에도 줌 접속을 하기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친정 엄마다.
막내 동생네만 시간에 맞춰 들어오지 못했지만, 어린아이 둘을 키우려면 예상치 못한 변수는 언제나 발생하는 일이라 이해했다. 엄마는 그냥 얼굴 보며 이야기나 하자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설날에 세배가 빠지만 서운한 일. 우리를 시작으로 동생네까지 엄마께 세배를 다 드리고 나니 그제야 막내 동생네 식구들이 화면에 등장한다.
세배는 건너뛰자고 하시던 엄마는, 자식들의 세배가 다 끝나고 나니 1분만 얘기하시겠다시며 종이를 한 장 꺼내셨다. 오늘 이 시간을 위해 덕담을 미리 메모해 두셨던 모양이다. 온 가족들의 건강과 형제간의 화목, 직업, 학업적 성취를 기원하는 내용일 것임은 짐작되는 바였다. 그래도 연로해지시면서 가뜩이나 더 눈물이 많아지신 엄마가 메모를 읽다가 우시지나 않을까, 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랜선을 타고 건너오는 엄마의 덕담은 간간히 떨림이 있기는 했지만 무탈하게 마무리되었다. 자식들을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셨을 엄마가 메모를 쓰시는 동안 내내 코끝이 찡해지셨을 거라는 걸, 보지 않아도느낄 수 있었다.
줌 상봉 가족 사진, 초상권을 위해 블러 처리^^ ⓒ 그루잠
이런저런 서로 간의 근황을 주고받다 최근에 피아노 반주 전공으로 '00 예고'에 들어간 조카의 피아노 솜씨 좀 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친정 엄마 집에서 만날 때는 피아노가 없으니 불가능했던 일이었는데, 랜선 만남이 주는 이점도 있구나, 싶었다. 마지막으로 각자의 화면에 모여 앉은 모습을 캡처하니 줌 가족사진이 완성되었다.
홀로 외로이 설날을 맞이하셨을 친정 엄마와 이렇게나마 서로 얼굴을 보며 안부를 나눌 수 있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 나에게도 새로운 세상인데, 70대 노인인 친정 엄마야 오죽하셨을까. 줌 미팅을 끝내고 나와 나눈 통화에서 몇 번을 고맙다고 하시던 엄마. 코로나가 걱정되니 내려오지 말라 하시던 그 마음이 다가 아님은 분명했다.
시어머니와도 영상 통화를 통해 아이들과 세배를 전해드렸다. 시어머니는 큰 형님과 함께 계셔서 외롭지는 않은 설날일 것 같아 그나마 위안이 된다.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에서 임종진 작가는 사람의 얼굴은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비록 화상으로 만난 가족의 얼굴이지만, 전화 통화와는 다른 특별한 교감을 나눈 시간이었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엔 분명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얼굴을 본다는 것은 가족들의 삶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무탈하게 살고 있구나, 안도하는 일이다.
설날에 먹는 '명란 크림 파스타'
앞서 말한 대로 설날이니 아침 식사는 당연히 떡국을 먹었다. 친정과 시댁을 찾았다면 이미 마련해두신 갖가지 기름진 명절 음식으로 배가 꺼질 세가 없을 날이었겠지만, 우리 가족끼리 보내는 설이라 특별히 따로 명절 음식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설인데 명절 음식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쉬운 마음에 (신랑이) 미리 재어놓은 LA갈비로 오늘 하루를 퉁쳐 보겠다는 심산이 내 안에 깔려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점심으로 명란 파스타를 해 주겠다는 거다. 입맛이 한식 파인 나는 파스타 종류를 썩 즐겨 먹지 않는 데다 설에 웬 파스타? 싶었지만, 남편이 하겠다는데야 말릴 이유도 없었다.
(왼)시금치가 살아서 밭으로 갈 것 같더니, (우)파스타 면의 온기에 숨을 재웠다 ⓒ 그루잠
요리를 즐겨하는 남편이 뚝딱 만들어낸 명란 크림 파스타는버터와 우유로 만든 크림 베이스에 명란과 새우를 넣어 완성한 것이다. 마지막에 생시금치를 올려둔 것이 시금치를 데쳐 먹기만 하는 내 눈엔 영, 마뜩잖았다. 그러나 파스타 면을 휘휘 저어 섞으니 그 온기에 시금치의 숨은 재우고 아삭함은 살리는 고수의 비법이 숨어 있었다. 새우와 명란을 아끼지 않은 파스타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맛보기 어려울 만큼 특별한 맛이었다.
설날과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파스타를 접시 바닥의 크림소스까지 싹싹 긁어먹고 보니, 기존에 가지고 있는 사고 체계라는 것이 얼마나 가변적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양가 어른들을 직접 찾아뵙고 손이라도 잡고 한 번 안아 드리는 것이 백 마디 말보다 나으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만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어 그리움이 더한다면 화상으로라도 대체할 수 있다. 설날에 떡국이나 갈비 같은 일반적인 명절 음식 외에 명란 크림 파스타를 즐길 수도 있다.
달라진 생활 방식에는 달라진 관습으로 변화를 가져보는 것,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말이다.